어긋난 불길, 흔들리는 세상
"화르륵"
어릴 적 시골집 부엌 아궁이에는 삼시 세끼마다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뜨끈한 부뚜막 중앙에는 늘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고, 입구 옆 구석에는 계절마다 다른 땔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투박한 장작, 솔가지,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볏짚단이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어두운 아궁이에 장작 몇 개를 지그재그로 쌓고 불쏘시개를 찾곤 했습니다. 장작만으로는 불이 잘 붙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마르고 가벼운 불쏘시개가 꼭 필요했습니다. 지난달 달력, 볏짚, 바싹 마른 깻단이나 솔가지가 유용했지요.
갈색 머리통이 빼곡히 들어찬 성냥갑에서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 닳은 마찰면에 단숨에 그어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그 불씨는 손 안의 불쏘시개에 옮겨 붙어 ‘화르륵’ 타올랐지요.
손 안에서 둥글리며 공기를 불어넣으면 불꽃이 골고루 퍼졌고, 그것을 장작더미 사이로 살포시 밀어 넣으면 이내 ‘타다닥’, 묵직하고 뜨거운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볏짚을 태울 땐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화르륵’ 타올라 잠시라도 방심했을 땐 불꼬리가 아궁이를 벗어나 다른 불쏘시개에 옮겨 붙곤 했습니다.
마른풀과 불의 만남은 언제나 깊은 주의가 필요했지요.
한편, 깨 털고 난 깻단과 솔가지는 아궁이 속에서 기막힌 연주를 선사했습니다.
‘톡톡’, ‘타다닥’ 여문 씨앗 주머니가 터질 때마다, 마른 실가지와 솔잎 가닥가닥이 타오를 때마다 오케스트라 연주만큼이나 풍성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뜨거운 불꽃의 향연으로 오감이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아궁이의 본래 목적은 구들장을 데우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보다 불꽃의 착화와 발광, 확산과 사그라듦에 유독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불쏘시개든 땔감이든 불타는 속성은 제각각입니다.
빛깔도 소리도 저마다의 개성대로 다릅니다.
살아보니 사람도 불쏘시개를 닮았습니다.
순간 불꽃만 일으키고 사라지는 종이조각 같은 사람,
요란하게 타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볏짚 같은 사람,
독특한 소리와 질감으로 오감을 깨우는 사람,
늦게 불붙지만 묵직하고 오래가는 사람, 그리고 다 사그라진 뒤에도 까만 재 속에 온기를 머금고 있는 사람….
모두 제때에 제 할 일을 만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결이 많이 어그러져 버린 듯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 불을 일으키고 화력을 키워내야 함에도 본질은 무시되기 일쑤이지요.
가장 강한 화력을 품은 장작은 착화될 기회조차 빼앗기고, 불쏘시개들은 아궁이를 벗어나 사방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다닙니다. 마치 온 세상이 화마에 삼켜질 듯합니다.
누구는 불쏘시개들을 탓하지만,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불쏘시개에 악의로 불을 붙인 ‘그 손’이 문제지요.
악한 본성을 가진 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때인 듯합니다.
예닐곱 살 무렵, 처음으로 욕을 내뱉은 적이 있었습니다.
가을걷이 후 부모님을 따라 벌초를 하러 선산을 찾았을 때였죠.
바람이 제법 부는 날, 노랗게 마른풀들이 바람을 타며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온 가족의 만류에도 아버지가 풀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불길은 구속에서 풀려난 악령처럼 순식간에 번져 나갔습니다.
산으로까지 옮겨 붙을 뻔했지요.
놀란 가족들이 옷을 벗어 불길을 막고, 발로 밟아가며 정신없이 불을 껐습니다.
그 순간, 살아 날뛰는 불과 함께 분노가 실린 욕지기가 목울대를 넘어 튀어나왔습니다.
요즘 들어 그 욕지기가 다시 목 언저리에서 울렁거립니다.
아궁이를 벗어난 불꽃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인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모습은 곧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주의와 당부를 무시하는 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만 보는 터널비전의 손,
자기 생각만 옳다 믿는 무지한 손….
그 무책임한 손들이 두렵습니다.
우리 사는 이곳, 오랫동안 열기를 머금은 가마솥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피어오릅니다.
그러나 욕심으로 불쏘시개를 마구 밀어 넣으니 부엌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궁이 불부터 잡아야 할 테지요.
부엌 입구에 신장처럼 서 있던 다부진 부지깽이 하나.
지금은 그 부지깽이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아궁이를 벗어나 천방지축으로 불씨를 나르는 불쏘시개들은 쓱쓱 거두어 다시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고,
지나치게 치솟는 불길은 부지깽이로 탁탁 두드려 잦아들게 해야 합니다.
그 옛날, 부지깽이를 든 어른들은 다 어데로 갔을까요?
다시는 욕지기를 내뱉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먼저 내 속의 불부터 꺼야겠습니다.
불쏘시개는 이제 그만.
시원한 물로 속을 가라앉히고,
청소부터 시작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