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거 알아요? 반지하 집은 치열하다는 것을요. 겉으로 봐서는 모르죠. 보이지 말라고 묻혀 있으니까요. 웃긴 건 치열해서는 안 될 것들만 치열하다는 거예요. 바퀴벌레, 날파리, 곰팡이, 습기, 하다못해 냄새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제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를 쓰죠. 그것들이 그리 필사적인 건 어쩌면 인간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약을 치고, 끈끈이를 달고, 락스를 뿌리고, 물 먹는다는 하마를 두고, 향초를 피우고. 그렇게 소심하게나마 방어해 보려는 반지하 인간 말이에요. 그래 봐야 그것들의 치열함에다가 인간을 이기려는 의지까지 돋울 뿐이거든요. 그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요. 그것들의 의지가 본능이라면 인간의 방어는 학습인데, 학습이 본능을 이길 수는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반지하 집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라 그것들인 것 같기도 해요. 꼭 그것들을 위해 지어진 공간처럼요.
세상에 반지하는 많아요. 살아봤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요. 하지만 대부분이 반지하 방이죠. 반지하 집이 아니라. 반지하 방과 반지하 집은 다르거든요. 방과 집의 개념이 다른 것처럼요. 살아봤다고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방은 살아보는 곳이지만 집은 사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반지하 집은 반지하 인간이 사는 곳, 살아야 하는 곳,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요.
하여튼 그것들 중 제가 가장 참기 힘든 건 바퀴벌레예요. 보고 있으면 온몸의 구석진 부위에서 뭔가가 돋아나는 느낌에 근질거려요. 생긴 것 때문이 아니에요. 물론 생긴 것도 징그럽죠. 하지만 정말 역한 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약을 치면 피해 가고 피하지 못하면 내성을 기르고 피할 필요가 없도록 알을 까 그 의지를 넘기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하면서도 약을 친 곳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고 빌붙어 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요. 가끔은 그게 그들의 신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까맣고 냄새나고 축축한 신념.
그날 잠에서 깬 것도 그 멍청한 신념 때문이었어요. 시작은 엄지발가락이었죠. 잠결이라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꼭 혀로 핥아주는 것 같았어요. 남잔지 여잔지는 모르겠고 상관도 없었지만요. 아무튼 점점 올라오더라고요. 딱딱한 종아리 위를 타다가 무릎 뒤 주름이 몇 개인지 세고는 넓적다리에서 잠깐 방황하더니 속옷 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어 사타구니로요. 다시 말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자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그곳에서 꽤 오래 머물렀어요. 그 수풀에 찾던 것이 있는 것처럼요. 있을 턱이 없는데 말이죠. 아니,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니 바퀴벌레가 못 먹는 건 없거든요. 거북할 테니 그곳의 사정은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을게요. 그 후 왔던 길로 나와 다시 오르기 시작해 배꼽에서도 조금 오래 뒹굴고는 비쩍 곯은 늑간의 굴곡을 타며 놀다가 그 위에 의미 없이 돋아 있는 걸 유독 괴롭히더니 쇄골에서 잠깐 쉬었어요. 지쳤나 보죠. 그렇게 심기일전이라도 했는지 다시 울때뼈를 넘어 절벽에 가까운 턱을 단번에 올라 입술의 갈라진 틈 훑고는 점점 왼쪽 귀로 향하더군요.
귓바퀴를 정신없이 핥아댔어요. 처음 알았어요. 저는 귀가 성감대였더라고요.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죠. 부드럽고 긴 융털에 온몸이 휩싸인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데 점점 선을 넘더라고요. 아무리 개인 취향이라지만 귓구멍은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상대도 귓구멍이 완전한 취향은 아닌 것 같았고요. 망설임이 느껴졌거든요.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아슬아슬했죠. 발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귓구멍을 더듬거렸어요. 아마 이때 깨달은 거 같아요. 아, 이건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바퀴벌레구나.
눈을 떴어요.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순 없었어요. 죽여야 했으니까요. 그러려면 은밀해야 했거든요. 생에의 의지가 자신보다 높은 상대를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절호의 기회가 필요하죠. 좀 우습긴 하죠? 살면서 노린다는 절호의 기회가 겨우 바퀴벌레 잡는 일이라는 게요. 아무튼 동태를 살피려고 눈알을 끊어지도록 굴렸지만 볼 수 없었어요. 아무리 저라도 귀는 귀에 달려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바퀴벌레는 망설임을 끝낸 것 같더라고요. 그때의 감각 또한 처음 느껴본 것이었어요. 꼭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은 채 절정에 이른 미치광이가 된 듯했죠. 몸의 0.1할도 안 되는 그 작은 구멍 하나에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다뇨. 미치광이처럼 머리를 흔들었어요. 꽤 오래요. 왜냐하면 그 더러운 감각이 오래갔거든요.
감각을 겨우 떨쳐내고 이불이랑 방바닥을 살폈지만 그 까만 놈은 보이지 않았어요. 까만 귓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봤죠. 겨우 한 마디가 들어갈 만한 곳에 거의 두 마디를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말했잖아요. 바퀴벌레는 의지가 남다르다고요. 아무튼 다행이었어요. 아니, 불행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왼쪽 귓구멍이 조금 간지러웠거든요.
손가락을 빼니까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바퀴벌레를 부르는 소리요. 시멘트 바닥이 기름에 튀겨지는 것 같은 그 소리가 나면 일식이 일어나요. 안 그래도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집 창문에요. 그리고 일식을 향해 바퀴벌레들이 모여들죠. 전날의 일식을 통해 먼저 터를 잡은 무리와 섞이기 위해서요.
