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n 25. 2019

백령도가 있다

세 남자의 자전거 기행

백령도는 한국에서 열네번째로 큰 섬이다. 울릉도의 2/3 정도 된다.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하는데 백령도 섬 자체가 곧 백령면이다. 서해 최북단에 있는 백령도는 북쪽으로 용연반도를 마주보고 있다. 용연반도의 서쪽 끝은 장산곶이고 더 위쪽으로 몽금포가 있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로 시작되는 민요 '몽금포타령'은 백령도 주민들에게도 낯익은 가락일 것이다. 백령도의 어르신들은 말씨가 황해도 억양인데 친인척들이 용연반도에 많이 살고 있을 것이다. 이 백령도에 초로의 세 남자가 자전거를 들고 백령도를 찾아 2박 3일 야영하면서 섬을 일주하고 돌아왔다. 이 글은 그 여행기다.


세 사람은 안동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백령도를 자전거 타고 돌기로 하고 일찌감치 배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해두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2019년 6월 21일(금) 아침 6시 15분에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스타렉스 차 안에 석 대의 자전거를 싣고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니 쉽게 연안여객터미널에 이를 수 있었다. 


차의 공간이 넉넉해 자전거 석 대를 싣고도 널널했다.

연안여객터미널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백령도뿐 아니라 서해안 여러 섬들로 떠나는 배들을 이용하려면 사람들이 다 이 이곳에 모이니 북적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전거를 갖고 온 사람은 우리 세 사람뿐이었다. 조금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를 안 실어 주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슬며시 들었던 것이다. 어떤 여인이 다가와 자전거를 보더니 자기도 백령도 가는 길인데 자전거를 가지고 가도 되느냐 물었을 때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의문은 해소됐다. '안개대기'라는 사인이 꺼지면서 출발 예정 시간인 7시 50분보다 10여 분 늦게 개찰이 시작되고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백령도행 하모니플라워호는 카페리여서 화물칸이 여간 넓지 않았고 갖고 온 끈으로 석 대의 자전거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좌석으로 올라갔다. 


하모니플라워호는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었다
화물칸에 자전거를 고정시켜 세웠다


4시간가량 걸려 배는 백령도 용기포항에 닿았다. 용기포항은 백령도와 인천을 이어 주는 항구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단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암벽이었다. 범상치 않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섬 반대편 끝에 명승인 두무진이 있는데 그 예고편을 보는 듯했다. 한꺼번에 배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용기포항은 여간 북적이지 않았다. 여행사 버스며 렌트카 등이 타고 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싣고 온 대형 모터사이클도 여러 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 사람은 단층이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시내 진촌리로 향했다.



백령도에 막 도착, 자전거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었다


이틀 동안 섬을 일주하기로 하고 나온 만큼 항구에서 가까운 끝섬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여행 일정상 맞았지만 포기했다. 날씨가 잔뜩 흐려서 전망대에 올라가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어서다. 일행 중 백령도에 와본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점심 때도 됐고 해서 면소재지인 진촌리로 들어가서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진촌리로 들어가는데 전에 못 보던 게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파리바게뜨니 카페베네는 4년 전 왔을 때 없었는데 새로 생긴 것 같았다. 백령우체국도 지나고 드디어 가장 번화한 곳까지 왔다. 그리고 좌우를 살피며 식당을 찾았다.  4년 전 식사를 했던 언덕 끝무렵 식당을 한번 가보기 위해 경사진 언덕을 올라 그 집 앞까지 이르렀으나 그 사이에 문을 닫은 듯 잡초만 무성했다. 할 수 없이 되내려와서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리막을 신나게 달려 내려왔는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 친구의 자전거가 펑크가 났던 것이다. 여행 시작부터 이 무슨 일이람! 긴급 사태가 발생하매 행인에게 자전거가게 있는지를 물었으나 진촌리에는 자전거가게가 없다 했다. 일단 밥을 먹으면서 대책을 생각해보기로 하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이 대단히 넓어서 석 대의 자전거를 놓아 두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갈치조림정식을 주문했다. 마음은 급한데 음식은 여간 늦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은 큰 냄비에 끓여진 갈치조림이 나왔고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다. 그리고 마당으로 가서 자전거 수리에 들어갔다. 자전거가게가 없다니 직접 수리하는 수밖에!


