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지공은 아버지의 담뱃갑을 열어봤다. 잔뜩 구겨진 갑 안에서 두 개비가 헐렁거렸다. 왠지 잔뜩 쭈그린 자신과 아버지 같았다. 일부러 웃었다. 너도 떠나보내 주마. 비스듬히 쓰러진 걸 입에 물었다. 불을 붙였다. 몇 번의 시도에 입으로 빨면서 붙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불이 붙자 모진 것이 예고 없이 쳐들어왔다. 썼다. 아니, 아팠다. 간신히 후 하고 연기를 내뱉었지만, 그것은 지공의 몸속에 들러붙기만 했다.
낙엽처럼 쌓인 고지서들을 발로 치우고 문을 열었다. 흔적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들어가고 싶기도 했고, 들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저 속에 누웠다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까, 아니면 온몸으로 느끼게 될까. 지공은 알 수 없었다.
끊겼을 수도꼭지에서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꼭 이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지공은 목구멍을 세게 조여 참았다. 기력이 다할 만큼 조이고 또 조였다. 그러다 원치 않게 호흡이 트였고, 손에 든 짐을 놓쳐버렸다. 창백한 짐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지공은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사방으로 흩어진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위로 몸을 뉘었다.
가느다란 석양 줄기가 얼굴 위로 간지럽게 기어다녔다. 밑에 깔려 있는 아버지가 더 흩어져 버릴까 가만 누워 있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열려 있는 현관문은 무심했다. 모든 걸 지켜주던 이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한참을 바라보던 부재 속에서 자그마한 것이 삐쭉 보였다. 구경하듯 앉아 꼬리를 살랑거리는 고양이를, 지공도 반히 쳐다봤다. 한참을 보다, 그 파란 눈에 비쳤을 제 모습에 질끈 눈을 감았다.
“가!”
고양이는 한두 발짝 뒷걸음질 쳤다. 지공은 고갤 돌려 버렸다. 양손에 아버지를 한 움큼씩 쥐어 봤다. 여전히 무거웠다. 눈물이 꾹 감은 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느닷없이 터진 것은 양손의 무게만큼 거세졌다. 숨이 따라오질 못했다. 끅끅거렸다. 참아서 미안했다고, 참지 못해 미안하다고. 지공은 잠에 들 때까지 그제야 울었다.
—꽁아.
—나 바퀴 떼기 싫은데….
—인마, 이걸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거냐?
아버지가 바닥에 있던 스패너를 쥔다. 노을에 스패너가 발갛게 탄다. 잔뜩 풀 죽은 어린 나를 다시 부른다.
—꽁아.
짓궂은 얼굴이다.
—으응, 아부지.
—너 이게 뭔 줄 아냐, 응?
—망치잖어 아부지.
—망치가 아니고 짜샤. 몽키스패너.
아버지가 흐흐 하고 웃는다.
—몽키? 몽키는 원숭이인데…. 바나나는 빠나나구.
—그래 인마, 원숭이!
어린 나도 깔깔거릴 준비를 한다.
—봐봐라! 똑 닮았지, 응?
아버지가 욱끼끼 하며 어린 몸 여기저기를 이 잡듯이 쪼아댄다. 어린 나는 까르르 하며 몸을 꼰다.
—꽁아. 백 밤 더 자믄 몇 살이라고?
어린 두 어깨에 얹힌 두 손이 거칠고, 어린 두 눈에 담겨오는 두 눈이 따습다. 어린 내가 대답한다.
—열한 살이지.
—자, 손가락 쫙 펴 봐.
아버진 어깨에서 거둔 두 손을 눈앞에 활짝 펼쳐 보인다. 어린 나도 따라 펼친다.
—몇 개냐?
—열 개지.
—그러니까 인마. 곧 있음 네 나이는 손가락으로는 못 센다 이 말이야.
—응.
—인제부터 나이는 여기로 먹는 거야.
옷 속으로 손이 쑤욱 들어온다. 어린 심장의 열기에 거친 뜨거움이 흠뻑 스며든다.
—이젠 떡국만으로는 안 돼.
—그럼?
—단단해져야 해. 그게 여기로 한 살을 먹는 방법이지.
어린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건 말이다…꽁이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뭣이더냐?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치며 무언갈 두어 개 말한다.
—그것들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 그걸 단단해진다고 하는 거야.
아버지의 손이 어린 심장을 쓰다듬는다. 그 위로 어린 것을 포개어 본다.
—백 밤을 자고, 또 천 밤을 자고. 그렇게 단단해지다 보믄, 어디든 갈 수 있지. 이 아부지처럼.
—어디든?
—어디든.
어느새 두 발이 되어 있는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저 멀리 어딘가에,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누워있는 내가 보인다. 어린 나는 묻는다. 너는 왜, 천 밤을 더 잤는데도 단단해지질 않았어?
