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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Aug 31. 2020

입덧, 아...

말로던 듣던 그놈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공감능력이 특출한 편이다. 그런데도 왜몰랐을까? 그 많은 임산부들이 입덧을 이렇게 힘들게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가끔가다 어여쁘게 '웁, 웁..'하는 정도, 왜 그 정도일거라 생각했을까? 힘들겠지.. 힘들겠지만... 왜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 모든 것은 매스미디어의 잘못이다.

티비에서 보는 전형적인 임신을 들키는 장면은 늘 그렇지 않은가. 며느리가 식구들과 밥을 먹다 말고 '웁...' 하면, 눈치는 빨라가지구 다들 '너 혹시 임신한거 아니니?' 부터 묻는다.


아... 행여라도 내 글을 읽는 남녀노소 한국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알아주기를 간청한다. 그건 너무나 잘못된 장면이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웁' 이 아니고 '으으읍! 웱! 뷁! 뛟!!!!! (다다다다) 퉯!!! 꿹!!!!! 퓨루르르르를륿ㅠㅠㅠ' 이다, 정말로.

('임신 한거 아니니?'라고 물을 때까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미 첫 '읍!'과 동시에 곧 토할 것이라는 몸의 신호인 신물이 목구멍을 타고 역류를 해오는걸?)


처음엔 나도 그저 입맛이 좀 없네? 정도 였다. 물론 그것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살면서 '내 주변에 너처럼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라는 말을 벌써 몇번이나 들었던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바로 라면도 먹을 수 있고 삼겹살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속이 안좋으면 속이 좋은 음식을 먹어 내리고, 지난 번에 먹어서 맛이 없었던 것도 넓은 마음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며, 맛있을 때까지 먹어봐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매운것을 먹고나면 단것을 먹고 싶고, 단것을 먹고 나면 매운것이 다시 먹고 싶어 지는 사람이었고, '혼자산다고 짬짜면을 왜시켜? 짜장면 하나 짬뽕하나 시키면 맛있고 치안에도 좋은것을?'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쌀밥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면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고, 빨간 국물이라면 그저 다 싫었다. 그렇게도 좋아 못살고 없어 못먹던 '고기'의 냄새가 날 것 같아서. 먹을 수 있는 건 시원한 초록색 사과와 냉면 육수 정도였고 그마저도 먹고나서 개운하지는 않았다.

 

지난 날의 나를 생각하며 '그래 토할것 같아도 먹을 수는 있어!'라는 생각으로 햄버거를 시켜먹다가 토했고, 토한 다음에는 임신 이전부터 달고 살던 역류성 식도염으로 숨쉬기도 고통스러운 밤이 찾아왔다. 탕수육을 시켰는데, 초능력이 생겨나 남들에게는 나지 않는 생선비린내가 난 적도 있다. 당연하게도 몸무게도 임신 전 PT를 하던 때보다 더 빠졌다.


근데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임신은 꼭 먹지 말라는 신호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요 근래 새벽 4시-5시면 기상을 하는 나는 속이 아파서 울렁거리는지, 울렁 거려서 아픈지 모를 느낌에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몸에 무언가를 넣어야만 했다. 때문에 벌써 이번주 두번이나 새벽에 남편 몰래 일어나 간장계란밥을 해먹었는데,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오는 새벽녘에 작은 스탠드 하나 켜고 혼자 햇반 그릇에 간장 계란 밥을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이 꼭 하나의 짐승같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이런걸 먹고 있는 내가 짐승같이 느껴져서 한 컷.... jpg


앞서 지난 2주가량 임신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이 좋은걸 왜 이제야 했지? 싶었던 나였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찾아든 입덧 앞에 선뜻 반성을 한다. 그래, 임신 후에 왜 다들 우울증에 걸리는 지 알겠다. 이렇게 하루종일 멀미같은 울렁증과 머리아픔을 경험한다면 그 누구라도, 그게 노홍철이라도 우울증에 걸릴거라고 장담하며 말이다.


ps. 모든 입덧러들, 오늘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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