우선 어디가 펑크가 났는지 알아야 했다. 뒷바퀴의 튜브를 꺼내 물이 가득 담긴 세숫대야에 튜브를 넣었다. 그리고 펌프로 바람을 넣었다. 휴대용펌프라 바람이 빨리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어디가 터졌는지 알 수 있었다. 공기 주입구 바로 옆이 터져 있었다. 난감했다. 그곳은 때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나. 때워보는 수밖에. 준비성이 강한 친구가 가방 속에 튜브 고무 조각을 가져왔고 그걸 가위로 오린 다음 접착제로 붙였다. 혹시 약할까봐 이중으로 붙였다. 그리고 튜브를 다시 타이어 속에 넣고 바람을 주입했다. 휴대용 펌프라 바람이 금세 들어가진 않았지만 점차 부풀어 올라 제법 탱탱하게 바람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상했다. 펌프질을 하면 할수록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저 그 정도였지 바람이 더 들어가지 않았다. 꺼내서 살펴보니 접착제를 붙였다고 붙였지만 단단히 붙질 않았다. 애초에 땜질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곳이었던 것이다.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갖고 온 예비튜브가 27.5인치용인데 그걸 펑크난 26인치 바퀴에 넣어보기로 한 것이다. 27.5인치 튜브를 넣은 뒤 바람을 주입했다. 신통하게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바람이 제법 통통하게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위기를 수습하는구나 하고 정비 도구를 정리한 다음 식당을 나왔다. 제발 이틀만 잘 버텨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첫 목표지는 근처 심청각이었다.


주입구 부근이 터졌다
터진 부분에 패치를 대고 접착제로 붙였다
수리에 여념이 없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마을에서 심청각 가는 길을 찾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마을에 길이 이리 저리 많이 나 있었는데 어느 길로 가야 심청각을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좀 헤매다가 다행히 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는 경사가 가팔라 끌고 올라갔다. 심청각은 효녀 심청을 기려서 세운 곳인데 입장료 천 원을 받는다. 높은 지대에 제법 넓은 평지가 있고 그곳에 2층으로 된 한옥이 우뚝 서 있다. 


소설 심청전에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딸 심청은 공양미 삼백석을 받는 대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돼 있다. 심청전이 실화라면 인당수는 백령도와 맞은편 북한 장산곶 사이의 바다 어디쯤일 것이다. 심청각은 바로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실향민들이 건너편 아득히 보이는 고향을 그리기에도 적당한 장소 같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갔을 때 짙은 안개로 바다도 장산곶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안고 심청각을 내려왔다.


심청각은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뵌다
바로 앞이 바다인데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리막을 신나게 달려내려오는데 또 외마디소리가 들렸다. 잘 고친 줄 알았던 자전거 뒷바퀴가 또다시 주저앉았던 것이다. 26인치 바퀴에 27.5인치용 튜브를 넣었으니 그게 잘 달려진다면 잘 달려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이제는 진짜 심각해졌다. 세 사람은 동시에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난감하단 건 바로 이런 경우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지나갔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한 사람은 택시를 불러서 타고 다니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터덜터덜 내리막길을 내려서 오다가 한 가옥 앞을 지나는데 한 노인이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혹시 자전거 고치는 데가 없느냐 물으니 있다는 게 아닌가! 북포리에 가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고치는 곳이 있다고 했다. 여간 반가운 정보가 아니었다. 갑자기 세 사람에게 생기가 돌았다. 그리로 가기로 했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고장난 자전거 탄 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내려갔다. 큰길 못 미쳐 골목에서 운전기사가 없는 택시가 한 대 서 있었다. 차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택시기사는 바로 옆 어느 집에서 나왔다. 그렇게 해서 북포리로 향했다. 5킬로미터 떨어졌다는 북포리는 은근히 멀었다. 도중에 심한 경사로는 없었으나 한 군데 언덕이 있었다. 미리 북포리에 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북포리 어디로 오라는 얘기였다. 문제의 오토바이와 자전거 수리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수리점은 수리만 하지 재료는 갖고 있지 않았는데 북포리 어느 잡화점에서 26인치를 팔아서 그걸 그 사이에 사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26인치 튜브를 뒷바퀴에 넣고 수리를 마쳤다. 시계를 보니 5시가 가까웠다. 12시 반에 용기포항에 도착해서 오후 내내 자전거와 씨름한 셈이었지만 큰 문제를 해결했으니 날아갈듯 모두들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원래 백령도 북쪽 해변에 있는 사자바위 앞을 지날 생각이었지만 섬 가운데 있는 북포리로 왔으니 이번 여행에서 백령도 북쪽 해변길은 포기하게 됐다. 대신 계획에 없던 북포리는 구경한 셈이고. 


