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순 집밖에 없는데?”
남자가 시동을 껐다. 밖은 아득할 만큼 한적했다. 서로 닮은 지붕들이 개울물 아래 깔린 바위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삐쭉 솟은 파이프로 연기를 피워댔다. 연기가 흩어진 하늘은 짙었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산이 그림자처럼 늘어져 있었다.
“산도 있네요.”
“그래 뭐.”
짐을 고쳐 맸다. 인사를 고르는데 남자가 먼저 말을 던졌다.
“근데,”
남자는 머리 받침 뒤로 깍지를 껴 기댔다.
“아마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거다.”
지공은 알 것 같다고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자부심 보람, 뭐 그런 낯간지러운 건 없어. 짐꾼이 무슨. 있는 거라고는 파스 자국뿐이지.”
수납 박스 위에 늘어진 고양이가 앞발로 수염을 빗었다. 지공은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일다운 일이거든. 흘린 만큼, 딱 그만큼만 버는 일.”
“그럼요?”
지공이 물었다.
“글쎄요.”
남자가 흉내 내듯 말하고 기지개를 켰다. 고양이도 따라 몸을 늘렸다.
“이것저것 물어본다며. 것도 한번 물어보든지.”
트럭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남자는 남자답게 웃었다. 그러곤 빛 가리개에서 종이를 꺼내 아무렇게나 찢어 뭔갈 적었다.
“아까 그걸로 퉁이지. 더 갚고 싶으면 말해.”
건네 온 종이에는 숫자와 작대기 몇 개가 적혀 있었다. 지공은 그저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그러자 남자가 교복 자락을 살짝 젖혀 안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투박함에 지공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름은 제석산이었다. 안내판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지공은 글을 찾아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안내판 옆으로 난 산 입구는 그저 까맸다. 어둠이 어둠을 집어삼킨 듯했다. 어둠의 어둠을 삼킨 산은 무심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것처럼 침묵했다. 그럼 지공은 알 수 없을 거였다. 어느 나무를 끼고 돌아야 하는지, 어느 바위를 디뎌야 하는지, 어느 별을 이정표로 삼아야 하는지, 아니 나무와 바위와 별이 보이기는 할지. 짐의 끈을 꾹 움켜잡았다.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이미 지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려 꼬리를 느릿하게 한 번 꼬고는 제가 가야 할 길처럼 앞서 걸어갔다. 여러모로 발칙한 고양이구나. 지공은 파란 발자국을 따라 산을 올랐다.
땅은 조금 얼어 있었다. 미끄러질 것 같아 언 땅이 뿜는 찬 기운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을의 흔적만을 발아래 남긴 채 헐벗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어두운 산속에선 모든 것들의 형체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오로지 바람이 주는 소리와 냄새가 길을 암시했고, 암시된 길을 밤눈 밝은 고양이가 지공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어둠 외에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밤 산이었다. 그 속에서 고양이는 희미한 달빛을 모아 힘겹게 푸른빛을 짜내고 있었다. 뒤따르기만 했던 푸른 고양이의 뒤를 따라가려니 지공은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됐다.
—지공아.
돌아보니 아버지가 나무 기둥을 짚고 서 있다. 나는 바윗길을 내려가 물을 건넨다. 내리쬐는 볕에 아버지의 이마가 별처럼 반짝인다.
—힘들어?
—그럼, 인마. 천근만근이다.
아버지 얼굴에 엄살이 잔뜩 담긴다.
—내려갈까나 아부지?
얼마간 조용하다. 아버지는 숨을 여러 번 고른다.
—아니지. 끝까지 가야지.
—끝까지?
—그럼. 그리고…되돌아가기는 싫다.
나는 말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 가요.
아버지 뒤에 선다. 뒷모습이 쪼그라들어 나보다 작다. 양손으로 아버지의 엉덩이를 받쳐 민다. 아버진 되었다면서도 다 컸네, 장가가도 되겠네 한다.
—지공아.