네모난 달이 네모난 창문을 한 줄씩 집어삼키기 시작했어요. 아래에서 시작해 점점 위로요. 중간중간 네모난 달에 묻어 반짝이던 불순물을 떼어내기도 했어요. 불순물에 달의 일부가 딸려 찢기기도 했고요. 그 상실에 네모난 달이 울부짖었죠. 전 알고 있는 욕 중에 가장 심한 욕을 뱉어서 던졌어요. 그러니까 잠깐 조용해지더라고요. 너무 조용해서 창밖에서 눈치를 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어요. 부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주시했어요. 저는 일식에 여념 없었던 여자의 머뭇거리는 굽은 등을 노려봤고, 그 여자는 제가 던지는 이유 모를 핀잔을 몸으로 견뎌냈죠. 얼마 안 가 다시 좀먹듯 창밖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소리에서는 나름대로 조심하는 티가 났죠. 만약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면 일식은 멈췄을까요. 아뇨. 좀 전처럼 그저 잠시 미뤄졌을 거예요. 여잔 아주 지독하고 참을성 많은 바퀴벌레 사육사니까요.
밥을 먹어야겠더라고요. 아침 점심 저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반지하 집 같은 밥이요. 인정하긴 싫지만 창밖의 그 소리가 밥때를 알리는 알람이 된 지도 꽤 오래됐으니까요.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죠. 발자국이 보였어요. 바퀴벌레가 흩어질 땐 발자국이 남거든요. 이동 경로가 그려진다는 말이에요. 경로를 따라가면 그것들의 서식처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죠. 싱크대 아래, 찬장 구석, 냉장고와 벽 사이, 천장 몰딩의 벌어진 틈, 두루마리 휴지 기둥의 안쪽, 오래된 전기밥솥의 증기배출구. 꼭 까만 귓구멍 같은 곳들이요. 근데 굳이 찾아내려 하지 않는 것뿐이에요. 목도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우글거리는 것들과 집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뻔히 알면서도요. 아는 것하고 보는 건 다르잖아요. 절호의 기회가 없어서 안 되겠다고 그냥 체념해 버리죠. 그러면 알아서 잘 숨어주니까 최소한 불편하진 않거든요. 불안할 뿐이지.
그런데 그날은 한 마리가 불편하게 굴더라고요. 전날인지 전전날에 먹고 남겨 둔 만두였어요. 한 입 베어 문 쪽에서 흘러나온 만두소를 정신없이 핥아 먹고 있었죠. 움찔거리는 더듬이가 경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고요. 아니면 계속 체념해 줬더니 믿어버린 걸지도요. 그 옆에 있던 멀쩡해 보이는 만두를 집었어요.
저도 한 입 먹었죠. 멀쩡하지 않았어요. 상했더라고요. 만두피는 말라버린 목공 풀 껍데기처럼 질겅거렸고 흐물흐물한 만두소에서는 시큼한 곰팡이 맛이 났어요. 씹지 않고 삼킨 후 베어 문 쪽으로 그 정신없는 것의 등을 덮쳤죠. 절호의 기회였잖아요. 만두소에 바퀴벌레가 흠뻑 스밀 수 있도록 몇 번이나 짓이겼어요. 요즘 바퀴벌레는 내려치는 것에도 내성을 길렀는지 여간 끈질긴 게 아니었거든요. 삐져나온 더듬이가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리더니 멈췄죠. 아마 나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홀린 것처럼 먹어대던 만두에 깔려 죽었으니까요. 오히려 나쁜 건 제 쪽이었죠. 밥이 사라졌잖아요.
반지하 집에서 유일하게 밝아지는 곳을 열었어요. 묵은 것들밖에 없었어요. 반지하 집이라 유독 빨리 묵어버리는 걸지도 모르겠고요. 세게 닫았어요. 그랬더니 윙윙거리는 냉장고 주위로 까만 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쏙 숨어버렸죠. 갑자기 왼쪽 귀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 머리를 또 세게 흔들었어요. 숨이 조금 찰 정도로요. 그러자 귓구멍 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렸고, 그 파편이 더 깊숙한 곳으로 굴러떨어지는 충격에 귀가 먹먹해졌죠. 손바닥으로 왼쪽 귀를 꾹 누른 채 짓이겨진 바퀴벌레를 내려다봤어요. 옆엔 돈이 놓여 있었어요. 천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모든 종류의 동전 열 몇 개요. 그 와중에 그걸 보니 배는 또 고프더라고요.
돈을 챙겨 현관으로 가 거울을 봤어요. 부옇게 내려앉은 먼지 때문에 존재감은 희미했죠. 보고 싶지 않은 걸 볼 때 일부러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처럼요. 먼지를 살짝 걷어내 왼쪽 귀를 비췄어요. 귓바퀴엔 제 흔적밖에 없더라고요. 미친 듯이 핥아진 흔적 같은 건 없었어요. 고개를 오른쪽으로 최대한 돌려서 꺾고 눈알을 왼쪽으로 한껏 끌고 가니까 귓구멍이 겨우 보였어요. 한 오 분의 일 정도만요. 그 까만 틈을 가만히 관찰했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아는 더듬이가 살짝 보일지도. 몇 분 그러고 있었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아니,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귀는 계속 먹먹했어요.
문을 열고 계단을 바라봤어요. 반지하와 지상을 잇는 계단이요.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그 계단은 참 묘해요. 올라가든 내려가든 맥 빠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거든요. 오르내린다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계단이 끝나버리니까요. 기껏해야 이 정도 높이라고 달래거나 비웃는 것 같죠. 문턱 위를 밟고 섰어요. 몸의 앞면으로는 하찮은 계단의 냉기가 불었고, 뒷면으로는 무거운 반지하 집의 집념이 묻었어요. 몸을 둘로 쪼갠 듯도 했지만 몸의 어디가 경계인지 헷갈렸죠. 몸을 반만 틀었어요. 먹먹한 왼쪽 귀에는 반지하 집의 부연 고요함이, 뻥 뚫린 오른쪽 귀에는 지상의 쨍한 잡음이 들렸어요. 경계가 명확해졌죠.