북포리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서 극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5시가 가까웠다. 그러나 하지 전날이라 1년 중 해가 가장 길 때여서 아직 활동할 시간은 충분히 남았다. 원래는 두무진을 보고 나서 연화리 천안함위령탑 부근에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는데 그건 접어야 했다. 두무진 부근 어디서 야영할 데를 찾기로 하고 두무진으로 향했다.


북포리에서 두무진까지 달리는 동안 차들은 드문드문 지나갈 뿐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굴려 두무진에 차츰 접근했다. 고개 하나가 있었다. 제법 가팔랐다. 물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했다. 백령도기상대 올라가는 곳이 삼거리면서 언덕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멈추어 잠시 쉬었다. 4년 전엔 기상대까지 올라갔으나 이번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경사가 보통 가팔라야 말이지. 그리고 올라가본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일 건 뻔했다.


내리막을 신나게 달려내려갔다. 서서히 두무진이 가까이 다가왔다. 사거리를 지났다. 그곳을 지날 때 오른편 넓은 빈땅에 팔각정이 있음을 발견하고 일제히 '저기 가보자' 하며 먼저 그곳으로 가보았다. 아마 잡초가 우거진 그 넓은 빈땅은 공원으로 예정된 곳이 아닌가 싶었다.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미리 팔각정만 세워져 있었다. 오늘 밤은 그곳에서 야영하기로 하고 다시 두무진 포구로 향했다. 포구에는 횟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두무진으로 가는 길이 잘 정비돼 있었다. 자전거를 더 가지고 갈 수 없는 위치에 석 대를 묶어두고 걸어서 걷기 시작했다. 5분도 못 돼 두무진에 이르렀다.


두무진은 백령도 서쪽 끝에 있다. 바닷가에 기암괴석이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서 있는데 표면에는 단층이 켜켜이 쌓여 있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연구 대상이겠다 싶었다.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입체감이 대단하다. 어찌 이렇게 오묘한 형상일 수 있을까 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까마득히 아래에 사람들이 보였다. 낚시꾼들이 바닷물 가까이에 내려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순찰 중인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두무진의 전망대
켜켜이 쌓인 단층이 기나긴 세월의 자취를 증명한다
저 건너편은 갈 수 없는 곳이다
바위 모양이 마치 장군이 모자를 쓴 것 같다 해서 장군바위다
낚시꾼들은 저 계단을 따라 내려가 낚시를 한다
물이 시퍼렇다 못해 검기까지 하다


두무진을 나왔다. 자전거는 그 자리에 잘 있었다. 저녁시간도 되었고 바로 앞의 횟집 거리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20호 가까운 횟집이 연이어 서 있었다. 가게 이름만 달랐을 뿐 같은 크기의 횟집들이었다. 참 신기했던 것은 여느 포구 같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손님들 끌어들이기 경쟁이 치열하지만 아무도 내다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집은 영업 자체를 안 하는 곳도 있는 것 같았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 횟집 선택을 맡기고 그가 선택한 집으로 들어갔다.


다양하게 여러가지를 먹어볼 수 있는 것으로 주문했고 잠시 후 음식이 나왔는데 살아 있는 성게가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젓가락과 숟가락 외에 스푼이 하나씩 나왔을 때 이 스푼은 어디 쓰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그 스푼으로 성게알을 떠먹으라고 내놓았던 것이다. 과연 성게알은 싱싱하고 맛있었다. 해삼은 뽀득뽀득 씹히는 맛이 있었다. 주메뉴인 회는 양이 여간 많지 않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주인 외에 종업원이 한 사람 있었는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는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술이 더 필요하면 병을 들어보이는 식으로. 생긴 모습은 우리와 똑같은데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것이 신기했다. 