지공은 눈을 떴다. 눈가가 버석거렸다. 손등으로 비비니 아버지의 흔적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벽에는 달빛이 묻어 있었다. 석양 줄기도, 고양이도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꿈인 걸까. 하지만 등 뒤로 아버지가 바스락거렸다.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머리카락과 옷도 쓸어내렸다. 도자기 파편을 모아 톡톡 털어냈다. 싱크대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한 주먹씩 옮겨 부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고양이가 멀찍이 앉아 있었다. 겨우 달빛 한 조각에 파랗게 젖어서는 방 안 요리조리 고갯짓했다.
“안 갔어?”
대답은 없었다. 싱거워진 지공은 옆 가방 하나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닐봉지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아버지의 매듭이었다. 가방의 제일 두툼하고 억센 주머니에 넣었다. 책상 서랍에 모아뒀던 용돈을 꺼내 교복 바지 주머니에 챙겼다가, 다시 꺼내 재킷 안주머니로, 잠시 생각하다 아버지를 넣은 곳에 넣었다.
지공은 망설였다. 활짝 열린 현관문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방문을 돌아봤다.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부러 고쳐 맸다. 짐이랄 것도 없는 그 짐이 지공의 어깨를 짓눌렀다. 애써 말을 뱉었다.
“가자.”
밤바람이 스쳤다. 뺨을 타고 스미는 낯섦에 지공은 몸을 떨었다. 날마다 마주치고, 날마다 보고, 날마다 걸었던 것들이 토라진 것처럼 쌀쌀맞게 굴었다. 아버지의 담배를 책임지던 구멍가게는 꺼져 있었다. 과일은 맛있지만 채소는 잘 무르던 청과물 가게는 꺼져 있었다. 오천구백 원에 한 마리를 내어주던 닭튀김 집은 꺼져 있었다. 티 낸 적 없지만 내심 갖고 싶어 했던 휴대전화들이 진열된 대리점은 꺼져 있었다. 골목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동사무소도, 은행나무 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학교도, 후문을 돌면 있는 분식집도, 떡꼬치를 뜯어 먹으며 걷던 자그마한 산책로도 꺼져 있었다. 지공은 자신이 낯선 것인지 꺼진 것들이 낯선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자판기는 꺼진 것처럼 켜져 있었다. 길을 오가며 몇 번 보았던 것이지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동전을 꺼냈다. 지공은 용돈을 받아 군것질하는 기분이 들어 웃었다. 번들번들 낡아 버린 투입구에 동전을 넣었다. 먹고 모른 척할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아버지의 풀잎 맛 음료를 눌렀다. 다행히도 자판기가 알은체했다. 그러곤 정말 꺼져 버렸다.
캔 뚜껑을 따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졌다. 적막을 뚫어 어떤 존재든 불러내 줄 것만 같았다. 벤치 뒤 풀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공은 손이 시려 캔을 옆에 내려놓았다. 옅은 풀 내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겉이 살짝 언 캔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저 멀리, 왠지 익숙한 두 눈이 일렁거렸다.
고양이는 아직도 파랬다. 꼭 아버지가 짐을 부릴 때 쓰던 하얀 밧줄이 밤에 내뿜는 푸른빛을 닮았다. 파란 고양이에게선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다른 어딘가를 걷는 것처럼 걸었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나. 고요한 걸음이 벤치 앞에서 멈췄다. 애써 지공을 보지 않으려는 듯 굴었다. 따라온 게 분명한데 제 갈 길 가는 중이라는 것처럼. 의뭉스런 파란 고양이가 벤치 끄트머리에 폴짝 뛰어올랐다. 집에서 그랬던 것과 비슷한 거리였다. 앞발을 핥는 데 여념 없지만 온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을 거라고, 지공은 짐작했다. 하지만 지공도 짐짓 모른 척했다.
“어디 가니?”
고양이가 앞발을 내려 곧게 앉았다. 그러고는 짧게 울었다. 주둥이에서 자그마한 입김이 부서져 나왔다. 지공은 고양이 옆에 있던 풀잎 맛 음료를 도로 가져와 한 모금 마셨다. 어두운 맛이 났다. 몸은 더욱 시렸고, 고양이는 털을 부풀렸다.
화물차 주차장은 언제 보아도 막무가내였다. 바닥에 선을 대충 그어놓고 내 집이라 우기는 것처럼 볼품없었다. 그 볼품없는 곳 한쪽에 익숙한 발과 등이 있었다. 커다란 발에는 얇은 서리가 꼈고, 기다란 등에는 방수포를 뒤집어썼다. 빈 캔을 가방에 넣고 다가갔다. 먼지가 짙게 내려앉아 안이 보이질 않았다. 발과 등의 주인이 운전석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지공은 늘 그랬던 것처럼 조수석에 올라앉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서 가만 쳐다만 보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는 내내 굳게 마음먹어서일까, 그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지공은 뿌연 유리창 위로 그렸다.
