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입덧 주간이었다.
화요일엔 심한 입덧으로 재택근무 중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는 판단으로 오후 반차를 내야했고 수요일에는 부대찌개를 먹고 토하고, 목요일에는 김치냄새를 맡고 토하고... 하루종일 토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까지 다 토해버렸던걸까. 혼이 나간 것 같았다.
금요일에는 결국 링겔을 맞으러 산부인과에 가야했는데, 간 김에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약도 처방 받아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약을 먹고나서 벌어졌드랬다.
문제의 입덧 약은 저녁 공복에 2알을 먹는 것이었는데, 토요일 오전에 잠깐 나갈 곳이 있었던지라 입덧 증세가 심한 편이었던 금요일 밤에 약을 복용하기로 했다. 덕분인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속 울렁거림은 가라앉은 듯 했지만, 얼마 못가 병든 병아리 마냥 온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나는 노로바이러스에 걸렸지만 아직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지 몰랐을 때 처럼, 머리만 닿으면 계속 잠 들고 물을 먹기 위해 일어나 걷는 10걸음 조차 힘이 들어 내 개인 수발러인 남편을 불러야했다. 뿐인가, 화장실을 참다참다 가야할 때도 '오빠!!!!' 하고 불렀고,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도 짜증스럽게 '오빠!!!'를 불렀다. 잠꼬대 처럼 '망고 주문해 망고 먹고싶어'라고 말하기 전에도 '오빠!!!'를 외쳤다. 그럼 어김없이 작은 방에 갇혀 공주처럼 잠자던 남편은 앓는 듯 '어어..' 소리를 내며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뛰어왔다.
그렇게 '오빠!!!' 와 '어어..'를 한 20번 쯤 반복하니 저녁이 되었고, 하루 온 종일 잠만 잔 나는 약간의 컨디션이 돌아온 듯했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대로(어쩌면 뱃 속의 사람이 될 예정인 세포가 이끄는 대로) 쿠팡이츠에서 '오징어 볶음'을 찾기 시작했다. 그 때 였다.
"저녁 못 먹을 것 같아.. 나 입덧 하는 것 같아." 라고 남편이 말했다.
"????? 지금 수발 들기 싫다는 소리를 완곡하게 하고 있는 것이냐, 남편?"
"아니야.. 진짜로 속이 안좋단 말이야... 정말로 입덧하는거 같아 우욱!우욱!"
남편은 본인 가슴을 탁탁치며 꾸역꾸역 토를 참아내고 있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동시에 '이것 봐, 진짜 입덧인거 같다니까?' 하는 원망 어린 눈빛도 보냈다.
그리고 실제 얼마안가 오징어 볶음+불고기 백반이 한 상 가득 도착 했을 때, 백정처럼 우걱우걱 식사를 해 나가는 내 옆에서 그는 미처 세번의 숟가락질을 끝내지 못했다. 나는 밥을 계속 먹으며 말했다.
"아니, 진짜 남자가 입덧을 한다고? 그게 말이 됨?"
"내가 찾아봤어! 이것봐! 남편 3명중에 한 명이 겪는 흔한 일이라잖아! 왜 내말을 안믿어주는거야!!!"
그거 보여준 휴대전화 화면에서는, 아래와 같이 '쿠바드 증후군' 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무려 1/3이 겪는 흔한 증상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와이프를 찐으로 사랑하는 남편이 많다는 말인가? 너무 아름답잖아?
다소 감동받고 있는 내 옆에서 남편은 최근 새벽 2시-3시까지 잠 못이룬다는 얘기와 함께 쿠바드 증후군 셀프 체크 리스트를 읽어내려가며 자신이 '정말로' 입덧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굳혀갔다.
그리고 귀가 얇은 편인 나는 점점 어쩌면 정말로 그가 쿠바드 증후군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보다 남편이 나를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루 종일 남편한테 짜증을 낸 것이, 또는 우리가 먹여살려야 할 또 다른 생명이 곧 탄생 한다는 것이 오빠에게 알게 모르게 부담이었을까? 매번 토할 때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아기를 가지는거야?ㅠㅠ오빠는 뭘하는거야? 오빠는 왜 이렇게 쉽게 아이를 가지는거야? 왜?'라고 외치는 말을 전지전능한 누군가 들은 것일까?
하여간 남편이 나와 내 뱃 속에 열일하고 있는 세포를 생각하며 입덧 씩이나 한다는 것에 조금 미안하지만, 밤새 꾹꾹 거리며 '니가 매일 이렇게 힘들었구나ㅠㅠ' 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니 웃기면서도 약간의 고소함이 없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ps. 남편 끝까지 함께하자,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