두무진포구의 횟집에서 아주 그득하게 먹고 나오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튿날 세 끼는 다 가지고 온 재료로 밥을 해먹기로 했기에 물이 필요해서 가게를 찾았다. 용케 한 군데 가게를 발견했는데 그곳은 바로 4년 전에 들렀던 곳이었다. 물을 세 병 사서 넣고 아까 두무진 들어올 때 봐두었던 팔각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쉽게 텐트 두 동이 완성됐다. 팔각정 속이니 이보다 더 텐트 치기 좋은 데가 없다. 바닥은 평평하고 위는 하늘을 막고 있어 비 맞을 걱정이 없다. 자전거 고치느라 고군분투하고 혹시 여행이 엉망이 될까봐 전전긍긍한 오후였다. 그러나 이제 위기를 깨끗이 극복했고 좋은 데다 잠자리를 잡았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더구나 예보를 보니 다음날은 날씨가 맑다 하니 개운한 기분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지옥과 천당을 경험한 하루였다.


첫날밤 야영


아침 해가 밝았다. 하지 날이니 얼마나 해가 일찍 뜨겠는가. 전날과는 판이하게 날씨는 쾌청하기 이를데 없었다.  전날 오후 심청각에서도 두무진에서도 안개 때문에 도무지 경치를 즐길 수 없었는데 오늘은 전혀 딴판이다.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지붕 아래에 텐트를 졌으므로 이슬이 텐트를 적시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슬이 텐트의 플라이를 촉촉히 적셨고 아침에 플라이를 말려야만 했다. 아침 식사는 친구가 준비해온 찰밥을 주식으로 하고 버너를 켜서 참치캔을 넣고 김치를 섞어서 찌개를 끓였다. 


멀리 보이는 곳이 두문진포구 마을이다


야영한 자리를 깨끗이 정돈하고 짐을 챙겨서 이틀째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 목표지를 천안함46용사위령탑으로 정했다. 위령탑은 백령도 서쪽 끝 해변에 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언덕을 올랐고 내리막은 쏜살같이 내려갈 수 있었다. 위령탑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위령탑으로 향했다. 4년만에 다시 찾는다. 


가파른 언덕이지만 길지 않아서 이내 위령탑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저절로 머리를 숙이고 묵념했다. 대부분이 20대 전반이었을 젊은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상념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있은 후 9년이나 지났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무렵 해군 함정은 어뢰를 맞고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구조 과정에서 또 목숨을 잃은 이가 생겼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위령탑 내려오는 길 산비탈에 핀 금계국이 여간 샛노랗지 않았다. 


금계국이 비탈을 뒤덮었다
천안함46용사위령탑
백령도 서쪽 바다다. 천안함은 이곳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남쪽 방향이다
멀리 보이는 곳이 두무진 부근이다


연화리에서 가을리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었다. 중화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중화동포구에 이르렀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중화동교회는 4년 전 왔을 때 들르지 않았던 곳이다. 그땐 그런 데가 있는 줄도 몰랐다. 중화동교회는 게단을 올라가니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령기독교역사관은 백령도에 기독교가 전래된 내력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최초는 1816년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해군 범선이 백령도에 와 섬 사람들에게 한문으로 된 성경을 나누어주고 갔다는 것이다. 16년 뒤인 1832년에 다시 영국 범선이 이곳에 와 역시 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1865년에는 미국 배인 제너럴 셔먼호가 백령도에 왔고 이 배를 타고 온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는 백령도를 나와 평양에 갔다가 순교했다. 1898년에는 백령도에 주민들이 교회를 세웠으니 그게 바로 중화동교회란다. 중화동교회가 세워진 지 벌써 121년이나 지났다. 이렇듯 백령도는 기독교 전래의 역사가 깊어서 섬 주민들의 복음화 정도가 매우 높다고 들었다. 