「?」
먼지를 걷어낸 물음은 너무도 자그마해, 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벅벅 걷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안에서 숨죽이고 있을 익숙함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닐 거라고, 지공은 생각했다. 걷어낸 물음표에 축축한 성에가 들어차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어디든 가야 했지만 길은 몰랐다. 한겨울 자정의 길은 모든 것이 꺼져 있었고, 커다랗고 자그마한 입김만이 지공의 뒤를 둥둥 따라다녔다.
“이제 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고민하고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지공을 보지도 않고 앞질러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돌아볼 법도 한데 파란 뒷모습은 매몰찼다. 지공은 정말 저 혼자 오해한 건가 싶었다. 머쓱해져 대합실로 들어갔다.
매표소 상자 안에는 직원이 홀로 졸고 있었다. 지공은 괜히 푸른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갔다. 매대에 놓인 버스 시간표 하날 집어 들었다. 수많은 칸에 글자와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너무나도 빼곡해 어디에서 어디로 언제 간다는 것인지 지공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을 찡그린 채 한참을 보다 고개를 드니 직원의 눈꺼풀이 세 겹으로 올라가 있었다. 지공은 제일 빠른 버스를 물었고, 직원은 목적지를 되물었다.
“어디든요.”
몇 개의 골이 직원의 미간에 패었다. 다섯 시 대전행 버스라는 말에 지공은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대합실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소리가 꺼진 텔레비전만이 그 빈자리들을 매웠다.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던 지공에게 텁텁한 골판지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옆에 한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고양이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지공은 남잘 올려다봤다. 몸은 자신과 아버지를 합한 것만큼 컸고, 머리와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불쾌한 행색은 아니었지만 유쾌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눈을 텔레비전에 고정한 채 핫바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지공도 시선을 거둬 남자처럼 눈을 고정했다. 수 분 후 남자가 물었다.
“차 기다려?”
지공은 뒤늦게 끄덕였다.
“어디든?”
남자를 다시 반히 쳐다봤다. 목덜미가 유독 짙었다.
“그래, 뭐.”
남자는 뼈만 남은 핫바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지공은 남자의 얼굴에서 의기양양해하는 기색을 얼핏 보았다.
“벌교로 갈 건데. 괜찮으면 태워다 주고?”
남자는 딱히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공은 벌교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인지 몰라 고민했다. 의미 없었다. 그야말로 어디든이었다. 밖으로 멀어지는 남자의 뒤를 멍하니 보다가, 짐을 챙겨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골판지 냄새는 맞바람에 더욱 의도적으로 다가왔다. 지공은 냄새가 풍겨오는 쪽을 유심히 관찰했다. 약간 거북목인 남자는 어깨가 안으로 조금 말렸지만 허리는 곧고 두꺼웠다. 걷고 있음에도 움직임이 없는 손은 부스스한 머리카락만큼이나 꺼슬꺼슬해 보였고, 바지가 겨우 감싸고 있는 다리는 꼭 받쳐 드는 것처럼 땅을 디뎠다. 짐작은 걸음을 뗄수록 점점 사실이 되었다. 지공은 생각했다. 남자는 짐꾼이라고.
남자는 한 트럭에 멈춰 서더니 뒤편으로 가 짐칸의 문이 말썽이라며 혼자 투덜거렸다. 지공은 조금 멀찍이 서서 트럭을 바라봤다. 닮았고 달랐다. 남자의 차에도 먼지는 묻어 있었다. 하지만 침묵 같은 먼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살아 움직이기에 쌓인 먼지였다. 바퀴에는 손만 대도 사그라들 서리 대신 곧 싹이라도 틔울 듯한 흙덩이가 군데군데 끼었다. 그리고 입김만 불어도 바스락거리는 방수포와는 비할 수 없이 단단한 적재 박스가 엄격하게 짜여 있었다.
딸각 소리가 지공을 깨웠고 남자가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지공을 다시 재웠다. 커다란 창 속으로 보이는 두 자리를 지공은 바라봤다. 어떠할까. 조수석에 오르면 어떠한 감정이 자신에게 올라탈까. 거짓된 재회에 웃게 될까 아니면 선명한 상실감에 울게 될까. 지공은 짐의 끈을 꽉 움켜잡았다. 트럭은 어떠한 말도 걸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지공은 자신이 망설이는 이유를 몰랐다. 저 자리가 낯설지 아니면 익숙할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을 안다 해도 지금 자신이 주저하는 것이 낯섦인지 익숙함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참 만에야 지공은 차에 다가갔다. 어디든 가야 하니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지공은 망설임을 매듭 졌다. 문을 여니 남자의 옆모습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어닥치는 밤바람이 갈수록 찼다. 지공은 조수석에 올라 문을 닫았다. 히터에서는 온풍이 쏟아졌다. 조금 미지근했다. 지공은 그게 참으로도 익숙했다. 그래서 몸은 잠시나마 떨림을 멈췄다.