메말라 버린 뒷모습이 나를 부른다.
—응.
—공아.
—으응.
—꽁아.
—이름 닳겠다.
아버진 잠깐 또 말이 없다. 숨이 조금 차기도 해 나도 말이 없다.
—힘이 드냐?
아버지가 묻는다.
—조금.
—그럼, 되돌아갈까나?
—아부지 힘들어?
—네가 힘들까 봐서.
나는 밀던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되돌아가는 건 싫어.
나의 말에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를 밀어 올리는 손이 묻는다. 아버지가 되돌아가기 싫다는 그곳은 어딜까?
어디로 가버린 걸까. 고양이가 어느 순간 기억에 묻혀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파란 몸이 이끌던 길도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순간들이 무색하게,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만 우주 한가운데에서 목적 잃고 표류하는 한 톨의 먼지가 돼 버렸다. 지공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물음을 던졌다.
“지금 내가 찾는 게 뭐지?”
지공은 일부러 소리 내 말했다. 누군가가, 하다못해 지공을 괴롭히던 시린 바람이라도 대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어디에서도 불어오지 않았다. 대신, 떠올랐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처럼 제 속에서 떠올랐다. 고양이야. 고양이를 찾아. 고양이가 나를 찾은 것처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는 몰랐다. 지금 내딛는 모든 걸음들은 해답이 아니라 그저 대답이었다. 지공은 축축한 길과 언 길이 나오면 축축한 길이라고 대답했고, 낙엽이 수북한 길과 벗겨진 길이 나오면 벗겨진 길이라고 대답했다. 묻고 대답했고 오르고 또 올랐다. 초조했지만 그저 초조한 대로 내버려두었다. 멍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초조하게 오르는 것이 지공의 대답이었다.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했다. 지금 이 갈림길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달랐다. 오른쪽 길에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나왔다. 그 미약한 빛에 나무의 굴곡이 드러나고 디뎌야 할 바위가 반작였다. 그 길은 다른 길들과는 달리 그림자 흉내를 내지 않았다. 너도 이곳으로 이끌렸을까. 지공은 또 대답했다.
걸을수록 달이 가까워졌다. 달이 가까워질수록 헐벗은 나무들이 사라지며 시야가 트였다. 산의 중턱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공지가 달빛에 흠뻑 젖었다. 꼭 땅에 박힌 달처럼 파랬다. 공지를 빙 둘러싼 옷 잃은 나무들이 시린 빛에 몸을 떨었고, 떨어진 옷들은 바스락거리며 땅이 될 준비를 했다.
나무가 떠는 소리,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 그런 의도 없는 소리들 가운데에서 지공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을 가슴 밑으로 꾹꾹 눌렀다. 그러자 의지를 가득 담은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들 속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왔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걸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확실해졌을 때 지공은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바위도, 그리고 그것들이 디디고 선 땅도 없었다. 텅 빈 풍경만이 짙은 어둠 속에 식어 있었다.
“어디 갔어?”
그러자 아래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고갤 숙였지만 파랗게 물든 제 단화 한 켤레만 보였다. 지공은 땅의 끄트머리에 배를 대고 엎드려 고갤 내밀었다. 절벽에 깎인 좁은 바위 위에서 고양이가 아슬아슬하게 앉아 지공을 올려다봤다. 지공은 땅에 깐 배가 이상하게 꿀렁거렸다. 얼른 손을 뻗었다. 간신히 닿아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들다가 놓치면 어떡하지. 지공은 눈을 질끈 감았다. 꾹 눌러뒀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올라왔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떠한 대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고양이가 다시 한 번 울었다. 지공은 눈을 떠 고양이의 파란 눈에 맞췄다. 언젠가 보았던 자그마한 입김이 지공의 얼굴에 닿아 부서졌다.
