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타작

그 시절 도리깨의 의미

by 지은담
매타작은 끝이 아니라, 새 삶의 시작이다.

쉬~익 탁!

그 옛날, 해마다 이맘때면 시골집 마당은 콩타작으로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죠.


가을볕 아래 너른 마당에서 바싹 마른 콩대들의 긴장감이 절정에 이르면, 참지 못한 콩깍지가 온몸을 비틀다 “쩍”하고 터지며 툭툭 노란 콩알들을 튕겨냈습니다.

바로 그때 아버지는 창고 깊숙이 세워 두었던 기다란 도리깨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곧이어 쉬~익 탁!, 쉬~익 탁!,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강한 도리깨살이 마른 콩대를 내리쳤죠.

사정을 두지 않고 내리칠 때마다 콩대는 꺾이고 일어서며 먼지와 함께 무수한 콩알들을 쏟아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볼 때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곤 했습니다.


도리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마치 회초리를 때리는 듯한 찰진 매질 소리, 영문도 모른 채 콩깍지를 벗고 자유롭게 튀어나오는 노란 콩알들.

매서움과 단호함과 천진함과 자유로움이 한데 엉켜 가을마당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더랬습니다.


가을걷이는 풍족함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안고 살아보니, 수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더군요.


때를 맞춰 거두어야 하고,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고된 노동이 뒤따르며,

이 모든 게 끝난 후엔 깨끗이 정리하고 갈무리해야 하는 일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기진맥진해질 즈음, 아이쿠나! 중요한 일이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찬 바람 불면 해야 하는 메주 빚기.


뜨겁게 삶아지고 짓이겨져 메주가 되고, 이는 다시 말리고 담구어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수확은 늘 새로운 도전의 디딤돌이었습니다.


이 맘 때면, 늘 그 시절 아버지의 도리깨질이 생각납니다.

그 강한 타격감이 기억을 타고 와 온 몸의 세포를 다시 울립니다.

예전엔 눈앞에서 짓이겨지는 콩대들이 참 불쌍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저런 세월의 우여곡절의 지나 돌아보니 그때 후드려 맞던 콩대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맞고 있으면서도 왜 맞는지 몰라 원망만 했던 시절.

내 아픔에만 취해, 그것이 다 자연의 순리였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말이죠.


한 알의 콩이 썩어 싹을 틔우고, 수많은 콩을 매달며 마침내 ‘콩이 되었다’ 기뻐할 무렵,

다시 껍질이 터지고, 몸이 짓이겨지고... 이제는 콩이 아닌 무언가로 다시 거듭나라 종용받습니다.

축축한 땅 속에 스스로를 묻고, 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과 거센 비바람을 견디며 간신히 맺은 콩인데, 그걸 이제 와서 버리고 다른게 되라니요.


어린 날에는 콩대를 떠나려 하지 않고 매질에 버티는 콩알이 안쓰럽기만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매질을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였고, 해방이었습니다.

매타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 놓아야 함을 알겠습니다.

평생 원망만 하며 살았던 그 도리깨가 실은 “때가 되었으니 새롭게 살라”는 자연의 깨우침이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이더군요.


스르르~

그렇게 아픔도, 원망도 서서히 걷혔습니다.


요즘, 온 세상이 매타작을 겪는 듯합니다.

다들 그러하듯 나도 아팠습니다. 이 모든 게 지나가리란 걸 알면서도, 그 매질 하나하나가 버겁더군요.

웃으려 애써도 쉬이 웃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하니 마음만은 편안합니다.

그렇게 맞고 나서야, 비로소 삶이 알아지고 길이 보이더군요.


때가 되면 콩알은 각자의 길을 가지요.

대부분은 갇힌 꼬투리를 벗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지만, 더러는 다른 길을 가기도 합니다.

꼬투리를 움켜쥔 채 내 것만 챙기려는 콩,

세찬 매질에 담장 너머로 튕겨져 나간 콩,

담벼락 밑 폭신한 흙더미에 깔려 다시 싹을 틔우는 콩...

변화를 거부한 콩들은 결국 불태워지거나, 썩거나, 다가오는 겨울 추위에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콩알의 원망으론 도리깨질을 멈출 수 없습니다.

도리어 콩알의 가슴만 상할 뿐이죠.

이 철에, 이 매타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싸우되 진정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도리깨를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도리깨를 어떻게 쓸 것인지...

나 혼자만 살겠다고 꼬투리를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히 돌아볼 시기인 듯합니다.


잃을 게 많지 않은 자들은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잃을 게 많은 자일수록, 거짓과 선동으로 자연의 시간을 뒤엎으려 합니다.

낡아버린 꼬투리를 벗지 않으려고 말이죠.

쭉정이임을 들킬까 두려운 겁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빈 내면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탐욕을 일삼는지도 모릅니다.


자연에서 자라나 마당이란 심판대에 섰다면, 콩일 때의 작은 세계관은 이제 벗어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더 큰 세상에서 이로운 존재로 새로이 태어나는 선택의 때가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어떤 도리깨를 맞고 있는지,

콩으로 남으려는지 메주로 변화하려는지...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오지 않았더라면 콩타작이 기억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오래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배려가 참 고맙습니다.


어제는 가을비가 듣더니

오늘은 가을이 한 뼘 더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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