차가 고속도로로 들자 남자가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서너 시간 걸릴 거야. 중간에 내려도 되고.”
“아니에요. 중간이 어딘지 몰라서요.”
남자가 그러든지 하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곤 한 손으로 글러브박스를 열었다. 이리저리 헤집더니 뭔가를 끄집어내 지공에게 넘겼다.
“배고프면 먹으라고?”
초코바였다. 지공은 꾸벅하고 받았다.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입도 자유로워지지 않는다고, 지공은 초코바의 이름에 대고 꾸짖었다.
“가출이냐?”
두 입째에 남자가 물었다.
“네…. 그런 셈이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셈은 또 뭐야?”
지공은 남은 초코바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그래 뭐.”
지공은 남자의 말버릇을 곱씹어봤다. 그래 뭐. 그 말에서 꼭 아버지가 말했던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래 뭐 하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 무엇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 지공은 남자를 다시 뜯어보았다. 새삼 단단해 보였다. 살갗에 겹겹이 껍질을 두른 것처럼, 어떠한 짐도 단숨에 들어 올릴 것처럼.
“근데. 그렇게 사람 홀라당 믿지는 마라.”
“아저씨 목덜미요.”
지공은 희미한 목젖을 꿀떡해 초코바를 마저 삼키고는 말했다. 남자가 잠깐 고갤 돌렸다.
“목덜미?”
“목덜미가 까만 사람은요, 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지공은 초코바 껍질을 안주머니에 넣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창에 반사되어 비친 남자는 알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두툼한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엔진의 진동과 미지근한 온풍에 지공은 온몸이 나른해졌다.
—공아.
—도울래. 응?
—안 된다고 했어.
아버진 깊게 한숨을 쉰다.
—잘할 수 있어. 곧 있음 키도 아부지만 하고.
—혼나 볼래?
아버지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어린 나를 겁줄 때처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겁을 집어 먹진 않는다. 나는 맞선다. 아버진 말없이 짐을 옮기기 시작한다. 무언의 허락.
짐을 들어본다. 다시 한번. 꿈쩍 않는다. 아버지는 코웃음 치며 옆에 놓인 똑같은 짐을 단숨에 들어 올린다. 그리고 짐칸에서 내려가 버린다. 나는 뒷모습을 멀뚱히 본다. 몸을 돌려 다시 시도해 본다. 하지만 짐은 어림없다고 한다. 한참을 대치한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손가락은 하얘진다. 아버지가 다시 옆에 와 선다. 내가 아닌 짐을 내려다보며.
—안 되냐?
나는 말이 없다.
—응? 공아.
—응. 꿈쩍을 안 하네.
아버지가 쭈그려 앉는다.
—짐이란 건 말야, 공아.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며 나의 종아리와 허벅지, 허리, 어깨를 차례로 쓰다듬는다.
—손으로 안 되믄 요 장딴지, 그래도 안 되믄 허벅지, 그래도 안 되믄 허리랑 어깨.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꼬물거린다.
—그냥…그르케 온몸 갈아서 용을 써야 움직이는 것들이 있지.
—이것처럼?
—그래. 이놈처럼.
아버진 이놈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그른데, 몸이 적응을 해요 또. 첨에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가도 들다 보믄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려.
—단단해지는 것처럼?
나는 씨익 하고 웃지만, 아버진 웃지 않는다.
—그러다가 귀신같이 알고는, 더 엄청난 놈이 찾아와. 어디 나도 한번 들어 봐라 하믄서. 웃기지?
아버지는 웃지도 않으면서 웃기냐고 묻는다.
—그게, 짐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이놈을 다시 들어 보라 한다. 나는 훈수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겨우 들어 올린다. 아버지처럼 가뿐히는 아니더라도, 어찌어찌 걸을 수는 있다. 아버지가 옆에 놓인 짐을 들고 앞서 걸어 나간다. 같은 짐을 들고, 같은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내려놓은 곳 바로 옆에, 나의 것도 내려놓는다. 상자들을 벽 삼아 기대어 주저앉는다. 아버지가 물을 건넨다.
—공아.
아버지가 트럭의 텅 빈 짐칸을 바라보고 있다.
—힘이 들어도.
아버지가 내 이마의 땀을 훑어 낸다.
—지금처럼 그냥 옮기다 보믄 말이다.
나도 아버지의 까맣게 탄 목덜미를 훑는다.
—언젠가 끝이 오는 거야.
—응.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의 눈이 닿은 곳을 바라본다. 그게 정말일까?
고요했다. 발바닥을 울리는 아스팔트의 굴곡도, 눈꺼풀 위를 이따금 덮치던 미광도 없었다. 지공은 기억을 깨워버린 적막이 조금은 미웠다. 하지만 답은 주지 않고 물음만 던지는 기억들도 야속했다. 괜히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주위는 어두웠지만 활기찬 소란이 잠시 쉬고 있는 듯한 어둠이었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비닐봉지를 들이밀며 흔들었다. 지공이 받아 들자 남자가 운전석으로 성큼 올라앉았다. 차가 뒤흔들렸다.
