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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3. 2018

강천섬 기행

여주 강천면 자전거여행자를 위한 호젓한 야영장

때 : 2018. 9. 1. ~ 9. 2.

곳 : 서울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리 강천섬


자전거 타고 달린 여정


                              제1일


8월 한 달은 날씨가 워낙 더워 자전거여행을 하지 못했다. 달이 9월로 바뀌니 더위가 단단히 한풀 꺾였고 멀리 나가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더구나 자전거 타고 캠핑해 본 지가 석 달이나 지났다. 주저 없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 8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등에 멘 배낭 속엔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 텐트와 침낭, 그리고 매트다. 텐트 치기 전에 미리 까는 자리도 챙겼다. 이런 짐만으로도 배낭은 꽤나 든든히 찼다. 역시 텐트 무게가 제일 나간다.


집을 나서면 안양천이다.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너무나 익숙한 길이다. 어느새 한강합수부에 이르렀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모여 쉬거나 한강 모습을 즐기고 있었지만 잠시도 지체 않고 계속 달렸다. 성산대교, 양화대교 지나니 여의도다.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도 차례로 지났다.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를 지나면 약간의 오르내리막이 이어진다. 그걸 지나 넓은 데로 나왔다. 동작대교와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성수대교와 청담대교, 영동대교를 지나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까지 이르렀다.


역시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출발한 지 2시간도 더 지났을 것이다. 잠실대교와 잠실철교, 그리고 올림픽대교... 암사대교를 지나며 가파른 언덕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제법 길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려야 할 정도는 아니다. 내리막은 또 얼마나 시원스러운가. 고덕천교도 지나니 이젠 강동대교다. 이 다리는 외곽순환고속도로의 일부다. 그리고 얼마 더 가면 서울시와 하남시의 경계가 나타나면서 웬 야구장이 그리도 많은지! 그 야구장들을 지나 좀 더 달리면 미사대교 밑을 지나는데 미사대교는 경춘고속도로의 일부다. 이제 미사리의 기나긴 지루한 도로를 달린다. 변화가 없으니 마냥 멀게만 느껴진다. 저 멀리 우뚝 공항 관제탑 같은 게 보인다. 하남시에서 세운 명물이 아닐까 싶다. 이제 드디어 팔당대교 밑을 지난다. 꽈배기처럼 난 길을 올라 드디어 팔당대교 위를 올라가고 그 다리를 건넌다.  하남시에서 남양주시로 넘어왔다.


집을 나서고 처음으로 자전거를 멈추어야 했다. 팔당역 지나서 자전거길과 자동차길이 만나는 곳에 신호등이 있다. 거기서는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배도 고프고 하여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국수집 뜰에 매두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출발한 지 3시간 40분만이었다. 그렇게나 오래 쉬지 않고 달린 적은 별로 없었다. 슬겅슬겅 달렸으니 한번도 안 쉬고 왔지 세게 밟았더라면 중간에 분명 쉬어야 했을 것이다.


국수에는 삶은 닭고기가 얹어져 있다. 게눈 감추듯 후딱 먹어 치웠다. 커피를 한 잔 뽑아 뒤뜰로 가서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오늘 목표는 강천섬이다. 거기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은 같은 코스로 돌아오는 것이다.


팔당댐이 한쪽 반만 방류를 하고 있다


한 시간을 쉬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어 힘도 나겠다 다시 밟기 시작했다. 봉선터널을 지나니 남한강과 경안천이 만나는 곳이 펼쳐졌다. 능내역 앞은 자전거 타다가 쉬는 사람들로 오늘도 역시 분주했다. 그냥 통과... 점점 양수리가 가까워졌다.


양수리 옛 중앙선 철교가 자전거길로 바뀌었다. 지금은 기차가 왼쪽에 보이는 길로 다닌다.


옛 중앙선 기찻길이었던 곳이 이젠 남한강자전거길이다. 철길은 다 걷혔지만 옛 철교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다. 토요일인데 이 다리 위를 지나는 자전거 행렬이 생각보다 적다. 주말엔 늘 붐볐던 걸로 기억되는데...


