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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2. 2019

이것은 문장인가

민법은 1,118조까지 있는 실로 방대한 법이다. 대한민국의 법률 가운데 가장 조항 수가 많다. 그리고 민법은 개인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법률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법률이다. 그러니 민법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중요한 민법이지만 민법은 언어적인 면에서 완벽하지 않다. 언어적 오류가 적지 않다. 심지어 중학생 정도만 돼도 말이 안 되는 문장임을 알 수 있는 문장조차 있다. 제77조 제2항을 보자.


제77조(해산사유) 

②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

     (*은 비문이라는 뜻이다)


민법은 1958년 2월 22일 공포되고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번이나 개정되었다. 그러나 위 제77조 제2항은 제정될 때 문장 그대로다. 처음에 그렇게 만들어졌고 현재도 그대로 있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는 문제가 없는 문장인가.


위 제77조 제2항 문장을 읽고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될 때 또는 총회의 결의가 있을 때 해산한다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대충 뜻이 이해되기만 하면 그만인가. 


위 문장은 말이 안 되는 문장, 즉 비문(非文)이다. 비문은 문법을 지키지 않은 문장을 말한다. '사원이 없게 되거나'는 '되거나'가 동사이므로 동사구이다. 그리고 '되거나'의 '-거나'는 접속어미다. 따라서 '사원이 없게 되거나' 다음에는 반드시 다른 동사구가 접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원이 없게 되거나' 다음에 온 것은 동사구가 아니라 '총회의 결의로도'라는 명사구이다. 동사구와 동사구가 접속되든지 명사구와 명사구가 접속되어야지 동사구와 명사구는 접속될 수 없다. 문법을 어겼다. 따라서 비문이다. 위 문장은 마치 다음 문장과 비슷하다.


*사람은 다치거나 병으로 입원한다.


'다치거나'는 동사이고 ''은 명사이다. '-거나'로 접속될 수 없다. 따라서 다음 중 어느 하나로 바꾸어 써야 문법에 맞다.


사람은 다치거나 병이 나면 입원한다.


사람은 부상이나 병으로 입원한다.


접속은 동사구와 동사구가 하든지 명사구와 명사구가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법 제77조 제2항도 다음 중 어느 하나와 같이 바꾸어 써야 한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가 있으면 해산한다.


사단법인은 사원의 소멸이나 총회의 결의로 해산한다.


'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파르마의 수도원'을 집필하는 동안 매일 아침 프랑스 민법을 두세 장 읽었다고 한다. 프랑스 민법이 스탕달의 문체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나폴레옹법전을 만든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스탕달은 바로 나폴레옹법전의 문장에 심취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민법의 문장은 문인들이 전범으로 삼을만한가. 우리 민법은 그 내용이 법률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보통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지만 그 문장이 비문이거나 한국어답지 못한 문장이 곳곳에 섞여 있어 더욱더 독해를 힘들게 한다. 내용이 어려운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비문법적이거나 한국어답지 않은 문장은 나타나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나라의 그 많은 법률가들은 왜 민법 제77조 제2항과 같은 문장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에게 문법은 그토록 하찮은 것이었나. 어겨도 상관없는 것이었나. 한편 이 나라의 그 많은 국어학자, 언어학자들은 왜 민법의 문장에 대해 그렇게 무심했는지 모르겠다. 민법의 비문은 제77조에 그치지 않는다.



민법은 1958년 2월 22일 공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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