“휴게소. 이제 한 시간이면 가겠는데?”
라디오 다이얼에 달린 시계를 보고 지공은 귀까지 다 화끈거렸다. 밤 운전대를 잡은 사람 옆에서 두 시간을 내리 자다니. 첫 휴게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공은 더욱 창피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거나 마시라고? 이것도 좀 먹든지.”
건네받은 비닐봉지 속에는 음료수 캔이 한가득이었다. 다섯 사람이 마신다고 해도 과했다. 같은 게 단 하나도 없었지만 풀잎 맛 음료는 없었다. 남자는 딱 하나 있는 캔 커피를 뽑아 들고 이것이라고 부른 걸 수납 박스 위에 놓았다. 조금 뜯어진 구멍 사이로 열기가 새어 나왔다. 남자는 뜨거운지 아뜨뜨 하며 귀를 잡았다. 포장을 벗겨낸 플라스틱 접시에서 뽀얀 만두 예닐곱 알이 연신 김을 뿜었다. 남자가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는 후후 했다. 지공도 하나 집어 들었다. 뜨거웠다.
“돌아가고 싶냐?”
만두를 호호 불다가 남자를 돌아봤다.
“계속 찾던데? 아부지 아부지 하면서.”
남자는 운전대를 돌리며 두 번째 만두를 입에 넣었다.
“왜 나온 거냐?”
만두를 씹으며 몇 시냐? 하는 것처럼 물었다. 지공은 손 위에서 알맞게 식은 만두를 내려다봤다.
“아무도 없어서요.”
“아무도?”
지공은 남자 대신 캔 커피의 뚜껑을 땄다. 남자가 피식 웃고는 한 모금 마셨다.
“네.”
만두를 입에 넣었다. 미지근했다.
“안 보여요. 언제부턴가 말예요.”
“뭐?”
지공은 고갤 돌려 창밖을 보았다. 모든 게 식은 것처럼 깜깜했다.
“아버지요. 그래서 찾으려고요.”
제 자리에 있을 게 분명한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서?”
“어디든요.”
지공은 그냥 두라는 남자의 말에도 주전부리 흔적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흔적들이 다 지워져도 조수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창피함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귀가 다시 뜨듯해지는 사이 트럭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갔다. 남자의 까만 거북목이 뒤로 젖히며 풀어졌다. 겨우 한 치 앞만 보이는 까만 길 위에서 짐을 지고 달려야 하는 고단함. 익숙한 그것이 남자의 목덜미에도 스며 있었다. 그리고 지공은 그게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참 묘했다.
정돈되지 않은 샛길에 몸이 사방팔방으로 튕겼다. 중학생일 때만 해도 모든 차가 이렇게 흔들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친구 아버지의 승용차를 얻어 탔을 때, 지공은 알게 됐다. 어떤 차는 자갈길 위에서도 태연하다는 걸. 그 후로 트럭은 유독 더 흔들렸다.
“그놈의 어디든에 내려주고 싶다만,”
몸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남자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이 동넨 창고밖에 없어. 물건만 부리고 더 나가서 내려 줄게.”
남자의 말에 밖을 살폈다. 의미도 없어 보이는 낡은 철제 대문 안쪽에는 창백한 램프 하나가 높게 서 있었고, 그 외로운 빛 아래로 나무 팔레트와 종이 상자 몇 개가 쌓여 있었다.
“차 안에서 기다려도 되고, 마려우면 밖에서 일 보고.”
남자가 빛 가리개를 젖혀 종이 뭉치와 펜을 꺼냈다.
“저도 도울게요.”
지공도 벨트를 풀었다.
“여긴 병원도 없다. 됐어.”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내렸다. 지공은 따라 내렸다.
“깡통에는 싸지 마라? 내 재떨이니까.”
남자가 얄궂게 웃었다.
“도울게요.”
지공은 다시 말했다.
“그거참.”
고집스레 남잘 쳐다봤다.
“그래 뭐.”
지공은 남자를 따라 짐칸으로 갔다.
골반을 약간 넘는 정도의 상자였다. 짐들은 두세 개씩 바닥에 넓게 쌓여 있었고 돌돌 말린 두툼한 매트가 짐들이 메우지 못한 빈 틈을 대신 메웠다. 잘 짜인 짐들이 꼭 바둑판처럼 고상해 보였다.
“밖에 빠레뜨로. 근데 들 수 있겠냐?”
지공은 짐 앞에 섰다. 들어 올릴 각도가 영 떠오르질 않았고, 들더라도 눈앞을 가릴 크기였다. 몸 앞으로 들어 올리라고 만든 짐은 아니구나. 지공은 생각했다. 위아래로 쌓인 짐 두 개를 밀어 짐칸 끄트머리로 옮겼다. 짐칸에서 내려와 등에 천천히 업어 들었다. 몇 발짝 휘청거리긴 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성큼성큼 남자가 말한 나무 팔레트 위로 짐을 내려놓았다.