지공은 몸을 잠깐 일으켜 짐을 벗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절벽 쪽으로 몸을 더 빼 엎드렸다. 팔을 뻗었다. 한 손을 파란 등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부드러운 배를 감쌌다. 짐짝처럼 가만 기다리던 고양이가 앞발로 지공의 손목을 꽉 붙들었다. 지공은 힘껏 들어 올렸다. 그 어떤 짐을 들 때보다도 무거웠다. 지공은 몸을 돌려 하늘을 보고 누웠다. 가슴과 턱으로 고양이의 떨림이 느껴졌다. 파란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양이의 떨림이 지공에게 잠깐 옮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지공은 환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아부지.
조용하다.
—나 왔어.
나는 가방을 푼다. 다시 조용하다. 방문을 연다. 나는 아부지 하고 또 부른다. 모로 누워있는 등은 그래도 조용하다. 나는 곁으로 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아부지?
아버지를 천천히 돌려 눕힌다. 가만 바라본다. 꿇어앉아 코와 가슴에 귀를 대본다.
그 순간 물을 것이 참 많지만, 아버지는 계속 조용하다. 모든 걸 알려주던 아버지가 물음이 가장 많은 이 순간만큼은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곧 동이 트려는 듯했다. 지공은 가슴팍에 늘어져 꼬물거리는 고양이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고양이는 아쉬운 듯 느릿하게 내려와 바닥에 섰다.
지공은 절벽 가까이 가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고양이도 살금살금 걸어와 무릎 옆에 달라붙었다. 느릿느릿,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걷히는 어둠을 바라봤다. 지공은 아버지를 꺼냈다. 아버지의 매듭을 가만 보았다. 묶는 건 배웠지만 푸는 건 배우지 못했구나. 지공은 역순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막혔다. 참 수수께끼 같았다. 매듭을 다시 요리조리 뜯어 살폈다. 매듭의 결을 따라가며 순서를 찾아내 천천히 풀어 나갔다. 저 멀리 텅 빈 곳에서 해가 정수리를 내밀었다. 그 순간 매듭은 해답을 찾아낸 듯 스르르 풀렸다. 비닐을 열었다. 마치 숨을 트는 것처럼 자잘한 가루가 조금 퍼져 흩어졌다.
지공은 한 줌 쥐었다. 가벼웠다. 그렇게 무거웠던 아버지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지공은 쥐었던 손을 천천히 펼쳤다. 아버지의 거친 손 하나가 거짓말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비닐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바람에 올라탔다. 짐을 받쳐 업던 등, 그래서 고단했던 목덜미, 어느 순간 홀쭉해진 엉덩이와 메말라 버린 다리, 그리고 따습게 맞춰오던 두 눈까지. 지공은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담으려고 보고 또 봤다.
지평선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기억들이 던졌던 물음들이 그 아래로 가라앉았다. 스스로 대답을 찾아보라는 것처럼. 안주머니에서 아버지의 구겨진 담뱃갑을 꺼냈다. 그 속에 마지막 한 개비가 꼿꼿이 서 있었다. 집어 들었다. 손을 높이 들어 저 멀리 빨간 반원에 담배의 머리를 맞추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입에 물었다. 아버지처럼 길게 빨아 숨을 내쉬어 보기도 하고 남자처럼 쫓기듯 짧게 빨아 뱉어보기도 했다. 그저 청량한 바람만이 지공의 속을 간지럽혔다. 빨갛게 물이 든 담배를 지평선 쪽으로 향하도록 땅에 내려놓았다.
오롯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늘 푸르스름하던 고양이도 볕에 물들어 발갛게 타올랐다. 지공은 그 발그레한 뒤통수를 손등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되레 지공의 손을 쓰다듬는 듯 정수리를 부볐다. 가방을 열어 손짓하자 고양이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일어나 짐을 둘러멨다. 조금 열린 짐 사이로 고양이가 머릴 빼꼼 내밀었다. 지공은 문득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려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더 엄청난 놈이 찾아온다는, 그런 짐.
지공은 말했다.
“그래. 가자.”
지금까지 「그런 짐」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