역사 깊은 중화동교회
2001년에 세워진 백령기독교역사관은 백령도에 기독교가 들어온 역사를 소상히 보여준다
백령도는 북한과 아주 가까이 있다
이 무궁화나무는 최근 죽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나무였는데 그만...


중화동을 나와 이제 남포리 장촌마을쪽으로 향한다. 백령남로는 포장이 최근에 됐는지 길이 여간 말끔하지 않았다.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이면서 포구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가보자고 했다. 내리막을 달려서 내려갔다. 장촌포구였다. 때마침 작은 어선이 한 척 도착했다. 어구에서 뭔가를 내리는데 들여다보니 고기가 몇 마리 들어 있었다. 횟감으로는 그저그만이다. 그 동네에 사는 모양인 부인이 달려나와 고기가 담긴 양동이를 받아서 갔다. 아직 점심 때가 좀 이르긴 하지만 이 고기를 요리해 달라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이보다 싱싱한 회가 어디 있으랴. 바다에서 막 잡아온 고기니 말이다.


장촌마을을 나와 콩돌해변 방향으로 달리는데 가파른 언덕이 있었다. 그리고 시원스런 바다 정경이 펼쳐졌는데 저 멀리 섬이 보였다. 대청도와 소청도였다. 이들은 백령도와 함께 대청군도를 이룬다. 섬의 크기는 백령도가 단연 제일 크다. 서해5도 중 셋이 대청군도다. 나머지 둘은 멀리 동쪽에 있는 연평도와 우도이고.


멀리 보이는 섬은 대청도이다
백령도 남쪽
대청도가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콩돌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길이 참 시원하게 잘 닦였다. 콩돌해변으로 향하는 콩돌로이다.


백령도 남쪽의 콩돌로는 길이 참 시원하게 잘 닦여 있지만 오가는 차나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저 멀리 콩돌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이 있어 쏜살같이 내려갔다. 내려간 후로는 길이 좁아졌다. 그저 농로 같은 길이었다. 그리고 콩돌해변에 이르렀다.


콩돌해변 입구엔 관광버스가 서 있을 정도로 찾는 관광객이 북적였다. 해변에 모래는 없고 오로지 자갈인데 그 크기가 아주 작아서 콩돌이라 하는 모양이다. 해변이 길기는 꽤 길어도 폭은 좁았고 게다가 바닷물은 경사가 급해서 꽤 위험해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유람객 둘이 바다에 들어가 장난을 치니 위험하므로 조심하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근무자가 없는 줄 알았더니 해변을 지켜보는 관리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콩돌해변은 그저 경치를 즐기러 오는 데지 해수욕하기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콩돌해변의 식당은 붐볐다. 가게가 하나뿐이니 독점이다. 그곳에서 물을 몇 병 사서 넣고 해변을 떠났다. 


콩돌해변의 돌은 잘다
콩돌해변 남쪽 방향


언덕을 치고 올라가니 '사진 찍기 좋은 곳'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고 그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서 전망대를 향했다. 4년 전 와서 경치를 보며 감탄했던 곳이다. 이번에 가보니 역시 전망이 탁월했다. 멀리 사곶해변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드넓은 담수호가 펼쳐져 있었다. 반대편은 망망대해... 경치를 감상한 뒤 점심을 먹을 자리를 물색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꺼냈다. 물만 끓여서 용기에 붓고 10분 가량 기다리면 저절로 비빔밥이 된다. 참 편리한데 문제는 파는 가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만 살 수 있다.


드넓은 담수호. 주변엔 대단히 넓은 농토가 있다.
백령종합운동장과 체육관이 한데 모여 있다
정면으로 아스라히 사곶해변이 보인다. 천연비행장이다.
멀리 소청도와 대청도가 보인다


전망대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큰길인 콩돌로로 나왔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순식간에 내려와 평지에 이르렀다. 평지는 거의 없이 계속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던 오전이었는데 이제 언덕은 보이지 않는다. 우선 담수호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완벽한 평지였다. 백령종합운동장을 오른쪽에 두고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4년 전 왔을 땐 새떼가 담수호 위를 떼 지어 날아다녀 장관이었는데 6월에 오니 새는 한 마리도 볼 수 없다. 


