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인생의 첫 사회학교입니다

네가 무엇으로 힘들다면, 그걸 연구하라. 퇴사를 고민하던 신입사원 이야기

by 지은담


“직장 그만두려고요.”

카페 37, 주말 늦은 오후였습니다.

20대 초반의 앳된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한참 세상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반짝일 나이인데,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국가 인재 양성기관에 근무 중이며, 입사한 지는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간 맘고생이 심했는지, 느린 말속에서 체념과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표를 내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나누며 함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저 역시 두 아들이 10대를 벗어나는 시기에 있었고, 그녀가 꼭 내 자식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근무지 특성상 상명하복이 뚜렷한 조직 문화 속에서 다혈질 상관의 질책이 지속되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사직을 결심했다 하더군요.

느리고 낮게 읊조리는 말투, 빛을 잃은 눈동자에서 그녀의 내면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매우 지친 상태로 보였지요.


나 또한 20대 중반, 비슷한 상처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지요.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물들어가는 과정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결혼 직후 빠르게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나눈 뒤, 재미 삼아 배웠던 타로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녀의 마음도 살펴보고, 인생 선배로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무너진 자존감을 먼저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실력이 떨어진다기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보였었죠.

상관으로부터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 수시로 질타를 받는다는 그녀에게,


“이제 겨우 몇 달 수습기간이잖아요. 지금 업무가 1년 뒤에도 어려울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더군요.


“사람마다 정보를 파악하고 수용하는 데는 저마다의 속도와 깊이가 있는데... 짧은 시간, 단편적인 면만 보고 그 사람을 무능하다 할 수 있어요?”

"......"

“상관의 질책이 나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연단의 한 방법이라면요?”

"......"


그도 남성적인 조직에서 버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친 말을 배우게 된 또 다른 피해자였는지도 모른다며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말이 거친 사람들이, 알고 나니 불안이 심하더라고요. 혹시 그래서 OO 씨에게 더 기대려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당신에게 기대가 컸을 거예요.

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이 어딨어요.

사수 중에도 하나하나 잘 이해시켜 주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배우도록 밀어내는 사람이 있는 건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실망이 미성숙하게 드러난 걸 수도 있어요.

혼나면 ‘네’하고 더 노력하고... 그럼 돼요. 처음에야 힘들겠지만, 그게 오히려 빠른 길이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곤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왜 일어났을까를 연구하고, 일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 대상이 상관이라면 그의 살아온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보라고요.

우리 주변에는 결핍과 상처받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그렇게 이성적으로 내게 닥친 상황을 연구하다 보면 업무 실력도 늘고 사람을 대하는 능력도 키워지니 일석이조, 더 이상 주눅 드는 일은 줄어들거라 말해주었습니다.

상관도 그 자리에 있다는 건 내가 모르는 실력이 있다는 뜻이니,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힘든 건, 나랏일을 하는 기관 특성상 어쩌면 국가의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그릇으로 단련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네가 무엇으로 힘들다면, 그걸 연구하라"


대수롭지 않은 말 같지만,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저는 그 가르침을 붙들고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이더군요.
스트레스에 휘둘리기보다 상대와 상황을 연구하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이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고 자연스레 스트레스도 내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런 나의 경험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당신은 생각보다 내면이 깊고,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 그대로 전했습니다.


“직장은 또다른 사회학교예요. 먼저 직장을 공부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판단해도 되잖아요.”


“3년만 공부하는 자세로 직장 생활하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능력자로 바뀌어 있을걸요.”


그날 조용히 카페를 나간 그녀가 며칠 뒤 다시 카페를 찾아왔습니다.

전과 달리 얼굴에 미소를 그리곤 카운터에 붙어 서서 귓속말을 하듯 조용히 말하더군요.


“저 그냥 다니기로 했어요...감사합니다...”


계속 눈 맞춤을 하다 살짝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쑥스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늘이 사라지고 생기가 돌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참 잘됐다 싶었지요.


요즘 뉴스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나도 한때 그랬고, 우리 아이도 그랬고, 그녀도..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OECD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젊은이들이 마음 편히 꿈을 펼칠 무대를 우리 어른들이 마련해주지 못했습니다.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제는 내 아이만 챙기는 게 아니라, 우리 곁의 많은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듯싶습니다.

고민을 나누고 의논할 곳이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귀한 생명을 저버리기도 하지요.

따뜻하게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그들의 말을 들어 주기만 해도, 아마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산율보다 더 시급한 건, 지금 살아 있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는 일 아닐까요.


이제는 집에만 부모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이웃에도, 사회에도 부모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지러운 뉴스 속에서 이제야 부모가 뭔지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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