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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편승

단편소설

by 지공

「그만둘래.」

뒷모습만 익숙한 사람들 사이의 틈을 걸었다. 아무런 표지도 없이 늘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운명처럼 다가올 자신의 버스를 기다리는 자들, 단속을 피해 밤늦게 붙였던 호객 종이들을 떼어내느라 쪼그려 앉은 자들,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려는 차보다 먼저 지나가기 위해 필사적인 자들, 관습처럼 자리 잡은 금연 구역의 흡연구역에서 막간의 끽연을 누리는 자들. 그들의 양쪽 날갯죽지로부터 뻗은 수많은 오늘들이 둥둥 떠다녔다. 나의 것은 뭐 어디 발뒤꿈치 같은 곳에 간신히 매달려 늘어져 있을 터였다. 그래서 이 길엔 늘 나의 오늘들이 질질 끌려다닌 자국이 짙게 남아 있었다.

「관두고 뭐 할 건데?」 H가 추궁했다. 횡단보도의 줄어드는 녹색 역삼각형도 답장을 채근했다. 그러는 사이 H는 미리 연구라도 해뒀는지 몇 개의 예상들을 현란하게 늘어놨다. 하루 견과 한 봉지를 한 달에 걸쳐 쪼개어 먹게 될 것, 냉난방비가 없어 온 동네 은행 로비를 전전하게 될 것, 집에서나 비밀리에 입을 넝마들이 외출복이 될 것. 의식주를 넘나드는 저주에 정신이 혼미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쌍디귿을 입력하기도 전에 H의 결재가 떨어졌다. 「반려야.」 입력돼 있던 어를 그대로 보내버렸다.

「우리 셋은 고점에서 물린 거야.」 건물 정문에 들어설 때쯤 K가 말했다. 주식 얘긴 이제 신물이 난다 하니 그녀는 그게 아니라며 재빠르게 덧붙였다. 「여기 들어오긴 제일 힘들 때 들어왔는데 갈수록 하한가만 치고 있잖아!」 그러곤 무료 이모티콘으로 훌쩍거렸다. 고점 어쩌고 하는 절묘한 비유는 아마 본인의 경험에서 착안했을 터였다. 낯선 이름의 코인에 털어 넣은 전 재산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졌다며 한바탕 눈물 콧물을 짜댔던 그녀는 여간 볼썽사나운 게 아니었다. 인조 속눈썹이 눈물과 함께 손등에 딸려 나오자, H는 한 모금 정도 마신 커피를 몽땅 버리곤 황급히 도망치는 길을 택했었다. 당시 내가 끝까지 자릴 지켰던 건 새가슴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제에 전재산을 탕진할 수 있었던, 어떻게든 될 용기의 출처가 궁금해서였다. 그게 나에게 있었다면. 엘리베이터의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K의 말을 정정해 줬다.「이대로 가다간 하한가가 아니라 상장 폐지될 수도.」


고점. 뭐 그랬다. 최근 급등한 코인처럼, 이곳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였던 적이 있긴 있었다. 전공 불문의 예비 일꾼들이 앞다퉈 노량진으로 향했던 시기. 누군가는 나라가 망할 기류라 했고, 나란 놈은 그 기류에 올라타기 바빴다. 태어나 가장 자신 있는 게 편승이었다. 엄청난 마일리지가 최종 보상일 거라 여겼던, 대학교에서의 해묵은 편승. 그 4년간의 편승이 그저 또 다른 편승을 위한 경유에 불과했다는 비보를 인식할 겨를도 없었다. 1년간의 연장 편승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그래서 다행히 안착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두 발은 허공에서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다. 안도 착도 없었다. 영문을 몰랐다. 몰랐기에 언젠간 멈출 거라고, 온 힘을 다해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진짜 온 힘이 다해버렸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그때의 기류는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끝의 모습만큼은 선연하게 그려져 더욱 비극적인 난기류였다는 걸. 들어서야만 깨달을 수 있는, 되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다른 편승으로 향하는 틈마저도 안내되지 않는 완벽한 고립의 난기류. 그것에 둔해져 더 이상 허우적거리지 않게 됐을 때, 뉴스에서는 ‘MZ공무원 줄퇴사에 공직 비상’ 따위의 특집 기사를 쏟아내며 무분별했던 나의 편승을 비웃었다.

허우적거림이 잦아들자 사색으로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았다. 이곳에 대한 고찰, 의문, 몽상, 기대, 실망, 상상, 좌절, 착각, 망상, 회의, 환멸. 그러한 사색들 대부분은 모호한 것들로부터 촉발되곤 했다. 이곳 자체, 이곳과 나 사이의 경계, 그 둘을 지배하는 제도나 패러다임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견지해야 할 신념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당위 같은 것들. 그 사색들은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온전하게’ 아니면 적어도 ‘아무렇지 않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줄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호함에서 기어 나온 그 갈망들은 굉장히 모호하게, ‘그나마 최악은 아니잖아’나 ‘어딜 가나 똑같지’ 같은 자포자기의 과정으로, 이곳에 ‘어찌할 수 없어’ 존재해야만 한다는 회색빛 결론으로 흩어져버릴 뿐이었다.