밖은 뜨겁고 하얬어요. 모든 걸 또렷하게 데우는 볕은 참 고약하지 않나요? 그저 있게 되어서 있는 거라는 듯 무심함을 가장한 채 감추고 싶은 곳마저 모조리 까발려 버리고야 마는 그 못된 성미 말이에요. 저조차도 보지 않은 몸의 구석구석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는 곳과 어떤 것도 감춰지지 않는 곳의 간극을 온갖 부정적 감정이 메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잔뜩 예민한 상태로 골목을 나서는데 누가 부르더군요.
—저기요.
못 들은 척했어요. 몰랐으니까요. 마침 귀도 먹먹하니 스스로 구실도 있었고요. 얼핏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인 것 같았죠. 얇은 반팔에 반바지 앞섬이 뾰족한 거로 봐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게 취향인 변태였거나.
—잠시만요. 3층 사는 사람입니다.
변태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갈 길 가려고 했죠. 너무 환했고 배도 고팠고 귀도 계속 먹먹했고. 근데 3층 남자는 그럴 생각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얘기 좀 하자고 세 번인가 네 번을 더 불렀어요. 앞을 막아서면서요. 키는 비슷했는데 배가 좀 나오고 덩치도 저보다 컸어요. 운동으로 다져진 게 아니라 그냥 장골로 태어난 몸 알죠? 딱 그랬어요. 몸 그 어디에서도 절호의 기회가 보이지 않았죠. 물론 나쁜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그랬다는 거예요. 아무튼 저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어요. 혼자서도 잘 떠들더라고요.
—저거, 어쩔 겁니까? 여름이라 냄새에 벌레까지 꼬여있던데. 그럼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거 모릅니까?
압니다. 당신보다 더 잘.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어요. 사실이잖아요. 제가 더 잘 안다는 거요. 3층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그곳이었어요. 일식이 일어난다는 곳이요. 서 있던 곳에서는 창문이 보이지 않았죠. 가리킨 쪽으로 깊숙이 꺾어 들어가야만 보이거든요. 붉은 외벽 아래에 창문이 붙어 있고 그 맞은편엔 옆 건물의 담이 쳐져 있어 뭔갈 쌓아놓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죠. 아니면 피우면 안 될 사람들이 숨어들어 담배를 피운다거나. 마침 남자도 얘기하더라고요.
—불이라도 붙으면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맞는 말이었어요. 불이 붙을 수도 있다는 것도, 그럼 책임질 형편이 안 된다는 것도요. 그런데 저한테 그 말을 하는 건 맞지 않았죠. 제가 한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그곳에서 나는 소리에 맞춰 일어나 밥을 먹으려 했던 것뿐이잖아요. 왜 저한테 그러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억울했어요. 화도 났고요. 그래서 해명했죠. 창문에 대고 던졌던 여러 가지 욕도 중간중간 섞어가면서요. 근데 가만 듣고 있던 3층 남자가 갑자기 정색하더라고요. 전까지 웃고 있었던 건 또 아니지만요.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합니까?
별 미친놈이었어요. 냄새며 벌레며 먼저 따지고 들길래 오해하고 있는 걸 말해줬더니 되레 왜 그렇게 말하냐고 따지는 게. 그러거나 말거나 전 말을 계속 이었어요. 말을 성욕처럼 쌓아놨더니 아주 술술 나오더라고요. 저도 놀랄 지경으로요. 공동현관으로 들어가려는 3층 남자의 앞을 이번엔 제가 막아섰어요. 힘이 세더라고요. 밀렸죠. 그래 봤자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어요. 남자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계속 해명할 수 있었죠. 10층까지 올라가더라도 계속 말이 나오겠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계단을 두 칸씩 오르더니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할 말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굳게 닫힌 문에 대고 나머지 말들도 쏟아냈어요. 오해는 풀어야 했으니까요. 그럼 이해가 될 수도 있었잖아요. 말을 다 뱉고 나니 인터폰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그러더군요.
—구청에 신고합니다.
아, 귀가 더 먹먹해졌어요.
일식의 흔적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어요. 덥지는 않았어요. 거긴 볕이 들지 않았으니까요. 햇볕의 한 귀퉁이를 잘라 까맣게 칠해 한밤중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죠. 그곳엔 납작한 것들이 수북했어요. 봉지 과자, 아이스크림, 컵라면, 캔 음료, 담배. 편의점이었을 거예요. 그 여자가 편의점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걸 몇 번 본 적 있었거든요. 과일 꼭지가 박혀 있거나 알 수 없는 이파리가 문드러진 것들은 옆 동네 청과물 가게에서 동냥했을 테고요. 주로 그 가게의 천막 아래에서 쉬는 거 같더라고요. 이 색 저 색의 좀 더 두꺼운 것들은 남의 집 건물이나 전봇대에서 주웠겠죠. 앞엣것들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요.
폐지 더미의 측면을 자세히 본 적 있나요? 겹겹이 쌓인 누런 폐지들 사이엔 골이 파이거든요. 이미 그림자가 진 곳에 더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골이요. 크기가 제각각인 폐지들을 겹쳐 쌓으면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정리를 하면 할수록 더 많고 깊어지고요. 그리고 그 깊은 곳에 하나둘, 아니 셀 수 없는 바퀴벌레들이 모여들어요. 골에 스민 손때나 운 좋게 묻어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빨아먹으면서 분변을 쏟아내고 좀 더 깊숙한 곳을 발견하면 이때다 싶어 알을 까대죠. 반지하 집의 귓구멍 같은 게 폐지 더미에도 있는 거예요.
