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는 목욕탕

경청, 또 다른 해원의 길

by 지은담
말의 그늘까지 품는 귀, 그곳에 빛이 내린다

며칠 전, 할 일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느긋한 마음으로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때는 덜고, 세상살이 이야기는 덤으로 얻어 오는 곳, 목욕탕. 그중에서도 사우나실은 살아있는 정보가 모이는 가장 순수한 플랫폼이지요.


그날도 곧장 사우나실로 향했습니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중년 여인이 가장자리에 앉은 여인들을 향해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몇몇이 조용히 자리를 털고 나갔습니다. 표정을 보니 별 관심은 없어 보이더군요.

관객이 사라지자 머쓱해진 여인은 제게 시선을 옮기더니 15분짜리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15분 짜린데,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
“그렇죠...”
작정하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그래? 내가 말이야, 아는 동생이~~”


그녀는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지인의 부탁으로 영업장 이전 정리를 도왔는데,

수고비를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언급이 없어 서운함이 쌓였고,

자신은 늘 남을 돕고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였죠.


“그분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며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살아나더니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그 사이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레 함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자칭 부동산 전문가라는 이는 이야기 속 인물의 남자친구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고,

다른 이는 관계 정리에 대한 팁을 덧붙였습니다.

어느새 사우나실은 소박한 고민 상담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가 귀를 기울이자, 처음엔 불만 가득하던 그녀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고,

이야기를 마칠 즈음엔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습니다.


사우나실을 나선 그녀는 잠시 뒤 박카스 한 병을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거 주고 가야 될 것 같아.”
“아뇨. 여기 옆에 어르신들...”
“아이, 자기 준 건데 먹어도 돼.”

서둘러 나가는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는데, 옆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서 준 거니 그냥 마셔요.”
오랜만에 마신 박카스 한 병이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녀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은 시원해졌을까?'


돌아보면, 예전의 나도 그녀와 비슷했습니다.

대인관계에 서툴고 세상살이에 무지했던 시절, 속은 답답한데 털어놓을 곳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지만, 용기 내어 꺼낸 말은 공중에 흩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고, 점점 더 고립되어 갔죠.

그 시절 제 곁엔 제 말을 마음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자기 삶에 바빴고, 저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척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있어도 귀는 닫혀 있었던 셈이죠.


불편한 이야기는 쉽게 외면받기 마련입니다.

귀 기울이지 않은 말은 허공에 흩어지고, 감정은 쌓여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지요.

결국 자신이 실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반복되는 말속에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을 꺼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말은 덜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거워졌습니다.


살다 보니 알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에 바쁘고,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요.

내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분별없이 들어야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죠.

내 지식, 내 생각으로 늘 머릿속이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경청은 매우 어려운 수련과정입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이 경청의 노력이 부족해 수많은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하죠.

저도 수년간 노력해 봤지만, 여전히 경청은 제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진심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참 멋져 보입니다.

그들의 차분한 눈빛과 태도에서 여유와 겸손이 느껴지고, 자연스레 존중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청소해 주는 일입니다.

불편해하며 들으면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들어주면 사람을 살리는 영약이 될 수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그 세상도 우리가 만든 것. 닫힌 귀와 닫힌 마음부터 먼저 열어야겠습니다.

그날, 나는 미숙했던 젊은 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답답함에 귀 기울일 때마다 내 안의 오랜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해원의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도 같습니다.

억눌린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작은 대나무숲이 되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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