일련의 흐리멍덩한 체념이 거듭되자, 모호한 사색 대신 명확한 탐구에 열을 올렸다. 명확한 것들 중 탐구하기에 민망한 것들, 예를 들면 삶을 영유하려면 경제 활동이 필요하다는 피곤한 사실, 그러기엔 이곳 경제활동의 대가가 너무나도 작고 소중하다는 절망 따위의 것들은 하나씩 열외로 했다. 그런 것들은 편승하기 전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모면할 수 있었던 것들이라 파고들어 봤자 스스로를 향한 책망만 짙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제외하다 보면 남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수요 된 바 없어도 끊임없이 공급되는, 내 주변에 너무나도 명확하게 존재하는 자들. 무능력 출세주의자, 유능력 안일주의자, 몰염치 쾌락주의자, 목적 없는 호전론자, 무지해서 무례한 자, 알면서도 무례한 자, 자기애로 인류애를 말살시키는 자, 고집이 아집이 되어버린 오만방자한 자, 가면을 쓰고 칼을 꽂는 교묘한 자, 타인의 손으로 칼을 꽂는 더 교묘한 자, 남의 희생에 주저함이 없는 자, 타인의 비밀을 불허하는 의문스러운 자, 눈물의 임계점이 낮고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자, 악에게 빌붙는 악이 기약된 자. 군상들 속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탐구했으며, 가차 없이 경멸했다.

그리고 경멸할 때마다 사직서를 썼다. 그냥 쓸 수는 없었다. 이곳이 만들어 둔 사직서 양식은 보면 볼수록 싸가지가 없었다. 들어올 땐 수백만 자의 책들을 학습하게 하고, 1,000자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고, 각종 도형이 난무하는 종이들로 나도 모를 내 적성을 테스트하더니, 그것으로도 성에 안 차 신체검사서를 통해 내 신체가 얼마나 볼품없는지를 상기시켰고, 가족관계증명서, 등본, 초본까지 제출케 하고 나서야 나에 대한 의문을 거뒀던 이곳이다. 그렇게 시달렸던 자가 토해낸 결심, 그 처연한 결단을 겨우 두 줄 남짓의 글로 파악하려 하다니. 예의 없다, 배려 없다, 재수 없다, 사려 없다, 수많은 ‘없는’ 말들로는 부족할 만큼 싸가지가 없었다.

먼저 그 싸가지 없는 사직서의 ‘사유’ 칸을 경멸의 강도만큼 늘린다. 그래야 그들이 정의한 알량한 사유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유가 가능하다. 칸의 맨 위에는 인물을 한마디로 정의한 표제를 볼드체로 입력하고 바로 아래에 인물의 기질과 습성을 탐구한 결과를 깔아 서문 비슷한 걸 작성한다. 여기엔 비유를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본문이 될 곳에는 인물의 행적과 만행을 추측이 아닌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 진술하고, 그것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가명의 피해자별로 조목조목 나열한다. 가명이라고 해봤자 십중팔구는 나였다. 여기까지 적다 보면 가끔 악에 받칠 지경이 되기도 하는데, 그럼 동종의 인물이 관여된 다른 사회 이슈나 예술 매체에서 동종 인물을 다룬 사례를 인용해 경멸스러움을 재차 환기한다. 마지막으로 결문에서, 앞의 모든 것을 종합해 경멸스러운 자에게 파멸을 고한다. 그대는 그대를 만들어 낸 창조신의 할애비가 와도 구제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구제 불능인 그대에게 자멸하여 절대다수의 행복을 기릴 수 있는 기회를 하사하겠다고. 매몰차지만 관대하게.

매번 심혈을 기울였다. 꼭 사직서를 쓰기 위해 취직한 사람 같았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온전하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용하지는 않았다. 이것에 몰두하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곳에 존재하기 위함이라고 자조하다 보면, 이곳에 ‘어찌할 수 없어’ 존재해야 한다는 잿빛 오늘들이 아주아주 조금은 옅어지곤 했다. 경멸스러운 자는 경멸받아 마땅하니까, 나는 마땅하지 않은 곳에서 마땅한 경멸을 하고 있는 거니까. 벌써 열네 개가 되어가는 사직서들은 제출 날짜와 서명이 비워진 채 지방공무원보수규정.hwp 따위로 위장되어 겹겹이 쌓은 폴더 속에서 당사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숨죽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거듭된 편승의 대가란 사실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자괴감을 툭툭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7년 전의 나를 설득하고 만류하고 애원하고 안 되면 패고 그러다 또 호소하고 탄원하고 애걸하고 복걸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다시 흠씬 두들겨 패고 싶어진다. 정신 좀 차려. 이곳은 아니야. 하지만 시간의 비가역 아래에선 과거를 향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현명한 자라면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보상이라도 청구해 새로운 미래로 향할 목돈이라도 마련하라는 건가. 아니 이곳의 실체를 감쪽같이 속였으니 국가의 기망행위로 인한 손해이므로 보상이 아닌 배상이려나?

