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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두 13년차 할 수 있어!

팀장님~! 덕분에 입사한 2008년 이후로 벌써 13년차가 되었어요. 늘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오늘따라 더더 그립네요!! 조만간 꼭 만나 뵈었으면 해요. 시간이 나실 때 연락 주시면 제가 찾아가 뵐게요!!




저녁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거실 소파에 누웠다. 티브이를 보며 한껏 늘어지고 있었는데 카톡이 왔다.


J가 벌써 13년차라니....


그녀가 첫 출근을 했을 때 그녀가 이렇게 출판계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면접 때 봤던 그녀는 긴 생머리를 내려뜨린 귀여운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왠지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면접관: 취미가 게임이라고 쓰여있네요?


J: 네. 게임을 정말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때 게임에 빠져서 매일 잠도 안 자고 게임을 하자 엄마가 컴퓨터 전선을 모두 가위로 잘라버리셨을 정도였어요.


면접관: 아, 그렇군요. 직장을 다니다가도 게임에 빠져서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J: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충분히 조절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경험으로 '무언가에 푹 빠지더라도 그만두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게임에서 손을 떼었고, 그 결과 원하는 대학에도 잘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접자들의 여러 가지 장단점을 들어왔지만, 게임에 빠져 생활이 안될 정도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면접자는 J가 처음이었다. J를 신입사원으로 뽑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면접관들끼리 이견이 있었다. 게임에 빠져 생활이 안될 정도의 상황까지 갔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케이스였다. 게다가 J는 너무 자유분방한 타입이고 편집 업무를 할 정도로 차분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의견은 달랐다. 나도 J가 편집일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게임에 미쳤었다'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인가에 미쳐본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평생 무엇인가에 미쳐보지 못하고 삶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무엇인가에 미쳐본 사람만이 또 다른 것에 미칠 수 있다. 게임에 빠져서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의 경험을 했으니 깨달은 바도 있을 테고 그런 집중력이 업무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점을 숨기지 않는 J의 솔직함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난 J를 나의 동료로 뽑았다.


J와의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입사원이 빨리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어 책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 알려주는 몇 차례의 ojt 수업을 했다. '이런, 맙소사!' 두 시간짜리 일대일 업무 수업에서 J는 졸고 있었다! 처음 겪는 신입사원의 유형에 몹시 당황했다. '아, 역시 그 게임에 빠졌었다는 부분이 발목을 잡는 것인가?' 잠시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졸게 된 이유를 물은 에 신입사원의 자세, 직장인으로서 최소한의 긴장과 성실함에 대해 가르쳤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에서 업무 중에 그런 일이 없도록 밤에 게임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를 권했다. 다행히도 J는 피드백을 한 이후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J는 때때로 엉뚱하고 감정적이어서 많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일할 때는 열정적이었다. 그러한 부분은 추후 일을 진행할 때 잘 드러났다. 자유분방한 면이 회사생활과 맞지 않아 그런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고 절충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업무 지시를 하면 지시한 방향에 맞춰 업무를 잘 해냈다.


일의 센스를 감각적으로 타고 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주변을 넓게 관찰함으로써 일의 센스를 기를 수 있다.


내가 신입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신입이라고 시키는 일부분만 보지 말고 책 한 권의 개발 과정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르라는 것이다. 신입에게는 주로 교정, 교열 업무가 떨어지기 때문에 시장조사, 기획부터 시작하여 인쇄에 이르기까지 책 개발 프로세스를 전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그래서 선배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 속에서 선배들의 업무를 관찰, 질문함으로써 업무를 확장해서 배워야 한다. 이에 맞춰 일을 하고 있는지는 3년차가 되면 실력으로 나타난다. J는 가르쳐준 대로 이것을 잘 인지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보다 일을 더 넓게 보고  센스있게 일을 했다.


그 결과, J가 5년차가 되었을 때 다른 팀의 일부 선배들보다 업무력이 나은 정도의 역량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른 팀에 배치되어서 J보다 더 높은 연차의 경력자가 있는데도 J에게 메인 프로젝트 진행이 맡겨졌다. J는 그러한 일들을 기꺼이 받고 어려움 없이 척척 해냈다. 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연차의 J가 메인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그녀도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돌고 돌아 J와 다시 같은 팀이 되었을  개발 일정이 타이트한 프로젝트 하나가 나에게 들어왔다. 다른 책 개발기간의 반도 안 되는 기간에 동급의 책을 개발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회사에서도 그 프로젝트를 갑자기 진행하라고 하는 것이 무리인 것을 알았다. 회사로서는 그 프로젝트의 진행이 필요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말지는 나의 선택이라고 했다. 잠시 고민을 했다. 현재 맡은 프로젝트만 끌고 가면 질 높은 프로젝트 결과물을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와 어학 부서의 비전을 생각할 때 그 프로젝트는 진행되어야 했다.


그 당시 내가 그 프로젝트를 맡을 경우, 팀 역량과 업무량에 무리가 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보통 10년 차의 팀원이 필요했다. 내 팀 내에 혹은 다른 팀 내에  10년차는 이미 다른 프로젝트를 맡고 있고  상황에서 그 프로젝트를 맡길 사람은 7년차인 J밖에 없었다. J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며칠 간의 고민 후 나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J의 긍정성과 열정, 그리고 나의 역량이 합해지면 그 프로젝트를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난 J를 믿고, J도 나를 믿고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맡았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그녀와 함께 그 프로젝트를 함께 할 동료로는 신입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프로젝트라 이 일을 진행할 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신입은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 두어 다시 인력 문제가 발생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는 색인의 일부분이 잘못 들어가는 오류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그 시절 J에게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생겼다. 다른 사업부에서 경력 인력을 가까스로 끌어오고 최종적으로 오류를 잡아 수정했다. 그리고 J는 힘든 개인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그 프로젝트에 몰입하여 그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지금 J는 디지털 출판 분야에서 일을 한다. 그쪽 팀장이 J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어떤 인재인지를 묻는 전화가 왔을 때, J를 메인으로 쓰고 칭찬과 적당한 피드백을 해주면 주요 프로젝트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전했다. 그 얼마 후 그 팀장과 통화를 했을 때 J가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J도 팀장급이다. 내가 지금 J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이제 어쩌면 오히려 J가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안부를 전해오는 녀석이 고맙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나의 사부가 될지도 모르는 J와 저녁 식사라도 한 끼 해야겠다.


J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리고 잘 성장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항상 지켜보마.




J는 MZ세대다. MZ세대 중에서도 좀 튀는 성격으로 면접관들이 부정적으로 보았었던 J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J에게는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 선배의 조언을 듣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 새로운 업무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 이 세가지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이 면접관들이 부정적으로 보았던 그녀의 단점을 뛰어 넘었던 것이다.


요즘 MZ세대가 퇴사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뉴스나 기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J처럼 제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몫을 열심히 해내고 있는 MZ세대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도 쉽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멋진 MZ세대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OO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그동안 네가 겪은 모든 일들이 네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거야.10년 후 너의 멋진 모습을 기대할게. 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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