살짝 들췄어요. 일사불란하더라고요. 그래 봤자 도망칠 곳이라곤 반지하 집이면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무리 속으로 숨어버릴 거면서. 귀의 먹먹함이 점점 심해졌어요. 좀 있으면 소리도 못 들어오겠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러다 다른 귓구멍마저 먹먹해지면 어떡해요. 아무것도 듣지 말라는 거잖아요. 그러고 나서 양쪽 콧구멍마저 그리되면요? 그럼 숨은 쉬어야 하니까 입을 벌리고 잘 텐데 목구멍까지 꽉꽉 채워 버리면요?
걸음이 찐득했어요. 내디딜 때마다 발이 땅속으로 꺼져서 애써 끄집어내며 걸어야 했죠. 걸음에 그토록 매달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바깥세상에 대한 주저함? 스스로 늘 인지하고는 있었어요. 외부와의 단절이 남들보다 길다는 것쯤은요. 하지만 주저함은 결코 걸음을 늦추지 않아요. 아예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거면 모를까, 주저함을 어떻게든 억눌러 일단 나오면 걸음은 상상 이상으로 빨라지거든요. 밖에서도 주저하느라 지체되느니 빨리 해치워버리고 다시 숨어버리는 게 나으니까요. 바퀴벌레처럼요. 그렇다면, 길의 불확실성이요? 글쎄요. 길은 언제나 명확했어요. 어느 경로가 되었든 걸음의 끝은 늘 한 곳을 향했으니까요. 그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들은 그저 경유지에 불과했죠. 그러니까 모든 길들이 종국엔 귀로인 거예요. 이것도 꼭 바퀴벌레 같네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손에 쥐고 있던 폐지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그냥 폐지였잖아요. 맨 밑에 깔려있던 가장 더러운 폐지 하나요. 누구나 쉽게 버려서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폐지. 절대 무거울 리가 없는.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엔 발목이 180도로 뒤틀리는 것 같았어요. 발가락이랑 뒤꿈치의 위치가 뒤바뀌는 거죠. 되돌아가라고. 되돌아가긴 해야 했지만 아직은 일렀어요. 조금은 버텨야 했어요. 발목이 정말 뒤틀리면 뒤로 걸어서라도 앞으로 가야 했죠. 그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거든요. 바지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왼쪽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건물은 높았어요. 1층부터 9층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죠. 하얀 햇볕이 수백 개의 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얼핏 주워듣기로는 그럼 냉난방이 잘 안 된다고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딴 건 걱정도 아니라는 듯 회전문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안에서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새어 나왔어요. 문득 회전문 안에 바퀴벌레를 풀어 넣고 싶더라고요. 견딜 수 없도록 밝고 건조하고 시원한 곳에서 끝없이 돌며 어둡고 습하고 푹푹 찌는 곳을 찾아 헤매는 꼴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회전문에 들어섰을 때 일부러 폐지를 몇 번 털었어요.
로비는 불쾌할 만큼 환했어요. 성미가 못된 볕을 모방이라도 해놓은 것처럼요. 들어서는 사람들의 목적과 속내를 간파해 내려는 수많은 가공의 볕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죠. 그 아래로 데스크가 보였어요. 그리고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 달라는 표정도 보였고요. 눈치 보는 게 일상인 것들과 함께 있다 보니 눈치가 옮았죠. 다가섰어요. 폐지를 높이 흔들면서 물었어요. 직원 둘이 7층이다 9층이다 옥신각신하더니 7층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 말을 골라야 했어요. 부리나케 제집으로 올라가 버린 걸 보면 3층 남자에게 했던 말은 영 통할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근데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어요. 3층까지는 어떻게 버티겠는데 더 올라갈수록 고산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귀가 멍했거든요. 안 그래도 먹먹해 미치겠는데 말이죠. 들고 있던 폐지를 조립해서 안에 들어가면 좀 괜찮으려나 하고 생각했죠. 그러기 직전에 엘리베이터가 섰어요. 9층까지 갔다면 정말 그랬을 거예요. 7층이라 다행이었죠.
폐지를 고쳐 잡았어요. 내리긴 했는데 정작 7층에서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 물어봤더라고요. 아니면 어디라고 말을 해줬는데 정신이 반쯤 나가면서 그 좌표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거였을 수도 있고요. 다른 엘리베이터 앞에 하늘색 공무원증을 찬 사람이 있길래 또 폐지를 흔들면서 물었어요. 청소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폐지가 아니라 몸이 떨렸어요. 꼭 설레는 것처럼요. 보글거리는 느낌이 명치에서 시작해 갈비뼈 결을 따라 온몸으로 퍼졌어요. 청소과라잖아요. 제대로 찾아왔다 싶었죠.
대부분 모니터만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몇몇은 서류에 고개를 파묻었고 몇몇은 전화로 누군가랑 싸웠고요. 저를 보는 사람은 없었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를 계속 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알겠더라고요. 몰라서 못 보는 게 아니라 알고서 안 보는 거라고요. 폐지의 멱살을 잡고 또 흔들었어요. 온갖 먼지가 전등 불빛에 나풀거렸고 알 수 없는 찌꺼기들이 뿜어졌죠. 아마 개중엔 알집도 있었을 거예요. 제일 지저분한 걸 골랐으니까요. 그랬더니 다들 한 여자 직원을 힐끔거렸어요. 시선을 받은 그 직원도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고요. 이쪽으로 오라길래 그쪽으로 갔죠.