보상이냐 배상이냐로 골몰하고 있는데 고함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걸러지지 않은 분노 본연의 소리, 업무 개시를 알리는 것 치고는 가혹하기만 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8층 조심.」 아래층 H의 경고가 모니터에서 반짝거렸다. 입술이 허예지도록 깨물었다. 우리 부서는 아니기를. 아니 나만은 아니기를. 이왕이면 꼴뚜기를 닮은 옆 자리 선배 놈에게 닿기를. 빌고 비는 사이 분노가 사무실에 들어서며 첫 번째 바람을 깨부쉈고, 이윽고 고하는 천벌에 두 번째, 세 번째 것마저 박살 나 버렸다. 이 육실할 놈의 살찐이!

살찐이란 길고양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래. 언젠가 꼴뚜기가 말했다. 길고양이 담당이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마치 승진 비법이라도 전수해 주는 양했다. 오늘의 천벌을 예견한 꼴뚜기도, 그걸 기억해 낸 나에게도 짜증이 일었다.


전동 휠체어를 대동한 천벌은 세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뒤로 보이는 시계는 겨우 삼십 분이 지났다고 말했다. 세 시간인지 삼십 분인지 동안 분노에게선 욕지거리를 뒤집어쓴 방언 기도문 같은 게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제법 다채로웠지만 돌고 돌아 같은 말이었다. 불쌍한 노인네의 소중한 일상을 방해하는 길고양일 남김없이 말살하라. 전혀 불쌍하지 않았고 일상이 소중하지도 않았다. 맞는 말이라곤 본인이 노인네라는 것뿐이었다. 분노한 노파는 무려 12호실 원룸 건물의 주인이었고, 일상이라 봤자 이곳 1층부터 9층까지 온 부서를 순회하며 나와 같은 죄인들을 잡아다 족치는 게 전부였다. 가끔 기력이 좋은 날엔 지하 1층의 은행원들까지 죄인에 포함되곤 했다.

퇴치제를 드릴 테니 한 번 써보시겠어요, 선생님? 길고양이도 소중한 생명입니다. 골목 전체가 할머니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지구는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고양이 역성을 들어서인지 선생님에서 할머니로 격하시켜서인지 노파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꼭 고양이처럼 하악질을 하며 불똥을 마구잡이로 던져댔다. 정 그렇게 나온다면 네 놈이 준 퇴치제를 이 사태의 원흉인 캣맘에게 뿌려버리겠노라고. 고양이가 기피하는 캣맘이라니, 너무나도 비극적이어서 쏜살같이 퇴치제를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노파는 곳간을 몰수당한 몰락 양반처럼 까무러쳤다. 개판이었다. 개판이니 개 담당인 꼴뚜기를 소환해야 할 판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퇴치제의 뒷면만 읽어댔다. 깨알 같은 글자들 속에 이 천벌에서 회개할 방법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팀장이 달려 나와 노파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를 회개시켜 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노파가 택한 불후의 전략 때문이었다. 제일 높은 놈 나와. 민원은 해결되지 않을지언정, 제일 높은 놈은 못 만날지언정 덜 높은 놈에게서 융숭한 대접 정도는 받아낼 수 있는, 매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만국 통용의 전략. 미래 AI 공무원들에게 써도 먹힐 게 분명했다. 덜 높은 팀장이 노파를 탕비실로 안내하며 내게 눈을 흘겼다.

전동 휠체어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나 또한 이곳에서 점점 아니 철저하게 멀어지고 싶었다.




“전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의 점심 메뉴는 보이콧이었다. 오늘만큼은 꼭 그래야 했다. 팀이 돌아가며 과장에게 점심을 사 먹이는 과장데이, 이때 하는 보이콧이야말로 최상의 만족도를 안겨줬다. 이 선제적 점심 약속 말고도 겨울철에 하는 맨투맨 시위나 여름철 박스 티셔츠 입기 운동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이콧이라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며 H의 비웃음을 사곤 했다. 해골이 수십 개 수놓아진 먹색 후드 스웨트를 입거나, 버건디색의 버켄스탁 아리조나를 신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K가 거들기도 했다. 나는 보이콧의 일차적인 목적은 행위자의 심적 위안이고, 그러니 내가 하는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보이콧이 될 수 있다며 반박했다. K는 마지못해 끄덕였고 H는 끝끝내 콧방귀만 뀌었다.

「어부사시가로 와.」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둘에게 진짜 메뉴를 묻자, 생선구이 전문점으로 오라며 저들끼리 키득거렸다. 고양이 담당인 나를 놀릴 때 쓰는 식당 중 하나였다. 오전의 교전들을 잠시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자학적 위로. 싫지 않았다. 나도 실없이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다 먹고 생선 가시는 네가 포장해 가면 되겠다 라거나 간 김에 생선 수조 위생 점검 좀 해 라며 음식물팀 H와 위생지도팀 K에 응수해 줬겠지만 각각 재무과와 행정과로 옮기는 바람에 그럴 수 없게 된 게 분할 뿐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직원들은 잘 가지 않는 파스타집을 보내와 부리나케 건물을 빠져나왔다.