양수역 앞을 지났다. 이 역을 지날 때 초행인 사람들은 길을 놓치기 쉽다. 큰길로 가면 안 되고 역 바로 앞으로 올라와야 남한강자전거길을 놓치지 않는다. 양수역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터널들이 많다. 처음 나타나는 용담아트터널이 특히 화려하다. 터널 내부의 조명이 환상적이어서 '아트'란 말이 아깝지 않다. 용담터널을 나오면 부용4, 부용3, 부용2, 부용1 터널이 계속 나타난다.


신원역 직전에선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글쎄 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데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다. 중간에 중앙분리대가 있는 짧은 구간이 있었다. 그런데 무리 중 한 명이 자기들 무리를 추월하겠단 생각에서인지 반대편 길로 달려왔다. 역주행을 한 것이다. 마침 그때 내가 바로 그곳을 지나갈 때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자와 나는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지나가면서 미안하다고 고함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자전거라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 충돌하면 다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자전거 탄 지 십수 년이지만 이렇게 무례하고 거칠게 타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신원역과 국수역 사이에는 도곡터널이 있고 국수역과 아신역 사이에는 원복터널과 기곡아트터널이 있다. 기곡아트터널을 나오면 내리막이다. 갑자기 길이 오밀조밀해지면서 잘 살펴서 남한강자전거도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옥천냉면 뒤로 해서 오빈을 향했다. 오빈교차로 부근에서 다시 한번 길이 어지럽고 이번엔 전에 늘 가던 데로 가지 않고 '여주보'라 적힌 곳으로 갔다. 인증센터를 건너뛰기로 했다. 그러나 양근리사거리에 이르는 것은 매한가지다. 팔당 국수집을 출발한 지 1시간 50분이나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이야...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양평읍내를 두리번거렸다. 깔끔한 외관을 한 커피숍을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갔다. 냉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2/3는 왔겠으나 남은 거리도 만만치 않으니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겠다 싶었다. 휴식은 과연 보약이었다. 다시 출발했다.


양평읍 앞을 흐르는 남한강


양평교 옆으로 난 남한강자전거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경치가 수려해지면서 양평읍내의 떠들썩함과 달리 고요하기 그지없다. 생활체육공원이 꽤나 근사하다. 그리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면 굴릴수록 한적해진다. 자전거길 왼편으로 펜션이 나타나면서 시선은 저절로 그리로 향한다. 양평읍 가까이에 조용하고 깔끔한 펜션이 있다.


남한강이 양평읍 앞까지 이르렀다
강 건너 보이는 것은 연수원이다


갑자기 아주 짧지만 가파른 경사가 나타나며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는 흑천 위로 난 다리다. 흑천은 남한강의 지류로서 양평군의 청운면, 단월면, 용문면을 거쳐서 개군면을 지나 남한강과 합류한다. 다리의 이름은 현덕교다.


남한강의 지류인 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현덕교이다


현덕교를 건너고 얼마 가지 않아서 남한강자전거도로는 갑자기 마을 안으로 방향을 바꾼다. 개군면 앙덕리 마을 안을 지난다. 그리고 제법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한다. 개군산 줄기에 난 언덕길이고 이름은 후미개고개다. 매번 이 길을 오를 때면 힘들었지만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안간힘을 써서 오르곤 했다. 경사도 10%인데 이렇다. 오늘도 내리지 않고 정상에 이르긴 했다. 이 고개는 개군면 앙덕리에서 개군면 구미리로 넘어가면서 만나는 고개다. 내리막 경사가 여간 가파르지 않아서 속도를 줄이려 안간힘을 쓰며 조심해서 내려왔다. 이제 개군면이 가까워졌다.


개군체육공원 부근에선 자전거길이 심하게 휘었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표지판을 잘 보고 가야 길을 놓치지 않는다. 저 멀리 이포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포보는 지나치기만 하지 건너진 않는다. 당남리섬 표지를 지나 꾸준히 달리니 이포보오토캠핑장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캠핑장 안으로 들어간다. 넓은 데크가 하나씩 놓여 있고 차는 데크 옆에 세워두는 식이다. 나는 자전거니 별무상관이다.