마주 앉은 직원에게서는 핸드크림 냄새가 났어요. 여름이었는데 말이에요. 건조해서였을까요. 아니면 향이 좋아서였을까요. 그리고 직원의 말투 또한 여름철 핸드크림의 이유만큼이나 불분명했어요. 존대를 폐지 더미처럼 겹겹이 쌓은 듯했죠. 존대의 대상이 아닌 상대에게 억지로 존댓말을 짜내야 할 때, 그리고 상대가 그런 사실을 절대 몰라야 할 때 나오는 말투였어요. 물론 제가 진심 어린 존대를 바랐던 건 아니에요. 그냥 그곳의 층고와 볕과 엘리베이터와 핸드크림과 말투가 거슬렸을 뿐이에요.
직원이 한결같은 말투로 한결같은 말만 반복했어요. 그렇게 나오니까 저도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러는 내내 뭔가를 참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끝에 가서는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테이블 위에 올려둔 폐지에 눈물이 네 방울 정도 떨어졌어요. 젖길래 바닥에 내려놨죠. 왜 울었을까요. 눈물이 날 정도로 지겨웠던 걸까요 아니면 기껏 폐지 하나에 허비되고 있는 시간이 불쌍해서였을까요. 다른 직원이 다가와 눈물의 까닭조차 불분명한 직원을 자리로 돌려보냈어요. 그리고 또 같은 말이 반복됐죠.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냥 해명해야 했어요. 3층 남자에게 했던 것처럼요. 폐지를 다시 테이블로 위로 내팽개쳤어요. 바뀐 직원은 울 것처럼은 안 보였거든요. 말을 퍼부으며 먹먹한 귀를 연신 가리켰어요.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돈도 꺼내 보였고요. 그러니까 바뀐 직원이 물었죠.
—그럼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꼭 3층 남자 같은 얼굴로요.
계단으로 향했어요. 엘리베이터를 또 타고 싶진 않았거든요. 오르내림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그것의 태도가 싫었어요. 그런데 한 층도 다 내려가지 않아 후회했죠. 계단 통로엔 내벽이 없어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유리 외벽을 통과해 완벽히 들어찼거든요. 온몸에 눌어붙은 땀과 냄새가 점점 감정으로 치환되는 것 같았어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너무나도 많았고 정말이지 깊었어요. 올라갈 땐 엘리베이터를 탔었다는 게 새삼 다행이었죠. 모든 계단을 절벽에서 뛰어내리듯 내려갔어요. 그럴 때마다 폐지는 어딘가에 머리를 박아대는 소리를 냈고요. 그리고 소리는 사방으로 퍼졌다가 무한한 방향으로 반사되어 되돌아왔어요.
1층에 도착했는데도 계단은 계속 이어졌어요. 벽면에는 1과 B1이 빗금을 사이에 두고 적혀있었고요. 문득 알고 싶었어요. 반지하보다 더 깊숙한 곳에는 뭐가 있을지 말이에요. 다행히 지하로 가는 계단에는 볕이 들지 않았어요. 이어진 계단을 밟았어요. 한 층을 내려갈 때마다 위층에서 봤던 안내판이 숫자만 바뀐 채 반복됐어요. B1와 B2, B2와 B3, B3과 B4. 그러고는 계단이 사라졌죠. 반지하보다 더 깊은 곳이면 귀가 아예 막혀버리는 거 아닐까 싶어 내려오는 내내 걱정이 들었는데 그저 먹먹할 뿐이었어요.
지하의 끝은 한산한 주차장이었어요. 별다른 냄새도, 축축한 습기도 없었어요. 습기가 없으면 곰팡이도 없었겠죠.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반지하에는 그득한 것들이 정작 지하에는 없다는 게요. 반지하라서 존재하는 것들이라면 지하에도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더구나 지하 4층이었는데요. 귀를 계속 후벼 팠어요. 간지러운 것도 같았고 축축해지는 것도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알겠더라고요. 이곳 지하에 냄새나 습기나 곰팡이는 없지만, 숨을 곳은 참으로도 많다는 것을요. 돌아가는 펜의 틈새나 구불구불한 배관이나 자동차의 배기구, 뭐 그런 곳들이요. 반지하 집에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많은 귓구멍들. 바퀴벌레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죠. 아니면 앞으로 생기던가. 귓구멍에서 손을 빼고 폐지를 또 세게 털었어요.
미처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에 보니 알던 것들이 많이 변해 있더라고요. 폐지처럼 늘어져서 수거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낡은 집들은 아파트가 되었고, 큼지막한 폐지들이 널브러지던 가로쓰레기통은 빨대가 달린 큼지막한 컵으로 바뀌어 박혀 있었고, 묶인 폐지 더미들이 누워서 쉬던 가로수에는 철제 울타리가 솟았고, 폐지 폭포가 흐르던 지하철역 출구 계단은 에스컬레이터가 되어 미친 듯이 돌았죠. 내리쬐는 햇볕은 어제와 같은 것이었고, 조금 있으면 어제와 같은 밤이 내려앉을 거였고,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들을 살아온 것뿐이었는데 누가 그렇게 세상을 바꿔놨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기만 하는 폐지를 어디에든 둬야 했지만 마땅한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몸은 기진했어요. 걸음은 무겁다 못해 앞으로 가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 의심까지 들었죠. 들고 있던 폐지도 수상했고요. 현실감이 없을 만큼 무거워졌잖아요. 고쳐 잡고 또 고쳐 잡아도 계속 손에서 벗어나려 했죠. 걸음을 조금 틀었어요.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변한 게 없었어요. 컨테이너 조각들을 기워 올린 벽, 그 앞에 즐비한 앙상한 수레들, 가려지지 않을 것들을 뒤덮은 낡은 천막, 보도블록 위에 짙게 남은 두 줄의 자국. 아니, 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죠. 무엇보다도 그대로인 건 폐지 산이었어요. 보는 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얽히고설킨, 마치 자연 발생하여 생태계에 완전히 녹아든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폐지 산이요. 산의 단면에는 셀 수조차 없는 반지하 집들이 파여 있었어요. 반지하들로만 이뤄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같기도 했죠. 그 속엔 아마 볕이 완전히 사라지길 염원하는 몸짓들이 우글거렸을 거예요. 그래선지 약간 꿈틀거리는 듯 보이는 산에서는 톡 쏘는 냄새가 풍겼어요. 자격 없는 의지가 뭉친 듯한 냄새요. 삶의 모든 어두운 면들을 응축한 냄새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또 영문을 모르겠더라고요.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는 것 같은데 산은 왜 그토록 그대로인지.