“구청장과 함께하는 MZ직원 소통 한마당을 대신할 이름 좀 생각해 봐…둘 다!” K가 울상이 되어 애걸복걸했다. 행정과 후생복지팀으로 간 이후로 K는 직원들의 복지가 향상되는 대가로 본인이 갈려 나가고 있음을 늘 한탄했다. 물론 직원들의 복지가 높아졌다는 말에는 나도 H도 수긍하지 않았다. 봉골레 파스타에서 껍데기를 유심히 골라내던 H가 이젠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그릇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당사자가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넣은 거지? 누가 지은 거야?”

그 말에 K는 얼굴이 부지불식간에 5년 정도 늙어서는 답했다. “내가.” 안쓰러웠지만 H의 감상을 부인할 순 없었다. 직원이 사장을 좋아할 리 만무했고, 함께라는 단어에는 경기를 일으킬 뿐이었고, MZ라는 말은 당사자들이 가장 질색팔색하는 말이었고, 소통에서 하고 싶은 말은 제발 내버려 둬였으며, 한마당은 놀라울 정도로 구닥다리여서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생각 머리로 지은 거냐며 연신 투덜거리는 H에게 “곧 지방선거니까.”라고 넌지시 일렀다. 그러자 H는 아 하고 봉골레를 쑤셔 넣었다. 핵심은 늘 맨 앞의 말이었지 함께, MZ, 소통, 심지어는 그들이 좋아하는 한마당도 아니었다. 그 말들은 구청장에 붙은 조사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

“절대 우릴 동원할 생각 마.”라며 포크를 휘두르는 H는 공과 사가 분명하면서도 늘 불분명했다. 동원해야 할 일이 있어 애원할 때마다 칼같이 거절했다가도, 막상 당일이 되면 못 이기는 척 얼굴을 비췄다. 그런 그녀가 재무과 지출팀에는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무능한 직원들의 지출 서류를 검토하는 일에는 사람을 향한 냉소와 동정이 모두 요구됐다.

“내가 재무과 와서 깨달은 건데,” H가 으름장을 놓던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돈을 쓰기만 한다는 거야. 돈을 벌어온 적이 없으니까 저런 기형적인 행사에다 돈을 써대는 거지.” 그러면서 포크로 샐러드의 방울토마토를 꾹 눌러 터뜨렸다. 펑펑. 돈을 쓰기만 하는 존재. 난 K가 건넨 제 몫의 식전 빵을 잡아 뜯으며 그 말을 곱씹어봤다. “집안 축내기만 하는 기고만장 첫째 아니면 우쭈쭈 막내?” 내 말에 외동딸인 H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기업과 이곳의 가장 다른 점이긴 했다. 이곳에선 돈 벌 고민은 할 필요가, 아니 해서는 안 됐다. 이미 있는 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고민이라 하기에도 뭣한 게 그것들은 보통 ‘되도록 빨리’, ‘반드시 티 나는 곳에’, ‘그저 규정에만 맞게’로 귀결됐기에 한낱 피상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돈이란 벌어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존재하니까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왜 존재해야 하느냐 물으면 써야 하니까, 왜 써야 하느냐 물으면 존재하니까. 모두가 이 순환논리 속에서 유영했고, 그러다 보면 중요해야 할 어떤 것들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논리가 어기적어기적 작동되는 것, 그 자체에만 몰두하게 된다.

지독한 순환논리. 그건 이곳에 너무도 깊숙이 뿌리를 내린지라, 돈을 쓸 때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목격되는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 인사 발령 시즌이면 온갖 염원이 팽배했다. 전 다른 부서로 가야 해요, 좀 더 일이 없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곳으로요. 그 이유는 좀 더 일이 없고 싶고 머리가 아프고 싶지 않아서예요! 염원을 묵살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저 이 업무 못 하겠어요. 그것은 왜냐하면 제가 이 업무를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며칠 후 다른 누군가가 불려 가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미안하지만 자네가 이 업무까지 맡아줘야겠어. 왜냐고? 자네라면 맡을 거기 때문이지. 업무가 시작돼도 마찬가지였다. 이봐, 이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해, 효용성이 없다 해도 말이야. 왜냐니? 반드시 해야하는 사업이라서지. 업무를 마쳐도 달라질 건 없었다. 회식 땐 술을 빼지 말고 먹어. 왜냐하면 술을 마시는 게 회식이기 때문이란다, 짠?

왜를 던질 때마다 왜가 되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더 이상 왜를 던지지 않게 된다.

“돈을 쓰기만 하는 존재라니, 그거 모두의 꿈이잖아.” 아까부터 풀이 죽은 얼굴로 티슈를 산산조각 내던 K가 소리쳤다. “근데 어째서 우린 행복하지가 않은 거야?” 그건 이곳이 철저하게 남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야. 모두가 알기에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식사가 계속되다 보면 원하는 사람들끼리의 식사 시간은 마치 점점 줄어드는 식빵 안쪽처럼 여겨지곤 한다. 전자와는 말을 섞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보지만 후자와는 얘깃거릴 하나라도 더 꺼내려고 휴대폰을 보고, 전자와는 혹시 카페까지 이어지나 노심초사하지만 후자와는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벼르고 있었던 카페에 대해 이야기한다. 끝날 시간이 되면 ‘언제 또 같이 먹지’하고 생각한다는 면에선 공통점도 있다. 한쪽은 한숨으로, 한쪽은 아쉬움으로.