담수호 한쪽 옆에 세워진 비석에서 사진을 찍다. 자전거 안장 위에 폰을 올려 놓고 타이머 기능을 이용해서.


전에 와본 사람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두 사람이 뒤따른다. 앞장선 사람이 폰을 꺼내 뒤따라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으려 동영상 촬영을 시도했다. 한 손에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화면을 잘 조절해서 세 사람이 모두 나오게 하자니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세 사람이 다 나올 수 있게 동영상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뒤에 오는 사람도 사진 찍는 줄을 알고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귀한 영상이다.


'서해최북단백령도'라 새겨진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되돌아서 사곶해변을 향했다. 사곶해변은 세계에서 둘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이란다. 해변의 모래가 딱딱해서 비행기가 내릴 수 있을 정도다. 과연 관광버스 한 대가 해변의 바닷물 옆으로 바짝 붙어 질주하고 있었다. 해변 모래 위를 관광버스 타고 달리는 게 관광코스가 돼 있었다. 세 사람도 자전거를 타고 드넓은 사곶해변을 휘젓고 다녔다. 자유를 만끽했다. 모래 바닥에는 조개며 죽은 불가사리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곶해변을 나왔다. 마을에 이르러 가게를 찾았다. 모두들 물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게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용기포신항으로 향했다. 그 안에 매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매점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매점 직원은 이미 퇴근했고 진촌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터미널은 하루 몇 차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이제 터미널을 이용할 사람이 없으니 직원이 퇴근한 건 당연했다. 전날 낮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렇게 북적이던 터미널은 쥐 죽은 듯 고요할 따름이었다. 진촌리로 향했다. 


진촌리 들어가는 입구에 파리바게뜨와 카페베네가 한 건물 안에 있었다. 바깥은 무더운데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에 살 것 같다. 냉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2층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드넓은 빈 터에 웬 갈매기들이 그리 많은지! 갈매기들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아마 한 시간 이상 커피숍에서 쉬었을 것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싶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야 할 곳이 한 군데 남아 있다. 전날 도착하자마자 가려고 했던 끝섬전망대다. 날씨가 쾌청하기 그지없으니 그곳에 오르면 전망이 좋을 게 분명하다. 끝섬전망대로 향했다.


끝섬전망대에 이르자면 평탄한 길을 가다가 서서히 높은 곳을 향해 오르게 된다. 그러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진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오르기 시작했다. 좀체 정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결국은 드넓은 주차장 공간에 이르렀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들어갔다. 사방이 탁 트였으니 전망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가슴이 탁 트인다. 황해도 용연반도가 바다 건너 길게 뻗어 있고 바다 위에 자그만 섬이 하나 있으니 월내도다. 전날 심청각에서 안개로 북녘 땅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제 원 없이 황해도 땅을 본다. 꽤 높은 고층건물도 희미하게 보이는데 시골 해안에 웬 고층 건물인지 알 수 없다. 


용연반도는 그렇고 가까이 백령도의 이곳저곳은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용기포신항과 사곶해변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고 하늬해변도 마찬가지다. 반대편 끝인 두무진쪽만이 산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백령도에 오면 용기원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끝섬전망대는 꼭 와볼 일이다. 백령도 동쪽 끝에 용기원산 끝섬전망대가 있다.


1960년대 사곶해변에 내린 한국 공군기
백령도 북쪽의 하늬해변은 북녘 땅을 마주보고 있으니 철책 같은 시설이 쳐져 있어 자유롭게 관광할 곳은 아니다
백령도 남쪽에 있는 대청도가 보인다
용기포항과 그 뒤로 사곶해변이 보인다
사곶해변이 좀 더 가까이 보인다. 그 뒤로는 담수호도 보이고...
북녘 땅인 황해도 용연반도다. 왼쪽 끝이 장산곶


끝섬전망대가 있는 용기원산을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경사가 워낙 가팔랐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평지에 이르렀고 다시 진촌리로 향했다. 진촌리로 간 다음 저녁 먹을 만한 식당이 있으면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물만 사 가서 야영 예정지인 사곶해변으로 가서 밥을 해서 먹기로 했다. 진촌리에 들어가 일단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치킨과 생맥주를 주문했다. 생맥주가 어찌나 시원하던지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은근히 주기가 올랐다. 술기운이 몸에 퍼지는 걸 느꼈다. 불콰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마트에 들러 생수 큰 병을 하나 사서 근처 사곶해변으로 이동했다.