“얼레?”
남자의 눈길에도 지공은 그저 다음 짐을 밀었다.
점점 바닥이 보였다. 하얀 교복 블라우스의 겨드랑이가 조금 축축했다. 시렸던 바람이 조금은 친근하게 불어와 땀을 말렸다. 안쪽으로 가 몇 남지 않은 상자를 끌어당기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상자가 끌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지공은 잠시 멈췄다. 빛을 모으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구석에서 자그마한 점 두 개가 반짝거렸다. 짐칸으로 들어선 남자가 그런 지공을 빤히 봤다. 지공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남자가 뭔데? 하며 점퍼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비췄다. 그러자 또 소리가 났다. 종이상자가 부드럽게 사각거렸고 철제 바닥은 일정하게 바삭거렸다. 느닷없는 파란 고양이에게서는 걷는 소리가 났다.
“뭐냐?”
남자가 물었다. 지공은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고양이에게 묻는 것인지를 몰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몰차게 가버리더니 역시 따라온 거라고, 지공은 명치 부근이 조금 말랑거렸다.
“처음 아니지? 폼이 보이던데.”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뻐끔댔다.
“네. 아버지도 짐꾼이셨거든요.”
지공의 눈이 닿은 곳에서는 고양이가 벌레 그림자를 잡으려 요리조리 뜀박질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아직도 파랬다. 남자가 새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지공이 트럭의 텅 빈 짐칸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돕는 걸 참 싫어하셨어요. 아버지보다 키가 더 자랐을 때도요.”
눈앞으로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지나갔다. 듣고 있다는 뜻 같았다.
“몰랐어요. 왜 그러시는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그림자에 흥미를 잃은 고양이가 엎드려 앞발을 핥아댔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지공에게 눈을 맞췄다.
“지금은 알 것도 같아요.”
“그래?”
“힘이 드셨던 거 아닐까요. 사는 게 짐인데, 짐을 나르면서 산다는 게. 그리고 저도 그리될 거 같다는 게 말예요.”
“묻는 거냐?”
“글쎄요.”
담뱃불을 튕기는 남자에게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질 찾으면 뭘 할 건데?”
“물어보려고요.”
“무얼?”
“글쎄요. 이것저것요.”
두루뭉술한 대답 때문인지 남자가 또 피식거리며 담뱃갑을 열었다. 남자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담뱃갑을 구겨서 버렸다. 지공은 교복 안주머니에서 아버지의 담뱃갑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한쪽 눈썹을 올린 채 지공을 반히 봤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트럭으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달라는 것인지, 나중에 피우라는 것인지 지공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담뱃갑을 도로 집어넣고 지공도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 힐끗 보니 고양이도 주뼛거리며 뒤따라왔다.
“순 집밖에 없는데?”
남자가 시동을 껐다. 밖은 아득할 만큼 한적했다. 서로 닮은 지붕들이 개울물 아래 깔린 바위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삐쭉 솟은 파이프로 연기를 피워댔다. 연기가 흩어진 하늘은 짙었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산이 그림자처럼 늘어져 있었다.
“산도 있네요.”
“그래 뭐.”
짐을 고쳐 맸다. 인사를 고르는데 남자가 먼저 말을 던졌다.
“근데,”
남자는 머리 받침 뒤로 깍지를 껴 기댔다.
“아마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거다.”
지공은 알 것 같다고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자부심 보람, 뭐 그런 낯간지러운 건 없어. 짐꾼이 무슨. 있는 거라고는 파스 자국뿐이지.”
수납 박스 위에 늘어진 고양이가 앞발로 수염을 빗었다. 지공은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일다운 일이거든. 흘린 만큼, 딱 그만큼만 버는 일.”
“그럼요?”
지공이 물었다.
“글쎄요.”
남자가 흉내 내듯 말하고 기지개를 켰다. 고양이도 따라 몸을 늘렸다.
“이것저것 물어본다며. 것도 한번 물어보든지.”
트럭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남자는 남자답게 웃었다. 그러곤 빛 가리개에서 종이를 꺼내 아무렇게나 찢어 뭔갈 적었다.
“아까 그걸로 퉁이지. 더 갚고 싶으면 말해.”