안엔 아무도 없었어요. 폐지를 지폐로 바꿔 가는 사람도 바꿔주는 사람도요. 유일하게 폐지가 깔리지 않은 바닥으로 가 섰죠. 한가운데에 철판으로 된 대형 저울이 깔려 있었어요. 땅의 무게를 재고 있는 것같이 우직하게요. 들고 있던 폐지를 그 위로 던졌어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떨어졌죠.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존재를 찾아내려고 전광판을 올려다봤지만 붉게 빛나는 0이 오히려 그 미미한 존재감을 비웃었어요.
문득 폐지 위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맘이 들었지만, 그러지는 못했어요. 올라간들 숫자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저 내려다보기만 했어요. 무가치를 선고하는 0을 몇 번 올려다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왼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이천몇백 원의 가치를 가늠해 봤죠. 제각각인 산봉우리들을 하나둘 눈으로 짚으면서요. 순간 주변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어요. 꼭 폐지를 집어 올리는 집게 차가 우는 소리로요. 하지만 아래로 무식하게 뻗은 집게에는 미동도 없었어요. 귀가 먹먹하다 못해 이젠 환청까지 들리나 싶어 왼쪽 귓구멍을 막아봤어요. 그런데 멀쩡한 오른쪽 귀로도 분명하게 들리더라고요. 폐지 산 너머 먼 하늘이 때 이르게 어둑해지고 있었죠.
바닥에 짙게 남은 수레 자국 위를 걸었어요. 언뜻 두 줄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수만 갈래로 이뤄진 상흔이었죠. 자국을 밟던 걸음을 비스듬히 해 내려섰어요. 그리고 자국의 옆을 따라 걸었죠.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집념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누군가에겐 이정표였을 그 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딘가가 나오거나 누군가와 마주쳤을 터였죠. 하늘이 계속 으르렁거렸어요. 막연한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요. 예감과 불안 사이를 오가며 걸음을 재촉했어요. 그러다 갈림길이 나왔고, 자국이 남지 않은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길어진 귀로가 반 정도 남았을 즈음 비가 쏟아졌어요. 다들 손등으로 머리 위를 가리고 뛰어다니는 걸 보니 예정된 비는 아니었죠. 빗줄기는 세찼어요. 폐지를 두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흠뻑 젖은 폐지는 아마 더 무거웠을 거예요. 숫자가 바뀔 정도로요. 그럼 찐득하던 걸음은 폐지와 함께 널브러져 언젠가 다시 내리쬘 햇볕에 바짝 마르기만을 기다렸겠죠.
걸음이 축축해졌어요. 빗물에 미끄덩해진 슬리퍼에서 발이 계속 빠져나왔죠. 그렇게 질척이며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비슷한 나이의 한 남자가 첨벙첨벙 뛰어오고 있었어요. 납작하게 접은 종이 상자를 머리 위로 든 채로요. 폐지가 아니었어요. 순간만큼은 남자에게 우산이었겠죠. 그런데 괜한 짓 같았어요. 비를 막기는커녕 축축하게 젖은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이 빗줄기만큼 거셌으니까요. 그런데도 남자는 그걸 내버리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높이 든 상태로 흔들어 털기까지 하는 남자가 스쳐 지나갔어요. 저는 손으로 왼쪽 귀만 가렸죠. 왠지 귓구멍에 빗물이 들어차는 것 같아서요.
반지하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곳의 음습한 기운이 빗물에 섞여 온몸에 스몄어요. 부르는 것처럼요. 언제나 돌아가야 했고 언제나 돌아갔던 곳이지만 순간 그 부름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거기엔 이미 저와 비슷한 것들이 그득했잖아요. 그러니 제가 들어간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부름에 응해야 했어요. 소리 외로 전해지는 그날의 부름은 너무나도 짙었으니까요.
그 음울한 부름이 깔린 골목은 썰렁했어요. 빗물에 색이 씻겨 나간 듯 무정했고 하늘에 소리를 빼앗긴 듯 고요했죠. 흠뻑 젖은 몸이 으슬으슬해서였을 수도 있고요.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위로 솟구치며 저의 마지막 미열까지 앗아가려는 것 같았어요. 덜덜거리는 치아가 머리를 울렸어요. 그게 꼭 수레바퀴가 발발거리는 소리 같아서 괜히 뒤를 돌아봤지만 수레는 보이지 않았죠.
그러고 보니 골목에는 폐지들도 없었어요. 이미 다녀간 건가 싶어 바닥을 살폈어요. 축축한 날엔 바닥에 쓸린 폐지의 물컹한 살점들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날은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그칠 줄 모르는 비에 수많은 물결들이 일어 바닥을 쓸어내고 있었어요.
