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입덧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나는 통통한 편이다. 뚱뚱이는 아니다. 건강검진을 하면 비만으로 나오긴 하지만, 얼굴이 조금 말라보이는 탓에 가끔 내 몸무게를 말하면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며 '전혀 그렇게 안보여요!' 라고 한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사실은, 내 기준에 내가 꽤 귀여운 통통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결혼 직전부터 내 몸을 걱정하셨다. 평생을 날씬이로 살아오신 분이라 살이 오른 내 모습이 다소 걱정 되셨는지, 자꾸 옷을 사주겠다며 쇼핑을 가서는 라지사이즈의 옷도 꽉 맞아 전혀 사고 싶지 않은 내게 '살을 좀 빼야겠다' 하시는 것이었다. (참고로 백화점 옷은 너무 작게 나온다. 정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잔소리는 그쳐야 할 선을 지키지 않는 법, 이 후 어머님은 내가 기분 나쁜 티를 적극적으로 내지 않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너 그러다 성인병 걸려~' 라는 이야기로 한발짝 더 훅 치고 들어오기도 하셨다. '운동을 하는데도 잘 안빠져요~ 그냥 이렇게 살려구요' 라고 하면 '니가 악착같이 안해서 그래, 악착같이 해. 응?' 하시며 살 빼는데 성공하면 100만원을 주시겠노라는 약속까지 내걸었다.
나는 점점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어머님 집의 이쁜 빈티지 가구들처럼, 며느리 역시 예뻤으면 하는 욕심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시 한번 살 빼란 이야기가 카톡방에서 등장했을 때 '제가 통통해서 싫으세요 어머님? 저 지금도 귀여운데, 자꾸 살빼라고 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 라고 말한 후 잠깐 그쳤던 몸에 대한 간섭은, 임신을 하고 나서 새로운 이유를 가지고 자꾸 내 부정적인 기분의 문을 두드린다.
'입덧은 괜찮니?'
'아 잠깐 괜찮아서, 자두 사러 왔어요!'
'그래? 그래도 단 거 많이 먹지 마라. 임신 당뇨 와!'
바로 임신 당뇨.
현재 임신 9주차, 4주차 쯤 부터 알았으니 임신을 경험하고 있는 약 1개월 사이 '임신 당뇨'라는 단어가 어머님 입에서 나온 건 기억 나는 것만 3번 정도인데 모르겠다, 혹자는 너무 예민한거 아니냐고 할지도. 그러나 기존에 들었던 '성인병'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느낌을 떨칠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호르몬 탓인지 자꾸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기분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걱정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게 아니다. 나도 의사 선생님께 혹시 내가 살을 뺄 필요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선생님께선 '엄마는 우리 동네에선 뚱뚱한 걸로 쳐주지도 않아'라며 걱정말라하셨고, 오히려 입덧으로 살이 빠지고 있는 내게 임신 초기에 살이 빠지면 안된다며 수액을 놔주셨다. 내가 이렇게 알아서 잘 챙기니 좀 모른척 해주시라는 건데 어머님은 아무래도 여전히 내가 임신으로 '살이 많이 쪄서' 임신 당뇨를 앓게 될까봐 너무 걱정스러우신가 보다.
이 어리둥절하고 짜증나는 감정들이 슬픔으로 변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엄마가 나를, 정말로 오롯이 나를 걱정할 때다. 밝히건대, 자라오는 과정에서 부모님과 틀어질 일이 많았던 지라 현재에도 역시 부모님과 사이가 썩 달콤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엄마의 걱정을 듣고 있노라면 이 모든 짜증이 서러움으로 바뀌곤 한다.
입덧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야기하면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내 딸이 닳는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빨리 끝나야할텐데'
'먹고 싶은거 있으면 뭐라도 알려줘, 그거라도 먹게 엄마가 구해서 보내줄게'
'어떡해, 엄마가 입덧해서 너도 입덧하나보다. 미안해'
그렇지만 시어머니의 핀트는 미묘하게 다르다. 입덧으로 수액을 맞으러 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전화기 너머로 '정말 대단한 애가 태어나려나보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고, 하루종일 토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에도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해야 예쁜 아가가 태어날거야'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너무 힘들어 누가 차라리 날 기절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내게만 미치지않는 듯한 어머님의 인류애앞에 분단위로 점점 더 서운해진다.
결혼 후 한동안 어머님의 자랑거리 1순위였던, 누구보다 시댁식구들에게 애교가 많은 나지만 제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애교쟁이 며느리도 그 미묘한 차이 앞에 우두커니 멈춰서는 마음을 숨기기가 쉽지않다. 임신과 입덧을 대하는 두 가지 반응 앞에 너무나 선명하게 갈라지는 마음의 온도를 느끼는 걸 보면 결코 누구에게나 쉬운일은 아니지싶다.
마지막 임신 당뇨 언급 며칠 전, 어머니께선 내 긴 머리를 만지며 '아기를 낳기전에 미용실에 가서 단발머리로 시원하게 자르라'며, '아기 낳으면 거추장스럽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가 항상 '아가씨 때 지나면 머리 못 기르니 지금 많이 기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 났다. 나는 조금 더 불편할지 모르겠으나 그냥 머리를 허리까지 길러 히피펌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기에게 양보하고 희생할 것은 내가 정하기로 하고, 중요하지 않고 나를 배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잔소리는 듣지 않기로 다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