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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Apr 15. 2021

조리원 3일차, 그렇게 눈물이 난다

미안한 엄마가 되지 않기로 오늘도 결심

아기를 낳기 보름 전이었던가, 나는 나의 남동생에게 자식에게 불쌍하고 미안하지 않은 부모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만큼 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감정이 없지 않은가. 나는  자식이 자라서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어, 엄마만 생각하면 짠해'하기 보다는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하고 살았어, 멋있었어'하고  얘기를 누군가에게 했으면 좋겠다. 쿨한 엄마가 되고 싶다  말이다.


아이를 낳고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3박 4일간은 코로나로 인해 아이를 유리너머로만 볼 수 있었는데 아기가 나를 닮은것 같지도, 남편을 닮은것 같지도 않아서 '내가 낳은 게 얘야?', '작고 소중하다', '근데 정말 얘를 내가 낳았어?'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이 후 조리원에 와서는 그 아이를 직접 안아볼 일이 많아졌는데, 그런데 이 때부터 참 감정이 미묘한거다.


아직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참새 다리 처럼 연약한 아기의 다리를 보고 있노라면, 자면서도 낑낑거리는 이 자식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유인지 꽁꽁 싸매여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소중하고 짠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 마음의 연장선은 짠한 마음에 그치지 않고 앞 뒤로 자꾸만 길어져서, 이렇게 작고 연약한 생명을 뱃 속에 가지고 왜 나는 디카페인 커피라도 먹어야겠다고 그 난리를 쳤나, 이렇게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는데 왜 뮤지컬을 본다고 설쳤을까, 얘가 괴롭지 않았을까, 임신당뇨 식단은 왜 더 철저히 하지 못했나, 왜 남사스럽다는 이유로 더 많은 태교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하염없이 드는 것이다.


또 이 연장선은 과거로만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도 나를 끌고 가서는 남편이랑 나랑 얘 셋이서 가족이다가 우리가 나이들어 먼저 죽으면 얘는 어쩌지, 얘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완벽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얘가 이렇게 좋은데 내가 쿨한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등등 실체도 쓰잘데도 없는 걱정을 자꾸만 하는 와중에 슬퍼선지 너무 기뻐선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그렇게 난다.


엊그제는 그런 일도 있었다 아기를 보는 모자동실 시간에 시어머니랑 통화를 하다가 어머님이 나에게 아기가 예쁘냐고 물었는데, 일 순간 감정 태풍이 몰아쳐 몇초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머님이 '지고야?' 라고 다시한번 불렀을 때, 그제서야 정신으로 감정을 붙잡고 목 메인 소리로 '어...ㅠㅠ어머님.. 아기가 너무.. (흐) 너무 이뻐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눈물이 나서 어허-이히-가하 어헙 네헤...ㅋㅋㅋ


이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것이 호르몬 소관임을 분명하다는 것은 맘카페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올리는 눈물의 고충 갯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걸 보고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더 쿨해지자, 아기는 괜찮아. 내가 괜찮아야 아기도 더 괜찮아!'라면서.


할 수 있다! 씩씩한 엄마가 될 수 있다! 나는 마음을 다 잡고 또 하러 떠난다, 모유 수축!


새내기 엄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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