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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Aug 31. 2020

본격 임산부 라이프의 시작

마음과 몸에 찾아온 변화들에 대하여

HCG 호르몬 수치가 9가 나오고 이틀 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35라는 낮은 숫자를 주셨다. 아기집을 보기위해서 일주일 후 찾아오라고 했으나, 나는 임신을 미리 경험한 선배언니들의 조언에 따라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큰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 사이 몸에는 여러가지 변화들이 생겼다.

불면증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 여겼던 내가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바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회사를 가는 일이 생겼고, 아랫배가 전에 없이 당기는 듯한 불편감에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날이 있었다. 맛있는 걸 먹으러 먼길을 나갔다가 생리통과 같은 통증이 있어 급히 집에 돌아와 전문용어 '눕눕'을 시전하기도 했고, 잠이 많아져 저녁 7시-8시에 자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불편함을 이겨낼 만한 즐거움을 주는 일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같이 진해지는 임테기 선을 확인 하는 일이었다.

임신 초기/ HCG 수치가 높아짐에 따라 임테기 결과선도 진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임테기가 더 진해질 수 없을 만큼 진해졌을 때,

나는 작은 아기집도 만날 수 있었다.


30년이 넘도록 경험한 적 없는, 그래서 가능할지 조차 불명확하다 생각했던 갑작스런 육체적 변화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또한 정신적인 변화도 가져왔다.


인생에 활기가 찾아왔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일들을 해나가야 하기에 뭐든 즐겁게 느껴졌다. 병원을 언제 가야하는지, 무슨 검사를 받아야하는지, 뭘 먹으면 좋은지/안좋은지, 무슨 준비를 해야하는지, 뭘 알고 있어야 하는지 등등을 검색해도 전혀 번거롭지 않게 느껴졌다. 뿐만이랴, 목놓아 기다리던 이직에 대한 관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회사만 가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스트레스가 오히려 사라지는 듯 했다. (아마도 온 정신을 쏟을 만한 다른 관심사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양가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너무나 좋아해주셔서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아 우쭐해지기도 했고, 그와 함께 서운한 일들도 쉽게 생겨났다. 임산부라는 어떤 경건한 마음 가짐이 나 스스로 특별한 위치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을 줬다.


행복이 클수록 두려운 마음도 자주 고개를 든다. 워낙 주변에 초기 유산 경험자가 많았던지라 '혹시 이 작은 세포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어느 날 갑자기 내 배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병원을 가기전이면 매번 두렵다. 상상임신인건 아닌지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용감'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해서 나는 장군의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이 작은 아기집을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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