“누굴까?” 카페에서 아쉬움을 포장해 돌아가는 길에 K가 물었고, 뜬금없어 쳐다보자 H가 덧붙였다. “셋 중 제일 먼저 배신하는 사람.” 우리 같은 피라미 공무원 셋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그만두게 되어있다. 최근 뉴스의 통계가 그랬고 경험상으로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럼, 정말 누굴까. 울고불고하다 나가떨어질 K? 우리조차 모르게 제 살길 갈고닦고 있을 것만 같은 H? 아니면 이곳의 이해되지 않음에 지쳐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나? 모르겠다.

둘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버티고 있긴 할까. 난 언제부턴가 둘 앞에서는 딱 위로받을 만큼만 그래서 한 번 더 버텨낼 수 있을 만큼만 힘들어했다. 나의 기저에 짙게 깔려 있는 이곳과 이곳 사람들에 대한 음습하면서도 명확한 험담들을, 둘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둘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아끼는 사람에게 섞여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몹쓸 감정들. 그것들에 대한 적절한 은밀은 내가 둘을 위로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만일 셋 모두가 서로를 배신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래서 더 이상 배신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오면, 비로소 ‘나 그때 그랬어.’라고 씁쓸하게 풀어놓을 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까. 이곳을 그만두는 것이 ‘그냥. 그래야만 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선택이 되는 날이?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선택들 중에 있기는 한 걸까. 아니, 요즘 나는 선택이란 걸 하긴 하는 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던 그때의 나는 본능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때 있잖아. 우리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셋 다 버둥거렸을 때,” 그러던 나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에 필사적이었던 두 다리를 내 두 손으로 꽉 붙들어 맸던 거라고. “쟨 울고, 넌 욕하고. 난, 난 어땠더라?”

둘은 뭔가를 떠올리곤 웃었다. 달콤함을 가장한 씁쓸함, 꼭 카카오닙스 같은 미소였다. “제일 심각했지. 오빤 울면서 욕했으니까.” 정말 그랬던 것 같아서 따라 웃었다. 만일 계속 울면서 끊임없이 욕했다면, 그걸 멈추지 않았더라면, 이곳은 나에게서 어디까지 밀려났을까.

“어쩌면 그때 그걸 멈추지 말았어야 했나 봐.”




돌아와선 안 될 곳에 돌아온 듯했다. 모든 걸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모든 것에게 되돌아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반쯤 남아있는 커피가 꼭 여행의 흔적 같았다. 멍하니 거울을 보며 입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건 다 했어? 옆에서 칫솔을 탈탈 털던 꼴뚜기가 물었다. 이 부서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 아니 이젠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한 마리의 꼴뚜기에게서.

항상 그 모양이었다. 개와 고양이는 종만 다를 뿐 업무 절차가 거의 같았는데, 개 담당 꼴뚜기는 그걸 틈만 나면 이용하려 했다.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가 일이 마무리될 때쯤 아 맞다 그거 다 했어?라며 짐짓 갑자기 생각난 척 구걸하는 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한번은 <쾌적한 주택가 조성을 위한 길고양이 중성화 지원 사업 추진계획> 초안을 엿보더니, 들개는 중성화를 하지 않으니 업무에 써먹을 수가 없겠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꼴뚜기도 중성화가 가능할까 궁금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달라는 대로 공유는 해줬다. 속 보이는 놈 때문에 속 좁아 보이기 싫었다. 핏불테리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한 달 전, 직장인 블라인드 게시판에 우리 기관과 관련된 글이 올라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홍보과에서 진상을 파악했을 땐 이미 일종의 밈으로 퍼진 후였는데, 턱시도를 입은 코리안숏헤어 새끼 고양이 사진 아래 ‘▲핏불테리어’라 적혀 있는 공문서 캡처본이었다. 딱 꼴뚜기다운 실수였다.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원초적이고 시시한 밈이었지만 무려 기관장이 최종 결재한 공문서라는 점에서 조롱을 사기엔 충분했고, 어느 종편 뉴스의 막간 코너에서 농락까지 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평소에 싫어했던 종편 기자가 고양이 머리띠를 하고 맹견 울음소리를 내는 꼴이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나는 그의 인스타 팔로워를 자청했다.

꼴뚜기는 물론 결재 라인에 있는 팀장, 과장, 국장까지 모조리 호출당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첫 번째는 설교의 주체가 최종 결재자인 제일 높은 놈이었다는 점, 두 번째는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나까지 불려 갔다는 점이다. 사건 이후 꼴뚜기의 만행이 근절되리라 생각했건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을 개 담당 꼴뚜기는 몸소 실천했다. 그래서 서류들을 우연히라도 보지 못하게 숨기거나 파쇄기로 갈아버려야만 했다.

