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적 지식을 명시적 철학으로 바꿔주는 책
사람은 자칫 목적과 수단을 쉽게 착각하기 때문에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중략) 보고-연락-상담도 마찬가지다. 보고-연락-상담은 일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은 효과적인 기획을 낳는 것이지만 어느 틈엔가 그것이 역전되어 버린다. 보고-연락-상담을 잘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원은 정말 많다. 기획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회사에 이런 사원들의 비율이 높아지면 생산성은 떨어진다. 언뜻 똑똑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원은 회사의 대들보를 위험하게 만드는 흰개미와 비슷한 존재다.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이유는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간단히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금전 쪽으로 목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왜 기획의 바이블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책. 맥락적으로 언뜻 알 것만 같았던 추상적 지식을 문장으로 치환해주는 책. 안주하는 나의 뼈를 때리는 책. 그 누군가들은 어떻게하면 안주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책.
어쩌면 지금도 나는 목적과 수단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함이 목적인데, 어떻게하면 브런치에 이를 잘 녹일 수 있을까, 어떤 사례를 넣으면 좋을까. 수단을 목적처럼 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많은 직원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보고하고, 연락하고 지시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문제가 발생해도 보고하고 지시받았으니 그대로 이행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문제의 본질과 내가 행할 수 있는 해결방안에 대한 생각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일상적으로 행하기 힘들다. 기획적 업무는 더하다. 예를 들기도 쉽다. "내년도 브랜드 운영 계획 만들어봐" 라고 하면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것에 더 치중한다. 그 기획과 계획이 실제로 내년도 회사와 나의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업계획 주간이 무사히 끝나고 대표님까지 보고가 끝나기를. 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그 것은 수단일 뿐인데도 목표처럼 작동한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런 문제를 비단 직원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스다 무네야키 같은 철학을 가진 CEO가 직원들의 자유와 의무에 대해 제대로 기업문화를 세우지 않는 이상, 피상적인 업무들은 지속될 뿐이다. 다만,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바탕으로 실제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직원이 되는 것은 자기의 몫이다. 3년전의 나라면, 목표와 수단, 그리고 이와 관련 된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 것도 이 책에서 말하는 '자신을 기획 없이 살 수 없는', '생존'의 문제로 나를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손가락 빨면서 생존 운운하기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부서이동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큰 기로였고, 나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일어났던 나의 사고 변화가 사실상 3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르는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일잘러라는 말이 있지만 일잘러의 가장 큰 덕목은 스킬이나 지식으로 넘어설 수 없는 가장 큰 대전제가 있다. 그게 바로 "[자유와 의무]를 자기 스스로 명확히 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맥락적으로 알고 있긴 했지만 정확히 표현은 못했는데, 지적자본론을 읽어가며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을 느낄 때 마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나의 정신적 루틴을 깬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변명과 공감을 하자면, 나같이 같은 회사에서 10여년 다니면서 이 부분을 행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공고한 대기업만의 기업문화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에서 하려는 최선의 노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