햇살이 구름 사이를 뚫고 퍼졌다
이포보오토캠핑장이 내려다보인다


이포보오토캠핑장을 지나면 참으로 길고 지루한 평지가 계속된다. 머리 위론 광주원주(제2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비행기 활주로 같은 구역도 지난다. 약간 내리막이었다가 끝에 가서는 오르막이므로 비행기가 내리고 뜰 순 없다. 아주 작은 비행기라면 모르겠지만... 지루한 저류지 부근 일직선 길도 지나고 다시 길이 아기자기해졌다.


여주보가 아득히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여주보 너머로는 또 여주 시내의 모습도 아스라히 보인다. 마을을 하나 통과했다. 남한강자전거길의 길바닥은 갑자기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여주보 입구에서 길이 한번 크게 휘었다.


멀리 아득히 여주보와 여주 시내 모습이 보인다
여주보에 오르기 시작한다
여주보에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용문산인 듯하다


여주보를 건넜다. 이제 여주 시내가 제법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주보에서 여주 시내까지는 길이 참 아늑하다. 호젓해서 좋다.


여주 시내가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여주 시내까지는 아주 완만해서 잘 느끼기 어려울 정도지만 내리막이기도 했다. 세종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끝 부분 일부는 오르막이긴 하지만... 전에 공사중이라 막혔던 강변 자전거길이 공사가 끝났는지 열려 있어 여주대교 아래에서 꽈배기 모양의 길을 올라서 다리 위로 올라갔다. 상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표지판을 유심히 보고 얼마 뒤 다시 좌회전을 했다. 그래야만 남한강자전거길을 놓치지 않는다.


드디어 금은모래캠핑장 앞에 이르렀다. 이곳은 여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캠핑장 같다. 늘 사람들도 북적이고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다. 바로 강 건너는 신륵사이다. 매점에 들렀다. 배도 출출해지고 해서 컵라면을 샀고 물을 끓여서 먹었다. 어쩌면 이게 저녁식사일 수도 있다. 강천섬의 캠핑장엔 음식점은 물론 매점도 없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배낭 속에 버너와 코펠을 넣어 왔지만 연료가 거의 다 떨어져서 뭘 사간들 조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연료를 보충해왔다면 좋았을 것을...


여주 시내를 벗어나 시내쪽을 바라보다
여주 시내를 관통해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 강천보를 향해 달린다. 강천보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게 신경 쓰였다. 강천보를 건너면 내리막은 하도 경사가 급해 아예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하게 길 바닥에 요철을 심하게 만들어 놓았다. 끌고 걸어가야만 한다. 이제 강천섬이 그리 멀지 않을 터이니 부지런히 밟기 시작했다. 어둠은 깊어져만 갔다.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강천보 관리소
강천보
황혼녘의 남한강


아침 8시 45분에 안양 석수동을 출발했는데 강천섬에 닿았을 때 저녁 7시 반쯤이었다. 무사히 도착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도중에 신원역 부근에서 자전거와 충돌할 뻔한 적이 있었다.


어둠속에서 텐트 칠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잔디밭이 하도 넓어서 칠 곳은 널려 있었다. 텐트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곳곳에 서 있었다. 대체로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운동장처럼 드넓은 잔디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나도 어느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산 지 1년이 되고 보니 텐트를 치는 게 이젠 식은 죽 먹기다. 그동안 참 많이도 써먹었다. 익숙한 솜씨로 폴을 연결하고 골격을 완성했다. 플라이를 덮어 씌웠다.


이날은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스마트폰 문자 중계를 틈틈이 확인했다. 전후반 90분을 비기더니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텐트마다에서 나온 함성이 밤공기를 울려 퍼졌다. 한 골을 넣어서 나온 환호였다. 결국 2:1로 일본을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하늘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강천섬의 밤이 깊어갔다.


