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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9. 2019

우리는 한국어에 관심이 있나

                               대한민국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헌법의 전문이다.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한 문장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헌법 전문은 꽤 긴 문장인 편이다. 문장이 길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길 필요가 있고 길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길어도 된다. 그러나 이 기나긴 헌법 전문은 반듯한 문장인가. 뜻이 명료한 문장인가. 이 정도로 길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요컨대 '좋은 문장'이라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용된 동사는 많고도 많다. 담고 싶은 뜻은 많고 그래서 많은 말을 욱여넣기는 했으나 요령부득이다. 위 헌법 전문은 이해 가능한 수준을 넘어 보인다. 좀 더 간명하게 썼어야 했다. 그 이전에, 헌법에 전문은 과연 필요한가. 왜 있어야 하나. 있어야 한다면 제대로 된 문장을 써야 한다. 조문은 어떤가. 짧은 문장은 완벽한가.


제53조 

⑦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문장은 정문과 비문으로 나뉜다. 정문말이 되는 문장, 비문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누구나 정문을 쓰려고 하지만 실수로 비문을 쓰기도 한다. 주변에서 비문인 문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쓰는 문장이 모두 정문인 것은 아니다. 문법 지식이 부족하거나 문법에 대해 주의를 소홀히 하다 보면 비문을 섞어 쓰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개인이 쓰는 글에서 비문이 섞이는 것과 헌법에 비문이 들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온 국민이 뜻을 모으고 당대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벽을 기해 만들었을 헌법에 비문이 들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위 헌법 제53조 제7항 문장은 어떤가. '발생하다'는 자동사여서 '효력이 발생하다'로 쓰이지 '효력을 발생하다'로는 쓰일 수 없는데 '효력을 발생한다'고 했다. 따라서 위 문장은 명백한 비문이다. 헌법에 비문이 있다. 어디 제53조 제7항뿐인가.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발생하다'와 마찬가지로 '증가하다'도 자동사다. 국어사전에 '증가하다'는 '양이나 수치가 늘다'라 뜻풀이되어 있고 용례로 '소비가 증가하다', '장서가 증가하다' 등이 제시돼 있다. '~을 증가하다'와 같은 용법은 없다. 그런데 헌법 제57조는 '금액을 증가하거나'라고 했다. 헌법은 문법 밖에 있는가. 문법을 무시해도 좋은가. 헌법이든 법률이든 철저하게 한국어 문법에 맞게 써야 한다. 한법과 법률의 한국어가 따로 있지 않다. 그러나 위 예들은 '발생하다', '증가하다'의 용법과 아주 동떨어져 있다. 헌법을 만든 이들이 문법에 대해 무지했거나 문법을 소홀히 여겼음을 보이는 사례다. 헌법에 이런 비문이 들어 있는 것을 30년이 넘도록 방관해온 국민들의 무관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한국민 정녕 한국어에 무관심한가. 위 예문들은 각각 다음과 같이 썼어야 했다.


제53조 

⑦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시키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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