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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Dec 13. 2021

아기를 낳고 250일동안 생긴 일

인류는 몇만년간 어떻게 이 일을 해 왔는가

250일 전 나에게 아들이 생겼다. 조리원에서 집에 오자마자 알았다,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을


10개월동안 배가 나오고 아기가 움직이는 태동이 있어왔는데 왜 그제서야 알았냐고, 어떻게 예상하지 못했냐고 혹자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단언컨대 어느 여성도 첫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살갗으로 부대끼기 전까지 이런 거대한 변화를 모두 예상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기를 낳기전엔 모두가 내 위주로 돌아갔다. 임산부니까, 임산부먼저, 임신을 축하합니다!..하지만 아기를 낳는 순간 모든 삶의 중심이 그로 변한다. 


아기는 내 밥먹는 시간, 샤워시간을 조정한다. 아기는 내가 나가 돌아다닐수 있는 곳 없는 곳을 정한다. 아기는 또한 내가 나가서 쇼핑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한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등 모든 것을 관장한다.


나를 낳은 엄마조차 전화가 와서는 '아기 자니? 알았다.' 하고 2초만에 전화를 끊고, 가족이든 남이든 아기를 안고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아기 그림자 정도로 본다. 가끔 일한답시고 나로 하여금 자기 수발마저 들게 하는 남편을 보면 매우 화가난다. 남편과 나에게 가장 강력한 공통관심사가 생겼지만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없어서인지 남편과는 자꾸 마음으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을 안고 잠이 드는것이 익숙해진다...


무울론 내 아이를 이뻐해주고 반가워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너무나 벅차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만 나에게는 어느정도 내가 필요하였는지, 몸무게가 전보다 줄어도 퉁퉁해보이는 몸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머리스타일, 네일아트는 전생에 했나 싶은 손톱, 입고 있는 지저분한 옷을 보고 있자면 종종 무슨짓은 저지른건가 하는 물음과 함께 우울해지곤 하였다.


아이는 태어나 한동안은 2시간 마다 분유를 먹고자 하였고 나는 그로 인해 잠을 설쳤다. 분유를 먹다 잠든 그를 안아 들고 트림까지 시키노라면 1시간이 훌쩍가는데 바로 잠들지 못하고 조금 꾸물거리다 보면 한시간 또는 30분여만에 그의 밥먹는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좀비가 되어 산후조리도우미 이모님을 맞았고 친정엄마보다 남편보다 그녀를 더 반겼던것 같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는 매일 아침, '도대체 이모님도 협조적인 남편도 없던 엄마세대엔 어떻게 아기를 키운걸까? 대박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엄마를 키운거지?'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내 머리엔 초가집에서 아기 다섯을 키우며 남편과 시부모의 아침 점심 저녁을 해다바치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까지 들어와 있었다. 인류 역사상 우리세대가 가장 쉽게, 편하게 아기를 키우고 있는 것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난이도라니! 인류에 대한 존경이 절로 샘솟는다.


2시간씩 토막잠 자던 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3-4시간 마다 분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잠자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는 그가 자는 동안 샤워할 수 있게 되었고 밥은 그가 허락할때에 허락하는 시간동안 급히나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손톱을 깎다가 세번이나 피가 났지만(ㅠ_ㅠ) 이제는 안정적으로 그 종이장 처럼 얇은 손톱을 깎아줄수있다. 그는 100일여만에 목을 완벽히 가누었고, 150일여만에 미음을 먹을 수 있었다. 170일쯔음엔 혼자 앉더니 한참뒤인 190일째에 그의 필요에 따라 뒤집기를 하였고 이제는 채소, 과일, 과자, 물 등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먹기뿐만이랴. 보행기도 타고 벽집고 일어서기도 하고 점퍼도 타고 어른들이 밥을 먹으면 나도 끼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 한 자리 차지하고 앉기도 한다. 또래 친구를 만나면 손도 잡고 발도 잡고 아는 체를 하고, 누군가 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반가운 듯이 따라 웃기도 한다. 


그래, 그렇게 25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돌아보면 또 한번 많은 것이 변했다.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내 옆에 온세상이 '나의 아들'이라 부르는 아기가 누워있는 것이 여전히 낯설지만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나의 첫 크리스마스인것 처럼 설렌다. 가끔 자기전에 '엄마가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들을 낳았지?' 하고 말하는데 아이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들은 것 처럼 쌩긋 웃으며 내 얼굴에 손을 얹는다. 온 피로가 거기에 다 녹아내린다. 매일 매일 힘들지 않은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힘든 기억은 다 증발하고 이 녀석이 분유먹다 웃어준 것, 목욕하다 웃어준 것, 자다 일어나 웃어준 것, 놀다말고 웃어준것, 변비를 앓다 시원하게 똥을 싸주어 고마웠던것(?), 처음 내 얼굴에 손을 얹어준 것 그런것들만 기억이 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얘가 날 닮았다고? 이렇게 이쁜데? 고맙다. 정말 고맙다. 어쩌면 너를 만나려고 엄마는 30년을 넘게 살고 너희 아빠랑 결혼한걸까?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보고 눈뜰때마다 반갑다고 웃어줘서, 엄마라고 찾아줘서 정말고마워. 지난 250일은 고3때보다 80배 정도는 더 바빴고 잠도 설쳤지만, 앞으로 250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대도 그걸 알고서도 엄마는 너를 낳았을거야. 니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우니까.


또 이렇게 아들 사랑을 늘어놓으며 글을 맺지만, 아기를 낳은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겠지?... 매일 저녁 찾아오는 월요병을. 400일, 400일, 500일 그 속을 묵묵히 걸어갈 내일의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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