                               제2일


날이 밝았다. 전날 어두워서 도착했기에 강천섬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간 넓고 깨끗하지 않다. 텐트를 접고 배낭에 넣은 뒤 강천섬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끝에서 끝까지 다 살펴보기로 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1킬로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길은 두 갈래였다. 가운데 길이 있었고 강쪽으로 난 길이 있었다. 이렇게 넓은 섬이 온통 다 캠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동차의 모습은 어디도 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강천섬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차가 들어올 수 없게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강자전거길은 이 섬 가운데를 지나게 돼 있다. 과연 많은 텐트 옆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 타고 와서 야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간혹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 텐트도 있었다. 강천섬 주변에 주차장은 보이지 않았으니 이 많은 야영객들 중에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은 없었을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의문을 풀 순 없었다. 아마 분명히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차를 강천섬에서 꽤나 먼 곳에 주차해놓고 왔을 것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근처에 굴암리 마을이 있으니 그곳 어딘가에 주차를 했을 순 있겠다. 다만 굴암리는 강천섬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니 꽤 떨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이 자그만 움막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말리려고 널어놓았더니 어느새 방아깨비 한 마리가 와서 앉았다. 가녀리기도 해라.
잔디밭이 넓기도 하다
텐트들은 대부분 나무 아래에 자리잡았다
강천섬에는 산책로가 잘 나 있다
강천섬은 남한강 가운데 생긴 섬이라 양쪽으로 강이 흐른다
강천섬의 한쪽 끝이다. 방향은 서북쪽.
강 건너 마을이 보인다
역시 강천섬의 한쪽 끝이다. 동남쪽.
자전거 타고 와서 야영하는 이들이 참 많이 보인다
강천섬 안내도
앙증맞은 텐트들이 보인다
1~2인용의 작은 텐트
통나무집이 있었다
강천섬 입구에 마른 나무들이 서 있다
강천섬 입구에 '바위늪의 찬가'라는 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강천섬은 무공해 캠핑장이 틀림없다. 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전거만 보일 뿐이다. 섬으로 건너오면 화장실이 있다. 섬 전체에 이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수도가 물론 있으니 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오토캠핑장 같은 데서 흔히 보이는 취사장 같은 시설은 없다. 덜 소비하고 덜 버리고 갈 수 있게 돼 있다. 그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편히 쉬다 갈 따름이다. 이용료도 없으며 관리인도 보이지 아니한다. 섬 어디든 평평하며 언덕이 없는 것도 맘에 든다. 섬 안에는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도 있었다. 귀중한 생태 체험을 할 수 있다. 섬이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개발'한다며 뭔가 들어서지 않았으면...


이제 서울을 향해 돌아간다. 강천섬을 막 나왔을 때인데 길이 참 깨끗하다.


섬을 충분히 돌아봤다 싶었을 때 다리를 건너 강천섬을 나왔다. 섬 입구에 시가 돌에 새겨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달린다. 전날 저녁에 강천섬 부근에 왔을 땐 어두워서 주변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아침에 달리니 여간 길이 깔끔하지 않다. 차나 인적은 거의 볼 수 없다. 도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으므로 차의 통행을 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굴암리쪽으로는 농로를 통해 차가 지날 수 있으려나.


전날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강쪽으로 또다른 자전거길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 길로 가보고 싶었다. 인적이 더욱 드문 강쪽 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보였다. 이렇게 조용한 곳에 포장된 도로를 왜 만들어 두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길은 강천보가 가까워졌을 때야 비로서 끝이 났다. 넓은 길과 만났다.


한여름 무더위에 벼는 벌써 이렇게 훌쩍 컸다
나무 위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강천보를 건너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강천보를 건너 편의점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물을 사 먹고 싶었지만 그냥 돌아나와야 했다. 연양지구공원을 지났다. 남한강 바로 옆에 대단히 넓은 강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차들이 이따금 지나갔다. 자동차가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주 시내에서 가까운 곳이 녹지가 여간 많지 않다. 금은모래캠핑장 앞에 와서야 갑자기 부산해졌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두리번거렸으나 문 연 곳은 없었다. 결국 아침식사는 여주 시내에 가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주 시내에 들어가서도 문 연 식당을 발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은 식당 찾기를 포기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도시락을 사서 데운 뒤 물과 함께 먹었다. 그런 대로 괜찮은 아침식사를 했다.


여주 시내에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세종대교다.