사곶해변엔 텐트 칠 만한 곳이 많았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치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바다가 보이지 않긴 해도 역시 솔밭이 좋았다.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사가지고 온 불고기덮밥이 재료다. 코펠에 물을 끓인 뒤 햇반과 양념을 넣어서 계속 끓여야 하는데 코펠이 작아서 한 개씩 차례로 끓여야만 했다. 하나를 셋이서 나눠 먹은 뒤 그동안 두 번째 그릇을 끓이고, 두 번째 그릇이 다 익으면 세 번째 그릇을 올려 놓고... 이렇게 해서 백령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첫날은 두 끼를 사 먹었지만 둘쨋날은 세 끼 모두 해서 먹었다. 다 예정했던 대로였다. 


사곶해변에서 다시금 절감한 게 있다.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이 공기를 싸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헛된 꿈일 뿐이다. 확실히 백령도는 공기가 맑다. 육지와는 판이하다.


솔밭 가운데서 야영을 했다


5시쯤 깼다. 이미 날은 밝았다. 해변으로 나가 보았다. 해가 뜨려 하고 있었다. 다만 바다 위에서 떠오르지는 않는다. 산이 하나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텐트를 걷고 주변을 정리하고서 해변으로 나가 보니 이미 벌겋게 해가 구름 사이로 떠올랐다. 


아침 7시 배라 어서 터미널로 나가봐야겠기에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그래도 터미널 갈 땐 모래밭으로 달리기로 했다. 전날 오후에 이어 마지막날 아침에 다시 한번 사곶해변을 느껴보았다.


떠오른 해가 벌겋게 하늘을 물들였다
사곶해변의 모래는 멀리서 봐도 단단해 뵌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 25분, 7시 배를 타기 위해 우선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표를 받았다. 자전거를 싣는 데는 인천에서 올 때와 달리 별도로 운송요금을 한 대당 만원씩 받았다. 인천에서 올 때는 카페리였지만 백령도에서 인천 가는 배는 승객만 실어나르는 배여서 짐칸이 아주 협소했다. 1층은 거의 다 해병대 군인들이었고 2층이 일반 승객이었다. 좌석 사이가 아주 널찍해서 여유가 있었다.


배가 출항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창으로 멀리 보이는 백령도


배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대청도에 들렀다. 이번에도 대청도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대청도 해안에 산책로가 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는 한번 가 봐야지...


백령도 해안에 산책로가 나 있는 게 보인다


대청도를 들렀다가 소청도까지 들르고 그 후로 줄곧 바다를 헤쳐 인천으로 향했다. 도중에 섬은 보이지 않았으나 고기잡이를 위한 어구는 도처에 쳐져 있었다. 때로는 어구 바로 옆을 지날 때도 있었다. 어구를 피해서 항해하고 있었을테니 바다가 넓은 것 같아도 실은 매우 비좁은 길을 달리고 있음을 알겠다. 


한참을 달린 끝에 드디어 섬이 보였다. 덕적도 그리고 영흥도가 나타났다. 드디어 영종도도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송도신도시의 고층빌딩 숲이 나타났다. 이윽고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닿았는데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렸다. 기나긴 항해였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의 여정이 마무리지어졌다. 여행 초반엔 자전거 고장으로 시름이 여간 아니었고 역경에서 헤어나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암담함 속에 한 줄기 빛이 보였고 결국 시련을 깔끔히 극복했다. 그리고 나머지 여행은 온통 즐거움이었다. 이튿날은 하루 종일 날씨가 쾌청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사진도 원 없이 찍었고 끝섬전망대에 올라서는 전망도 흠뻑 즐겼다. 장산곶을 육로로 가볼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백령도의 모습은 어떨까 대단히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강화도 석모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