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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Aug 31. 2020

산모의 수첩(1)

자기 전 대충 쓰는 진실과 호르몬 발 눈물의 그것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나니 병원에서 산모수첩이란걸 줬다.


소싯적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 좀 한다했던 나지만 그 모든 허황된 꾸밈을 다 내려놓고, 훗날 완벽한 인간의 형태를 한 아이와 앉아 웃으며 읽을 생각으로 '쿨하되 진실하고 따뜻하되 재미있는 컨셉'의 글을 한마디씩 적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과 옮겨 적은 글은, 30여년간 몸소 느낀 나의 성격상 산모수첩이 10년 20년 지나도록 실물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여 이 곳에 백업해두는 의미이니, 이어지는 바로 아래 문장은 오늘의 다짐이다.


먜기야, 니가 인간의 형체를 하지 못한 순간부터 너를 위해 많은 용기를 내야했던 32살 오늘의 나처럼부족하더라도 매번 용기 내기를 마다하지 않는, '노력하는 엄마'가 될게.

먜기야 침대에 누워쓰느라 이모냥이지 원래 나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다.

2020년 8월 17일

하이, 먜기

오늘 니가 지어놓은 0.4cm짜리 아가집 잘 보았다.

아직 내 몸도 간수 잘 못하는 나를 엄마같은 칭호로 부르자니 부끄러움이 입을 틀어막네.

나는 둔한 사람은 아니니 신호를 자주 보내려무나.

네가 불편하다면 내 몸에 세 들어 사는 10개월 동안은 일도 대충하고, 짱돌(남편)이를 좀 더 혹독하게 부리고, 심심해도 잘 누워 생활할게.

부디 건강하게 만나자.

ps. 아 호르몬 탓인건 알겠는데 뭐 눈물이 자꾸 나냐, ㅋㅋ 웃기지마라.


2020년 8월 25일

어이 먜기, 사실 이건 지난 일기다.

오늘은 8월 29일이고 오늘에서야 산모수첩을 병원에서 줘서 지난 얘기도 기억할 겸 남겨두는거야.

게으른게 아니다 내가.

와.. 야 오는건 좋은데 조용히 좀 오자.

입덧 너무 심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생명의 탄생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조금 힘든 기분이 든다.

물론, 널 탓하는 건 아니다.

난 겁이 없고 용감한 사람이야. 이것보다 더한 것도 감당하고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2020년 8월 29일

심장 소리 잘 들었다.

개미만한 게 열심히 일하느라 지난 주 내내 날 호르몬 속에 입덧하게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

뭐.. 내가 원래 눈물이 좀 많다.

그래서 니 심장소리 들으면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역시나, 뭐라 형언할 수는 없지만 매우 긍정적인 기분으로 눈물 한방울 흘렸다, 먜기야.

언제든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친구같고 언니같은 그런 사람이 될게.

2주뒤에 다시 만날 때까지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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