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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에게

by 지공

2022년 4월 18일 나는 너와 처음 만났다. 하지만 너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초고를 완성하고 수십 번 퇴고하면서도 너에게 단 한 번 말을 걸지 않았다. 오로지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것에만 몰두했고, 그 마침표만을 위해 너를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이 말을 시키고 저 말을 시켰다. 모질었고 무심했다. 어쩌면 글 속에서 네가 무심하다고 말했던 열린 현관문보다도 더 무심했던 게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너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올해 마지막 퇴고를 하며, 나는 너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아버지를 넣은 짐을 메고 너는 무작정 집 밖을 나섰지. 하지만 그런 네가 차디찬 밤바람을 맞으며 어디로 향할지는 도저히 갈피가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괜히 때 이른 점심을 먹었고, 줄담배를 피웠고, 키보드를 바꾸어 켰지만 그래도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깜빡거리는 타이핑바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수백 번이 깜빡거리고 나서야 나는 염치없게도 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정말 너는 말을 하더구나.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가는 길에 무엇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짐을 메고 있는 넌 워낙 말이 없었기에 시시콜콜까지는 아니어도 조심스레 말을 하긴 하더구나. 서운했을 텐데도 말이다. 덕분에 나는 너의 여정을 너와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이 말을 꼭 해야 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아마 운이 좋다면 앞으로도 나는 글을 쓸 테지. 하지만 글 속에서 그 어떤 이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너만큼 아끼는 이는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너는 내가 처음으로 쓴 글이며, 처음으로 말을 건 인물이며,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게 해 준 소년이다.


"그래. 가자."

오늘에서야 정말로 너의 마지막 저 말을 어딘가에 올렸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연재 글에 도저히 "끝"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한 마지막 여정에 "시작"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제석산 어딘가에서 엄청난 짐과 함께 새로 내딛는 너의 발걸음이, 너무 고단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2024년 8월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가는 시간, 너를 닮고 싶은 지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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