집 앞에도 수레는 없었어요. 어둑한 비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듯했죠. 저 또한 들어가질 못하고 공동현관 앞에 서 있었어요. 보였거든요. 젖어가는 폐지 더미가요. 처음엔 북을 치는 것 같은 파열음으로, 다음엔 흙길이 눅눅해지는 것 같은 비음으로, 마지막엔 물 위에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유음으로. 네. 소리였어요. 말했다시피 구석진 곳에서 꺾어 들어가야만 보이는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보였어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모습으로요.
그래서 전 결국 두 눈으로 봐야만 했어요. 망가진 귀를 마냥 믿을 수만은 없었으니까요. 누런빛은 온데간데없이 축축한 어둠만 스며 있었어요. 아스팔트에 끌린 생채기와 음식물이 눌어붙은 자국, 떠돌이 개의 오줌 얼룩까지 모조리 지워버리는 어둠이요. 그 축축하고 까만 폐지 더미는 꼭 살아있는 듯 보였죠. 혹시 숨소리가 날까 싶어 쪼그려 앉아 오른쪽 귀를 들이밀었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왼쪽 귀로 바꿔 대 봤고요. 정말 들리는 듯 했어요. 손가락으로 꾹 눌렀더니 체액이 뿜어져 나왔고 움푹 팬 상처 위로 빗물이 고였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원래대로 부풀었죠. 숨이 붙은 폐지 더미를 저울에 올려보고 싶더라고요. 그럼 전광판은 아마도 혼란스러워했을 거예요.
그 혼란스러움을 제 기억이 아닌 곳에 남겨야 했어요. 순간을 간직하려 했던 건 아니고, 다만 잊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폐지든 빗줄기든 수많은 내일들에 수도 없이 반복될 것들이었고, 그렇다면 숨이 붙은 폐지의 형상을 언제든 다시 마주하게 될 거였잖아요. 그래서 그런 날이 오더라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려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됐죠. 그렇다고 눈앞의 것을 들어 저울이 있던 곳으로 다시 걸어나갈 기운은 없었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남겨야만 했어요. 꼭 그러고 싶었어요.
폐지 더미의 맨 아래로 두 팔을 쑤셔 넣었어요. 팔에 닿는 폐지의 촉감이 꺼슬꺼슬했죠. 손등을 긁는 시멘트 바닥보다도요.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육중하기도 했고요.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도 되게 해야 했어요. 쪼그려 앉은 무릎에 팔꿈치를 걸치고 지렛대처럼 조금씩 들어 올렸어요. 온몸의 혈관들이 부풀어 올랐고, 맞붙은 어금니들이 서로를 부숴 버릴 듯 갈아댔어요. 겨우 다리를 반쯤 펴게 됐을 때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 팔이 다시 아래로 쏠리려 했죠. 필사적으로 폐지 더미를 품에 안았어요. 반동에 조금 휘청거려 옆 담벼락에 몸을 기댔죠. 가슴팍에 체액이 스몄지만 상관없었어요. 이미 흠뻑 젖어 있었으니까요. 숨을 몰아쉬다가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해 입을 벌렸어요. 금세 고인 빗물에 해갈이 돼 참을 만해졌어요. 담벼락에서 등을 뗐어요. 오롯이 홀로 지지한 채 들고 선 폐지는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어요. 그리고 그 무게가 몸속 깊이 박혔고요. 숨을 고르며 폐지가 있던 곳을 내려다봤어요. 허하게 비어버렸죠. 하지만 정작 창문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요. 다음 일식을 믿는다는 듯이.
계단을 하나둘 밟았어요. 팔다리가 후들거렸죠. 약 처먹은 바퀴벌레처럼요. 본래 무게를 되찾은 폐지 더미는 정말이지 버거웠어요. 폐지 더미에서 물이 뚝뚝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가벼워지진 않았죠. 오히려 계단을 올라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어요. 네,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갔어요. 대수롭지 않은 반지하 계단을 오를 때와는 달리 계단 하나하나마다 올라가고 있다고 올라가야 한다고 되뇌어야 했어요. 그러던 중 2층에서 폐지 더미의 한쪽 귀퉁이가 조금 끊어져 덜렁거렸죠. 마음이 급해진 저는 3층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계단을 두세 개씩 밟아 뛰어 올라갔어요. 팔이 어깨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그래야 한다고 맘먹으니 또 그리되더라고요.
3층 남자의 집 앞에 도착해 폐지 더미를 살폈어요. 다행히 숨은 아직 온전하게 붙어 있었어요. 이마로 벨을 눌렀어요. 양손은 폐지 더미에 눌려 있었으니까요. 인터폰이 연결되며 딸각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 말이 없었어요. 한 번 더 눌렀어요.
—무슨 일입니까?
그저 네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또 조용하더라고요. 이마로 세 번째 벨을 눌렀는데 이번엔 벨 소리가 나지 않았죠. 귀가 이젠 정말 먹어버렸나 싶어 발로 문을 두들겼어요. 슬리퍼 앞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이 빨개질 때까지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말했다시피 손을 쓸 수가 없었잖아요. 문 두들기는 소리는 잘 들리더라고요. 다행히도 아직 귀가 먹은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다행히 문도 열렸고요.
—지금 제정신입니까?
경계하듯 조금 열린 문을 발로 활짝 열어서 들고 있던 폐지 더미를 3층 남자의 품에 던지듯 떠넘겼어요. 무의식중에 받아 든 남자의 팔이 아래로 곤두박질쳤고요. 당연했죠. 무거웠으니까요. 3층 남자가 폐지 더미를 난생처음 보는 물건처럼 내려다봤어요.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걸릴 만했어요.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아니 그래야만 했죠. 기다려 줬어요.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 때까지요. 그리고 물었죠. 지금 들고 있는 게 뭐냐고요.