해당 사건의 주범이 진즉 다 말랐을 칫솔을 줄곧 털며 끈질기게 서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을 때까지 털어 댈 작정이었다. 입을 헹궈냈다. 어제 작성을 마치고 스테이플러로 찍어 숨겨둔 서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요.”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덜 높은 팀장이 불렀다. 내일 할 계약직 채용 면접 일정표 좀 출력해 줘. 지가 출력할 것이지 프린터도 더 가까운 놈이?하고 뽑아다 건넬 일은 아니었다. 팀장이 말하는 계약직 채용 업무는 내가 아니라 아직도 칫솔을 털며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는 저 꼴뚜기의 것이었으니까.

“제가요?”

Z들 흉내를 내며 멀뚱히 서 있자, 팀장은 꼴뚜기에게서 들은 거 아니었냐며 되물었다. 들은 거라곤 칫솔 터는 소리밖에 없다고 말하려는데 꼴뚜기가 허겁지겁 가로막았다. 일본 가족여행이 잡혀서 내일부터 연차라고, 저번에 말했잖아? 안 했다. 했다 치더라도 일본에 한오백년 있을 게 아니니 면접 일정을 조율하면 될 일이었다.

“돌아와서 마무리하시면 되겠네요, 그럼.”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아니 아니라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반쯤 남은 커피 옆으로 서류 뭉치 하나가 구질구질한 쪽지와 함께 슬그머니 넘어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잡혔어. 아까부터 뭐가 자꾸 어쩌다 보니 잡혔단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오사카 왕복 티켓을 예매하고 어쩌다 보니 4박 5일 묵을 료칸을 예약하고 어쩌다 보니 도톤보리 아저씨 앞을 지나는 루트를 짜고 어쩌다 보니 4인 가족이 먹을 정통 오마카세 집을 섭외했다는 건가 지금?

피동형으로 제 염치없는 능동을 희석시키려는 미물적 사고가 가소로웠다. 그런 가소로움에 잠자코 당해줄 수 없어 서류 뭉치를 돌려주려는데, 가소로운 미물의 전화가 울렸다. 고양이처럼 귀를 쫑긋했다. 면접 대상자들에게 이미 일정을 통보한 모양이었다. 채용 면접이면 적어도 일주일 전엔 통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게 의도적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하찮은 의도를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감정이 밀려들었다. 졸지에 대직을 하게 되어서인지 우습게 봤던 미물에게 뒤통수를 맞아서인지 감정의 이유와 종류가 분명치 않아 혼란스러웠다. 자료 구걸이 여의찮으니 업무 자체를 떠넘겨버리겠다는 심산인가? 일본에서 어쩌다 보니 잡혀 꼴뚜기 튀김으로 튀겨져 버렸으면. 쪽지를 잔뜩 구겨버렸다.


덤터기 쓴 업무 서류를 읽느라 해가 다 졌다. 59분부터 옆이 부산스럽더니 초침이 0을 때리자마자 의자 빼는 소리가 났다. 담배 뭐 피우는지 톡으로 보내줘, 면세점 들르게. 꼴뚜기가 약 올리듯 속삭이고는 날렵하게 헤엄쳐 빠져나갔다. 바쁜 거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지, 한 팀인데. 좀 전까지 손톱인지 발톱인지 뭔갈 깎던 팀장도 굳이 거들며 사무실을 나섰다. 어쩔 수 있는 걸 어쩔 수 없게 만든 거잖아요. 저에게만 들릴 인사와 함께 역시나 퇴근해 버린 Z라면 이렇게 따졌으려나.

칼퇴근의 경쾌함을 가득 담은 사내 방송 소리가 퇴근을 닦달했다.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수요일 가정의 날. 닷새 중 하루만큼은 가정에 전념하라는 취지였다. 자녀는커녕 가정도 없고 일만, 그것도 내 일이 아니었던 일만 있는 사람은 뭘 어쩌라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가정의 날인데 가정도 자녀도 없이 국가 번영에 일조하지 못하니 무급천벌을 내리는 거라고 가정당할 뿐이었다. 퇴근 종용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이 텅 비어버렸다.

이곳의 모든 면이 혐오스러웠고, 혐오하다가 객사할 자신까지 있었다. 그럼 꼴뚜기가 전하지 못한 선물이라며 빈소에 담배 한 보루, 아니 어쩌면 한 갑 올리곤 눈물인지 먹물인지를 짜 대겠지. 그 옆에서 팀장은 바짝 깎은 손톱을 내보이며 일은 곧잘 했지만 싹수는 노랬다 인터뷰를 할지도. 여전히 분노한 노파는 향을 내리꽂으며 고양이는 언제 처단할 거냐고 닦달할 것 같고. K는 또 울고, H는 애석해하며 혀를 끌끌 차려나. Z는 안 올 듯.