여주 시내를 벗어나 다시 남한강자전거길에 접어들었다. 여주보에 이르러 편의점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강천보에서와는 달리 편의점은 문이 열려 있었다. 물을 한 병 사셔 마셨다. 날은 화창하고 기온은 적당하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차근차근 전진한다면 집에까지 가는 건 문제없어 보인다.


여주 세종대교를 막 지나서다
여주보 편의점(2층)에서 내려다본 한강


역시 저류지 부근이 길고도 지루했다. 하지만 결국 긴 직선 길은 끝이 났고 이포보오토캠핑장에 이르렀다. 아침에 강천섬을 한바퀴 살펴보았듯이 이포보오토캠핑장도 모습이 어떤지 둘러보고 싶었다. 이포보오토캠핑장은 운영 방식이 강천섬과는 도무지 비교되지 않았다. 자동차로 이 캠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고 안내판에 씌어 있었다. 예약하지 않고 그냥 찾아오면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는 것 같았다. 궁금증이 생겼다. 자전거는 와서 텐트를 쳐도 무방할까 하는 의문 말이다. 오토캠핑장 외곽에 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자그만 다리를 하나 만났다. 피넛교라 씌어 있었다. 이름이 독특하다.


다리를 건너니 그곳은 당남리섬이었다. 강천섬이 강에 생긴 섬이듯이 당남리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곳은 '경관농업단지'였다. 야영장은 보이지 않았고 와서 구경하고 쉬다 갈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지도에는 '가족피크닉존'이라 표시되어 있었고... 당남리섬을 나왔다. 이포보가 가까이에 있었다. 이포보를 통과해 양평읍을 향해 꾸준히 달렸다.


역시 최대의 난관은 개군면 구미리에서 앙덕리로 넘어가는 후미개고개였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페달 구르기를 포기했다. 내려서 끌고 갔다. 후미개고개 정상에 음료수 파는 곳이 있었다. 몇 대의 파라솔도 있고... 이미 많은 자전거꾼들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하나 잡았다. 셀카로 사진을 찍으려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찍어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앉아서 쉬는 이들 중엔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단체로 나들이에 나선 70대 노인들도 있었다. 앙덕리쪽에서 꾸준히 자전거가 올라오고 있었는데 타고 오는 사람, 내려서 끌고 오는 사람... 다양했다. 맹렬한 속도로 쏜살같이 내리막을 내려갔다.


광주원주(제2영동)고속도로가 놓여 있고 멀리는 용문산, 오른편 볼록 솟은 산은 추읍산이다
이포보를 지나면서
추읍산과 그 뒤 용문산이 가까이 다가왔다


후미개고개를 넘고 나니 이제 힘든 것은 다 끝났다 싶었고 어느새 양평읍에 들어섰다. 점심을 먹으려고 거리를 살폈다. 양평삼거리에서 군청쪽으로 난 큰 길엔 음식점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양평시장길이 나왔는데 그곳은 온갖 음식점이 즐비했다. 베트남 음식점이 눈길을 끌어 그리 들어갔다. 미리 기계에서 음식을 골라 표를 사는 방식이었다. 아~ 이래서 음식 값이 싸구나 싶었다. 직원은 그저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만 만들어내면 되니까. 쌀국수를 곱빼기로 시키니 양이 충분했다. 든든히 먹었다. 주방 안의 두 젊은 여성은 모두 베트남사람인 것 같았다. 아주 간단한 한국말밖엔 할 줄 모르는 듯했다.


양근리사거리에 이르렀다. 양평은 자전거 타기 천국이라는 사인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가장 극적이었던 건 자전거 타는 사람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마치 진짜 사람처럼 걸려 있었던 것이다. 군립미술관 앞을 지나 남한강자전거길에 들어섰다. 오빈과 아신을 지났다. 아신역 부근에 언덕길이 있었지만 처음에만 약간 힘들었을 뿐 금세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기곡아트터널과 원복터널을 지났다. 국수역과 신원역도 지나고 양수리에 이르렀다.