—돌았냐 너?
저도 반말로 다시 물었어요. 지금 들고 있는 게 뭐냐고요.
—폐지 아니야 이 새끼야. 너 약 했냐?
웃기더라고요. 저도 올라오면서 했던 생각이잖아요. 얼마큼 무겁냐고도 물어보려 했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겠더라고요. 3층 남자가 패대기친 폐지 더미의 무게가 소리로 여실히 전해졌으니까요. 단 1g의 오차도 없이요. 조금 망가진 제 귀로도 들렸는데 남자에겐 더 잘 들렸을 터였죠. 내려갔어요. 등 뒤로 뭔 말이 들려오긴 했는데, 그냥 좀 지치더라고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온통 까맸어요. 젖은 폐지처럼요. 어둠인 척하던 그림자 위로 진짜 어둠이 내려앉았죠. 그런 곳이었어요. 어둠보다 더 어두울 수 있는 곳. 멀뚱히 선 몸에서 물이 쏟아졌고, 마치 반지하 집의 일부인 것처럼 바닥에 까맣게 고였어요. 그 물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몸, 하늘, 아니면 폐지. 셋 다였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죠. 역시 누구의 것인지 모를 고단함이 썩기 직전까지 삭은 냄새가요. 그 축축하고 고릿한 감각은 공기가 되었고, 공기는 공간과 공간 안의 존재를 모조리 집어삼켰어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 서 있었어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끝을 알고 싶기도 했고요. 두 다리에 힘을 줘 횡의 중심을 잡았고 날갯죽지를 쥐어짜 종의 평온을 붙들었어요. 그런 후 저의 것이 아닌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았죠. 제가 만든 어둠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을 만큼의 미세한 호흡만을 코로 들이마셨어요. 부동의 몸에서 떨어지던 물줄기가 결국엔 물방울이 될 때까지요.
그 오랜 부동의 끝은 미동이었어요. 번개가 반지하 집을 흔들었거든요. 뒤따라 하늘이 울었고요. 꽤 여러 번. 반지하 집의 찰나들이 환하게 빛났어요. 여기저기 갈라진 문틀과 곰팡이 문양의 벽지와 먼지를 뒤집어쓴 냉장고, 줄어들지 않는 옷더미와 찌그러진 냄비들과 습기에 익어버린 비닐들. 그 모든 것들이 원래의 색을 잃고 창백하게 번쩍였죠. 더욱 깊게 자리 잡겠다고 외치는 것처럼요.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저는 그저 이방인이었어요. 그 창백한 것들처럼 기꺼이 반지하 집의 일부가 되지는 못하면서 그렇다고 어딘가의 정주민이 되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이요.
천둥이 결국엔 반쪽이 됐어요. 왼쪽 귀에 손바닥을 대고 몇 번 흔들어 봐도 꼭 공간을 반으로 쪼갠 것처럼 절반만 들렸죠. 그리고 저는 봤어요. 아니, 보게 됐어요. 짓눌려 죽었던 바퀴벌레 주위로 몰려든 수많은 바퀴벌레들이요. 우글거린다는 말을 완벽하게 구현한 움직임들이요. 어둠이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그 역겨운 광경을 찍었고 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깜빡거리는 피사체를 목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감히 시선을 뗄 수조차 없이 섬뜩했거든요. 뭔가를 해야만 하는데 그 뭔가를 평생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그 순간만이 아니라, 앞으로도요.
아, 그런데요. 정말이지, 진정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바퀴벌레를 부르는 그 소리가 반쪽짜리 천둥을 뚫고 들려왔어요. 어둠이 더 이상 끼어들 수도 없는 반지하 집에, 또 일식이 시작됐죠. 여자의 발소리는 어딘가 절망적이었고, 뒤를 따라다니는 폐지의 소리는 병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절망적이고 병적인 소리들만큼은 반쪽이 아닌 양쪽 귀를 통해 완벽하게 들렸죠. 왼쪽 귀는 분명 막혀버렸잖아요. 그래서 소리가 아닌 본능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반복된 학습으로 이제는 본능이 되어버린 부름이요.
저는 그 부름에 반응하려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나가기 시작했어요.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식탁 위 저를 섬뜩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주먹으로 수없이 내려쳤고, 옷더미를 헤집자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발로 밟아 짓이겼고, 싱크대 아래로 팔을 쑤셔 넣어 손에 잡히는 것들을 움켜잡았어요. 제가 잘못 알고 있었어요. 치열한 것들을 죽이는 데 필요한 건 절호의 기회 따위가 아니었어요. 더 치열하면 되는 거더라고요. 그것들의 체액과 저의 피가 서로 엉겨 붙어 손과 발이 끈적해졌지만 멈추어서는 안 됐어요. 잡고 또 잡아도 줄어들질 않았으니까요.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으면 발등 위로 기어 나오고, 발로 밟으면 벽을 타고 도망가고, 손바닥으로 벽을 치면 구석에서 튀어나오고. 그럴수록 저는 더 치열했어요. 그리고 제가 치열해질수록 여자의 일식도 점점 더 격렬해졌어요.
더듬이를뜯어내자비닐테이프가떼어지고다리를찢어발기자여자의걸음이빨라지고대가리를으스러뜨리자폐지가바닥에미친듯이긁히고날개를잡아뜯자폐지의귀퉁이가바닥에나뒹굴고배에서하얀내장을짜내자축축한폐지들이서로엉겨붙고알집을짓이기자여자가한숨을쉬고.
그런데요.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던 그 몸짓이요, 일순간 정지돼 버렸어요. 문득 의문이 들었거든요.
죽이고 또 죽여서 한 마리만 남게 되면, 그 마지막 바퀴벌레는 누가 잡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