나로 인해 종족 번식의 기회를 상실한 수많은 고양이가 빈소를 에워싸는 상상을 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분 단위 일정표, 면접 진행자 대본, 면접 대상자 30인 명단, 채점표 30세트, 면접관 명패, 예상 질문지, 면접장 게시대,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를 다과. 거기에 당일 발표를 위한 채용결과보고서까지.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꼴뚜기는 이 모든 걸 단 하나도 해놓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서류들을 내일 허둥대지 않도록 시간대별로 분류해 박스에 담았다. 그렇게 부글부글 끓었으면서도 이런 것까지 계산해 준비하는 내 작태가 한심하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자괴감이 선명해지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빠뜨린 것이 감지됐다. 면접 대상자 명단을 꺼내 들었다. 30인의 성명과 생년월일, 사진을 살펴보며 몇 개의 면접 번호 옆에는 점을 찍었다. 꼭 프린터의 실수처럼 보이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알아볼 그런 가볍고도 무거운 점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선 점을 찍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 ・, ・, ・, ・, ・, ・, ・, ・.

듬성듬성 칸을 넘나들며 찍힌 점들을 가만 내려다봤다. 어쩌면 이것들을 찍기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지도 몰랐다. 점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훑어보고 있는데, 찍어뒀던 점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절전용 소등이었다. 일어나 사무실 문으로 다가갔다. 스위치를 누르려다,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없어야 할 모든 것들이 숨어버린 암묵적 고요. 반히 바라봤다. 이내 고요는 깨져버린다. 어슴푸레, 하지만 아주 명확하게. 불을 켰다. 다시 껐다. 또 켰다. 이번엔 조금 길게 기다린 후 껐다. 그렇게 간극을 조금씩 늘려가며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명암은 모호해져만 갔다. 얄궂은 어떤 것이 그 어떠한 것도 숨겨주질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아도 안 됐다. 그래봤자 눈알에서 5cm 위쯤에 스멀스멀 떠오를 거였다.

얼마 후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얼굴만 아는 당직 근무자가 올라왔다. 나처럼 불을 켰다 껐다 하면서 스위치와 전등을 연신 번갈아 봤다. 그래봤자 뭐가 문제인지 모를 거면서.

“아뇨. 문제없어요.”




이전 부서에서도 해봤던 채용 면접은 덜 높은 것들의 염병 첨병까지 더해져 더 고역이었다. 꼭두새벽 출근해 기껏 꾸려놓은 면접장을 정시 출근한 팀장이 훑어보더니 괜히 켕기는지 블라인드 면접으로 가자고 지껄였다. 공정한 채용 어쩌고를 운운하는 팀장의 입을 불공정하게 몇 대 치고 싶었다. 소위 공정채용을위한블라인드면접장 재설치를 마치자, 이번엔 신고 온 신발이 화근이었다. 오늘은 이리저리 뛰어다닐 일이 많기도 해 겸사겸사 보이콧의 일환으로 노란색 뉴발란스를 신었다. 그에 과장은 명색의 행사인데 행색이 그게 뭐냐며 누더기를 걸친 거렁뱅이 보듯 고갤 저었다. 행사와 행색은 일부러 라임을 맞춘 건지 궁금했다.

“지간신경종이 있어서요. 구두를 못 신어요.”

죄송하지 않을 일에 죄송합니다가 튀어나오곤 했던 버릇을 의식적으로 억눌렀다.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쯤 새로 개발한, 버릇을 덮기 위한 습관이었다. 과장은 지간 뭐?하고 되물었다가 얼마 전 크룩스 사태에서 Z에게 패망한 것이 떠올랐는지 손을 휘휘 젓고 말았다. 이런 순간에 일본 해역을 신나게 헤엄치고 있을 꼴뚜기를 생각하니 뭔가 엄청난 걸 앓을 지경이었다. 전날 준비해 뒀던 면접 대상자 명단을 팀장에게 건네고 면접자 대기실을 향해 달렸다. 노란 뉴발란스를 온몸으로 정당화하려는 듯이.


가슴팍에 숫자를 붙인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면접자 대기실이라면 응당 흘러야 할 고요와 적막, 그리고 긴장감이 정확히 70%만 흘렀다. 대신 30%의 점들이 보였다. 귓불에 점이 있는 시설공단 이사장 친인척과 왼쪽 눈썹 옆에 점이 난 명퇴 국장이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 옆에는 성미가 못되어 미간에 점이 돋은 주민자치 회장이 대화에 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기간제 경력이 팀장보다도 선배인 오서방에, 너무나도 확실한 힘으로 편한 일자리만 쟁취하는 늙은 고소영까지. 그런 낯익은, 아니 익어야 할, 그리고 앞으로도 푹 익을 점들. 그 점들 중 5년 전 비리 사건으로 제명된, 몽고반점이 원화 모양이라는 혐의를 받는 전직 구의원을 1번이라고 칭해 면접장으로 보냈다.

대기 시간 동안 몇몇 점들이 알은체를 해왔다. 난 그래봐야 좋을 것 없다며 눈치를 주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점들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게 중에서 내 첫 사직서를 장식했던 7번 김 전(前) 국장이 능청맞게 악수까지 청하는 통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있는 경멸 없는 경멸을 가득 담았지만, 뭘 단단히도 착각한 김 국장은 고갤 끄덕이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그래, 그래. 그러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눈썹 옆에 난 점이 옮을 것만 같아 몸서리치는데, 마침 6번이 퇴실했다는 알림이 와 김 국장을 서둘러 면접장으로 치워버렸다. 목덜미가 팽팽하게 땅겼다.