오른쪽 오토바이는 진짜 사람이지만 왼쪽 자전거 탄 이는 가짜다. 양평읍에 와서
양평군립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아신역에서 국수역 방향으로 가다가 나타나는 기곡아트터널 안은 조명이 화려하다


양수리에 이르러선 옛 중앙선 철도의 다리 앞 쉼터에서 멈추었다. 아주 작은 카페인데 2층집이다. 근처의 화장실이 오히려 더 넓을 정도다. 2층에 올라가니 한 층 차이라고 전망이 훨씬 좋았다. 중앙선 철도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앙증맞은 벤치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서 능내역 방향으로 향했다. 봉안터널도 지나 팔당의 국수집 앞을 통과해 팔당대교를 건너 한강 남쪽으로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팔당대교를 올려다 보니 방금 내가 지나온 그곳을 많은 자전거가 지나고 있었다.


팔당대교
미사리다. 건너편은 덕소


한강자전거길이 미사리를 지날 때 상행과 하행의 길이 다르다. 서울쪽 길은 한강쪽 낮은 지대에 있고 팔당쪽 길은 높은 곳에 있다. 서울로 향하는 중이니 한강쪽 낮은 길을 달렸다. 건너편 덕소의 아파트촌이 한강과 잘 어울려 있었다. 강물 위로 아파트의 그림자가 비쳤다. 하늘을 보니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사대교와 강동대교를 차례로 지났다. 암사동 고개를 넘는 중에 전날에 이어 또한번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고개를 서서히 오르고 있는데 자전거가 내 옆을 거의 스치듯 쌩하니 지나는 게 아닌가. 그는 일행들과 같이 가는 중 같았다. 제 자전거실력을 뽐내려는 듯 아슬아슬하게 맹렬한 속도로 지나쳤다. 위협운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외마디 비명이 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자긴 아무렇지도 않은 줄 모르나 당하는 사람에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너 없는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되면 거의 현기증이 난다. 그런 위험한 순간을 보내고 꾸역꾸역 암사동 고개를 올랐다. 내리막은 엄청난 속도로 내려갔다.


워커힐이 건너다보이는 광진교 못 미쳐서에서 쉬었다. 물을 사먹으면서... 이제 3/4은 온 것 같다. 서울 시내 구간만 남았다. 올림픽대교도 지나고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차례로 지났다. 반포에서 다시 쉬었는데 그곳은 일요일을 즐기려 한강에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편의점 앞은 쓰레기더미였다. 편의점 안은 물건 값을 치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동작대교 남단 노을카페 아래서 주변 경관을 감상했다. 여의도쪽으로 63빌딩이 보이는가 하면 남산타워가 조금 보였다. 언제 생겼는지 이촌동의 높은 건물이 남산을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여의도에 들어서니 또 다시 분주해졌다. 제일 어지러웠던 곳은 마포대교 부근이었다. 시 당국에서 쳤는지 똑같은 텐트가 수도 없이 쳐져 있었다. 일부는 막 해체하는 중이기도 했다.


마지막 휴식은 성산대교 못 미쳐서에서 취했다. 그곳에서도 오늘 어딘가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쉬고 있었다. 부부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다. 드디어 한강합수부에 이르렀다. 전날은 안양천의 동쪽 길을 탔는데 이번엔 서쪽 길을 이용했다. 서쪽이 좀 더 길이 깔끔하고 덜 부산하다. 8시가 가까워 집에 도착했다. 거의 12시간 만이다.


지도로 검색해 보니 편도 127km였다. 왕복을 했으니 250km 넘는 거리를 이틀 동안 자전거로 달렸다. 여름내 운동 부족으로 흐늘어진 내 몸뚱아리가 제법 단련이 됐다. 풀렸던 근육이 꽤 긴장이 됐다. 이따금 장거리여행에 몸을 맡기는 것은 생활에 긴장을 불어넣어주니 해볼만하다. 비록 몸이 좀 고되긴 했으나 즐거운 1박2일 여행이었다. 여주시 강천면의 강천섬은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 특히 자전거여행자들에게. 나 자신 또 갈 것은 물론이다. 두어 번 통과한 적은 있었어도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긴 처음이었다. 아마 이런 것이 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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