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에는 '-되다'라고 해야 할 것을 '-하다'라고 한 사례가 상당히 많다.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라고 해야 할 것을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라고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마치 '조건이 갖추어진 때로부터'라고 해야 문법적이면서 자연스러운데 '조건이 갖춘 때로부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건이 갖춘 때로부터'는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비문이다.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는 '조건이 갖춘 때로부터'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비문이 민법에 엄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법 제147조 제1항은 "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이다. 그런데 '성취하다'는 '목적한 바를 이루다'라는 뜻으로 반드시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동사이다. 그러나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에서 '성취한'의 목적어가 없다. '성취한'의 목적어는 '조건'이기 때문에 '조건을 성취한 때로부터'라고 해야 문법에 맞고 만일 '조건이'를 살리고자 한다면 '성취한'이 아니라 '성취된'으로 해야 하는데 '조건이 성취한'으로 함으로써 비문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아래와 같이 '성취한'은 '성취된'으로 바꾸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성취한'으로 쓰고 '성취된'으로 읽는가.
'조건을 성취한 때로부터'라고 하거나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라고 해야 할 것을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라고 한 민법 제147조와 제150조의 문장은 비문이다. 이렇게 '-된'이라고 해야 할 것을 '-한'이라고 잘못 쓴 예는 민법에 더 있다. 민법 제142조를 보자.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확정한 경우에는'라고 했는데 문맥상 '확정된'이라먀 말이 된다. '확정한'은 '일을 확정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위 예문에는 '확정한'의 목적어가 없다. 아래와 같이 '확정된'이라고 해야 목적어가 필요 없게 되면서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확정하다'와 마찬가지로 '완성하다'도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다. '완성하다'는 '무엇을 다 이루다'
라는 뜻으로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목적어가 없이 쓰이려면 '완성되다'라고 해야 한다. '완성되다'라고 써야 할 것을 '완성하다'라고 쓴 예는 다음 제162조, 제163조, 제164조에 보인다.
'소멸시효가 이루어진다', '소멸시효가 끝이 난다'는 뜻으로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고 썼는데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라고 해야 맞다. 즉 다음과 같이 고쳐야 문법에 맞는 문장이 된다.
'성취하다', '확정하다', '완성하다'와 마찬가지로 '종결하다'도 '토론을 종결하다', '재판을 종결하다', '절차를 종결하다' 등에서 보는 것처럼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동사다. 목적어 없이 쓰이려면 '종결되다'라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제94조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청산이 종결한 때에는'은 다음과 같이 '청산이 종결된 때에는'으로 고쳐야 한다.
불완전한 문장, 즉 비문이 오랜 세월 민법에 자리를 지켜왔다. 잘못된 문장이지만 모두들 모른 채 눈을 감아 왔다. 권위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문법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잘못은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앞에서 본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상대방이 확정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청산이 종결한 때에는'은 명백히 비문이다.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 '상대방이 확정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청산이 종결된 때에는'이라 해야 할 것을 잘못 쓴 경우다. 이에 반해 이제 살펴볼 '만료하다', '귀속하다'는 각각 '만료되다', '귀속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어서 어느 쪽이나 다 맞다. 즉 '만료하다'와 '만료되다', '귀속하다'와 '귀속되다'는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민법 제28조를 보자.
민법 제28조는 '전조의 기간이 만료한 때에'라고 했다. '전조의 기간이 끝난 때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전조의 기간이 만료한 때에'는 '전조의 기간이 만료된 때에'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만료하다'와 '만료되다'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의미 차이는 없다. 이를 보여주는 조항이 있다. 민법 제644조는 다음과 같다.
'임대차 및 전대차의 기간이 동시에 만료되고'에서 보듯이 '만료되고'가 쓰였다. 민법에는 제28조처럼 '만료되다'보다는 '만료하다'를 쓴 예가 더 많다. 민법 제639조, 제643조, 662조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만료하다'와 '만료되다'는 그야말로 아무런 차이 없이 자유롭게 바꾸어 쓸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고 법률 문장은 그 차이를 반영해서 문맥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법 제28조, 제639조, 제643조, 662조 등의 '만료하다'는 '만료되다'로 쓸 때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어 보인다. 즉 민법 제28조도 다음과 같이 바꾸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만료한'이 사용된 문장이 비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만료한'이 쓰인 문장이나 '만료된'이 쓰인 문장이나 모두 정문이다. 비문이 아니다. 하지만 '만료된'이 쓰인 문장이 더 자연스럽고 완전한 문장이라고 본다. 이는 '만료하다/만료되다'만이 아니다. '귀속하다/귀속되다'도 마찬가지다. 민법 제80조는 다음과 같다.
'해산한 법인의 재산은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게 귀속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제80조처럼 '귀속한다'를 쓴 예는 민법 제48조, 제191조, 제267조, 제507조, 제1058조, 제1090조에도 있다. 그런데 '귀속된다'를 쓴 예가 있다. 다음의 제1043조이다.
이런 예는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무리 '귀속하다'와 '귀속되다'가 의미 차이가 없고 둘 다 맞다고 하더라도 표현은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통일할 때는 이왕이면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통일하는 것이 타당하다. '귀속하다'가 아니라 '귀속되다'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따라서 '귀속되다'로 통일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