건네 온 종이에는 숫자와 작대기 몇 개가 적혀 있었다. 지공은 그저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그러자 남자가 교복 자락을 살짝 젖혀 안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투박함에 지공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름은 제석산이었다. 안내판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지공은 글을 찾아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안내판 옆으로 난 산 입구는 그저 까맸다. 어둠이 어둠을 집어삼킨 듯했다. 어둠의 어둠을 삼킨 산은 무심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것처럼 침묵했다. 그럼 지공은 알 수 없을 거였다. 어느 나무를 끼고 돌아야 하는지, 어느 바위를 디뎌야 하는지, 어느 별을 이정표로 삼아야 하는지, 아니 나무와 바위와 별이 보이기는 할지. 짐의 끈을 꾹 움켜잡았다.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이미 지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려 꼬리를 느릿하게 한 번 꼬고는 제가 가야 할 길처럼 앞서 걸어갔다. 여러모로 발칙한 고양이구나. 지공은 파란 발자국을 따라 산을 올랐다.
땅은 조금 얼어 있었다. 미끄러질 것 같아 언 땅이 뿜는 찬 기운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을의 흔적만을 발아래 남긴 채 헐벗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어두운 산속에선 모든 것들의 형체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오로지 바람이 주는 소리와 냄새가 길을 암시했고, 암시된 길을 밤눈 밝은 고양이가 지공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어둠 외에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밤 산이었다. 그 속에서 고양이는 희미한 달빛을 모아 힘겹게 푸른빛을 짜내고 있었다. 뒤따르기만 했던 푸른 고양이의 뒤를 따라가려니 지공은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됐다.
—지공아.
돌아보니 아버지가 나무 기둥을 짚고 서 있다. 나는 바윗길을 내려가 물을 건넨다. 내리쬐는 볕에 아버지의 이마가 별처럼 반짝인다.
—힘들어?
—그럼, 인마. 천근만근이다.
아버지 얼굴에 엄살이 잔뜩 담긴다.
—내려갈까나 아부지?
얼마간 조용하다. 아버지는 숨을 여러 번 고른다.
—아니지. 끝까지 가야지.
—끝까지?
—그럼. 그리고…되돌아가기는 싫다.
나는 말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 가요.
아버지 뒤에 선다. 뒷모습이 쪼그라들어 나보다 작다. 양손으로 아버지의 엉덩이를 받쳐 민다. 아버진 되었다면서도 다 컸네, 장가가도 되겠네 한다.
—지공아.
메말라 버린 뒷모습이 나를 부른다.
—응.
—공아.
—으응.
—꽁아.
—이름 닳겠다.
아버진 잠깐 또 말이 없다. 숨이 조금 차기도 해 나도 말이 없다.
—힘이 드냐?
아버지가 묻는다.
—조금.
—그럼, 되돌아갈까나?
—아부지 힘들어?
—네가 힘들까 봐서.
나는 밀던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되돌아가는 건 싫어.
나의 말에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를 밀어 올리는 손이 묻는다. 아버지가 되돌아가기 싫다는 그곳은 어딜까?
어디로 가버린 걸까. 고양이가 어느 순간 기억에 묻혀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파란 몸이 이끌던 길도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순간들이 무색하게,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만 우주 한가운데에서 목적 잃고 표류하는 한 톨의 먼지가 돼 버렸다. 지공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물음을 던졌다.
“지금 내가 찾는 게 뭐지?”
지공은 일부러 소리 내 말했다. 누군가가, 하다못해 지공을 괴롭히던 시린 바람이라도 대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어디에서도 불어오지 않았다. 대신, 떠올랐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처럼 제 속에서 떠올랐다. 고양이야. 고양이를 찾아. 고양이가 나를 찾은 것처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는 몰랐다. 지금 내딛는 모든 걸음들은 해답이 아니라 그저 대답이었다. 지공은 축축한 길과 언 길이 나오면 축축한 길이라고 대답했고, 낙엽이 수북한 길과 벗겨진 길이 나오면 벗겨진 길이라고 대답했다. 묻고 대답했고 오르고 또 올랐다. 초조했지만 그저 초조한 대로 내버려두었다. 멍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초조하게 오르는 것이 지공의 대답이었다.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했다. 지금 이 갈림길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달랐다. 오른쪽 길에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나왔다. 그 미약한 빛에 나무의 굴곡이 드러나고 디뎌야 할 바위가 반작였다. 그 길은 다른 길들과는 달리 그림자 흉내를 내지 않았다. 너도 이곳으로 이끌렸을까. 지공은 또 대답했다.
걸을수록 달이 가까워졌다. 달이 가까워질수록 헐벗은 나무들이 사라지며 시야가 트였다. 산의 중턱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공지가 달빛에 흠뻑 젖었다. 꼭 땅에 박힌 달처럼 파랬다. 공지를 빙 둘러싼 옷 잃은 나무들이 시린 빛에 몸을 떨었고, 떨어진 옷들은 바스락거리며 땅이 될 준비를 했다.
나무가 떠는 소리,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 그런 의도 없는 소리들 가운데에서 지공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을 가슴 밑으로 꾹꾹 눌렀다. 그러자 의지를 가득 담은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들 속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왔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걸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확실해졌을 때 지공은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바위도, 그리고 그것들이 디디고 선 땅도 없었다. 텅 빈 풍경만이 짙은 어둠 속에 식어 있었다.