번호를 하나씩 늘려가다 보니 해가 어느덧 3층쯤에 걸렸다. 무심하려 했지만 세상이 꿀에 절인 것처럼 노곤해 보였다. 뉴발란스의 원래 색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 또한 흠뻑 절었다. 그리고 멀찍이 앉아 나와 함께 절고 있는 마지막 30번 여인이 눈에 담겼다. 왠지 모르게 여인은 대기실 공기를 대수로이 만들었다. 뭔가에 절고 절여져 위로가 절실한 사람. 꼭 그래 보였다. 얼굴의 자글자글한 잔주름을 세어보면 엄마의 것과 비슷할 여인, 소박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의 여인은 내가 본 바론 단 한 번도 자릴 뜨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렸다. 그게 면접을 향한 마음가짐처럼 느껴져 괜히 씁쓸했다.

여인은 아마 자녀가 있을 것이다. 아들 아니면 딸 하나. 하지만 남편은 없다. 그렇기에 자녀의 모든 것이 되어줬고 자녀 또한 여인의 전부였을 것이다. 남편과 이별할 당시의 자신만큼 장성한 자녀는 바라던 대로 대학교를 졸업했고, 염원하던 대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과 염원을 위해 정작 자신의 노후는 포기했지만, 곧 포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여인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는 말할 것이다. 이곳에 자신의 미래는 없다고, 미래가 없는 곳에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고. 그럼 여인은 음성에 불안이 묻어나지 않도록 애쓰며 답할 것이다. 그래, 너무 버티지 마. 하지만 마음속에 묻은 불안은 어찌하지 못해 이곳까지 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여인의 휴대폰에는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자녀의 끼니를 묻는 곰살맞고 고단한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있을 것이다.

“30번이요.”

여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일어나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여인이 나머지 3%가 되기를, 하지만 무결한 67%를 완성해 주기를, 동시에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랐다. 여인의 얼굴에서도, 손과 다리에서도, 하다못해 옷에서도 점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시야가 지글거렸다. 노을빛을 머금어 세피아 톤으로 흐르던 모노드라마가, 칙칙한 무성영화로 전환됐다. 어딘가에 대기하고 있던 과장과 비서국장이 투입되고, 투입된 자들 사이에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 서 있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들의 표정, 손과 팔의 위치, 허리의 각도, 고개가 움직이는 횟수들이 자막이 되어 떠다녔다. 반토막 난 프레임에 뚝뚝 끊긴 몸짓과 표정이 한껏 과장되어 우스꽝스러웠다. 조악한 필름 속에서도 열연을 마친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로 퇴장하고, 머릿속에선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갔다. 그들의 관계가, 그리고 몰랐던 한 개의 점이.

장르는 평범한 일상, 아니 온상이었다. 뻔한 소재였다. 그럼에도 유일한 관람객인 나는 명치 부근이 꽉 옥죄였다. 혼자 배신당했다. 배신한 사람이 없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더 배반적이었다. 목전의 모든 걸 부정하느라 애를 썼다. 자막은 오역이며 크레딧은 편집자의 실수일 거라고.

비서실 앞을 지나 파한 면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지고 보면 배신당할 자격이 없었다. 부정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따졌다. 너는 관람객이 맞느냐고. 상영 중엔 잠시 숨어 있었던, 하지만 크레딧에 명확하게 이름을 올린 조연출 정도는 되지 않느냐고.

채점을 마친 90장의 채점표를 순서대로 차곡차곡 정리했다. 거의 먹지 않은 다과들은 과자 종류별로 상자에 담았다. 면접중이라고 붙여 놓은 종이를 회의실 문에서 떼어냈고, 면접관 명패들을 포개어 수레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음 부서가 사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들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놨다. 조연출까진 아니고 무대연출쯤은 되겠다는 생각에 비웃음이 삐져나왔다. 불을 껐다. 어젯밤을 닮은 고요를 가만 바라봤다. 고요는 유독 선명했다.


사무실에 먼저 돌아와 있었던 팀장이 수고했다며 명단을 돌려줬다. 반으로, 또 반으로 접혀 있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고요해지자고 마음먹었다. 지금 내게는 그저 그럴 자격밖엔 없다. 일조까진 아니었다, 기껏해야 동조였다 생각하면 명단을 펼쳐보지 못할 것도 없다. 그저 점 하나를 깨닫지 못한 것뿐이었다. 어쩌면 여인에겐 내가 보지 못할 은밀한 곳에 믿는 도끼 모양의 점이 있거나, 김점례처럼 개명 전 이름에 점이 들어가거나, 병점처럼 점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점 하나가 찍혀있을 명단을 잠시 옆에 두고, 새로운 사직서를 열었다. 칸을 얼마만큼 늘려야 할지를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편집 용지를 A1으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글자들이 무언가를 감춰줄 정도로는 줄어들었다. 무언가를 입력하더라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했다. 어떤 때보다도 힘들이지 않고 명확하게, 어떤 때보다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그리고 바탕화면에 저장했다.

누군가는 매일 보게 될 것이었다. 오늘, 내일, 그 내일, 어쩌면 미래에도. 그 누군가에게 고했다.

이젠 좀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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