“어디 갔어?”
그러자 아래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고갤 숙였지만 파랗게 물든 제 단화 한 켤레만 보였다. 지공은 땅의 끄트머리에 배를 대고 엎드려 고갤 내밀었다. 절벽에 깎인 좁은 바위 위에서 고양이가 아슬아슬하게 앉아 지공을 올려다봤다. 지공은 땅에 깐 배가 이상하게 꿀렁거렸다. 얼른 손을 뻗었다. 간신히 닿아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들다가 놓치면 어떡하지. 지공은 눈을 질끈 감았다. 꾹 눌러뒀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올라왔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떠한 대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고양이가 다시 한 번 울었다. 지공은 눈을 떠 고양이의 파란 눈에 맞췄다. 언젠가 보았던 자그마한 입김이 지공의 얼굴에 닿아 부서졌다.
지공은 몸을 잠깐 일으켜 짐을 벗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절벽 쪽으로 몸을 더 빼 엎드렸다. 팔을 뻗었다. 한 손을 파란 등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부드러운 배를 감쌌다. 짐짝처럼 가만 기다리던 고양이가 앞발로 지공의 손목을 꽉 붙들었다. 지공은 힘껏 들어 올렸다. 그 어떤 짐을 들 때보다도 무거웠다. 지공은 몸을 돌려 하늘을 보고 누웠다. 가슴과 턱으로 고양이의 떨림이 느껴졌다. 파란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양이의 떨림이 지공에게 잠깐 옮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지공은 환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아부지.
조용하다.
—나 왔어.
나는 가방을 푼다. 다시 조용하다. 방문을 연다. 나는 아부지 하고 또 부른다. 모로 누워있는 등은 그래도 조용하다. 나는 곁으로 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아부지?
아버지를 천천히 돌려 눕힌다. 가만 바라본다. 꿇어앉아 코와 가슴에 귀를 대본다.
그 순간 물을 것이 참 많지만, 아버지는 계속 조용하다. 모든 걸 알려주던 아버지가 물음이 가장 많은 이 순간만큼은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곧 동이 트려는 듯했다. 지공은 가슴팍에 늘어져 꼬물거리는 고양이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고양이는 아쉬운 듯 느릿하게 내려와 바닥에 섰다.
지공은 절벽 가까이 가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고양이도 살금살금 걸어와 무릎 옆에 달라붙었다. 느릿느릿,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걷히는 어둠을 바라봤다. 지공은 아버지를 꺼냈다. 아버지의 매듭을 가만 보았다. 묶는 건 배웠지만 푸는 건 배우지 못했구나. 지공은 역순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막혔다. 참 수수께끼 같았다. 매듭을 다시 요리조리 뜯어 살폈다. 매듭의 결을 따라가며 순서를 찾아내 천천히 풀어 나갔다. 저 멀리 텅 빈 곳에서 해가 정수리를 내밀었다. 그 순간 매듭은 해답을 찾아낸 듯 스르르 풀렸다. 비닐을 열었다. 마치 숨을 트는 것처럼 자잘한 가루가 조금 퍼져 흩어졌다.
지공은 한 줌 쥐었다. 가벼웠다. 그렇게 무거웠던 아버지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지공은 쥐었던 손을 천천히 펼쳤다. 아버지의 거친 손 하나가 거짓말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비닐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바람에 올라탔다. 짐을 받쳐 업던 등, 그래서 고단했던 목덜미, 어느 순간 홀쭉해진 엉덩이와 메말라 버린 다리, 그리고 따습게 맞춰오던 두 눈까지. 지공은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담으려고 보고 또 봤다.
지평선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기억들이 던졌던 물음들이 그 아래로 가라앉았다. 스스로 대답을 찾아보라는 것처럼. 안주머니에서 아버지의 구겨진 담뱃갑을 꺼냈다. 그 속에 마지막 한 개비가 꼿꼿이 서 있었다. 집어 들었다. 손을 높이 들어 저 멀리 빨간 반원에 담배의 머리를 맞추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입에 물었다. 아버지처럼 길게 빨아 숨을 내쉬어 보기도 하고 남자처럼 쫓기듯 짧게 빨아 뱉어보기도 했다. 그저 청량한 바람만이 지공의 속을 간지럽혔다. 빨갛게 물이 든 담배를 지평선 쪽으로 향하도록 땅에 내려놓았다.
오롯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늘 푸르스름하던 고양이도 볕에 물들어 발갛게 타올랐다. 지공은 그 발그레한 뒤통수를 손등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되레 지공의 손을 쓰다듬는 듯 정수리를 부볐다. 가방을 열어 손짓하자 고양이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일어나 짐을 둘러멨다. 조금 열린 짐 사이로 고양이가 머릴 빼꼼 내밀었다. 지공은 문득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려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더 엄청난 놈이 찾아온다는, 그런 짐.
지공은 말했다.
“그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