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띄어쓰기는 글을 쓸 때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한글 창제 당시부터 띄어쓰기를 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한글 문헌을 보면 띄어쓰기 없이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읽는 사람이 글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독서의 편의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띄어쓰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이다. 130여 년이 지나 이제 띄어쓰기는 잘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이나 출판물에서는 비교적 띄어쓰기가 잘 지켜지고 있을 뿐 개인의 글쓰기에서는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례가 흔히 발견된다. 개인의 글쓰기야 영향이 크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법률과 같은 아주 공적인 문서에서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례가 간혹 발견된다. 민법 조문에 그런 예가 있다. 민법 제322조와 제338조를 보자.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이라고 하였다. 별 의문을 느끼지 않고 넘어갈지 모르겠으나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에서 '이유있는'을 붙여쓴 것은 문제 있다. 첫째, '이유있다'라는 단어가 있지 않다. '이유있다'라는 단어가 없는데 '이유있는'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 둘째, '정당한'은 형용사의 관형형이기 때문에 꾸밈을 받는 명사, 즉 체언이 와야 한다. 그런데 '정당한' 다음에 명사가 나오지 않고 '이유있는'이라는 용언이 왔다. 명사가 오게 하자면 '이유있는'이 아니라 '이유 있는'처럼 띄어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당한'이 '이유'를 꾸밀 수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유있는'은 '이유 있는'으로 띄어써야만 한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처럼 '이유' 다음에 주격 조사 '가'를 넣으면 가장 좋다. 그러나 조사 '가'를 생략하더라도 띄어쓰기는 반드시 해야 문장의 구조가 온전히 드러나면서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된다.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은 띄어쓰기를 잘못한 예다. 띄어쓰기를 이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 제741조와 제749조 제1항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들어 있다.
민법 제741조에서는 '법률상 원인없이'라 하고, 제749조 제1항에서는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때에는'이라고 하였는데 우선 '원인없이'라는 부사가 존재하지 않고 '원인없다'라는 형용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단어들이 존재한다면 국어사전에 올라 있을 텐데 국어사전에 이런 말들은 없다. 따라서 붙여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맥락으로 볼 때 '법률상'이 꾸미는 말은 '원인'이지 다른 말이 아니다. 따라서 '법률상 원인 없이', '법률상 원인 없음을'이라고 할 때야 비로소 '법률상'이 '원인'을 꾸밀 수 있다. '법률상 원인없이'는 조사를 넣어 '법률상의 원인이 없이'로,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때에는'은 '법률상의 원인이 없음을 안 때에는'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조사를 생략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띄어써야 한다.
띄어쓰기는 문장의 구조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문장 구조와 관계 없는 경우에도 바르게 해야 한다. 한 단어가 되지 않은 두 명사를 붙여쓰는 것은 옳지 않다. 명사와 명사가 합해져서 새로운 명사가 된 경우에는 당연히 붙여써야 한다. 단어는 붙여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단어가 이어져 있을 뿐 한 단어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각 단어를 띄어써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민법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채무자는 배서의 연속여부를 조사할 의무가 있으며'에서 '연속여부'를 붙여썼다. 그러나 '연속'과 '여부'는 각각 단어이지만 '연속여부'는 한 단어가 아니다. 한 단어가 아닌 이상 '연속 여부'처럼 띄어써야 옳다.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연속여부'는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지도 않다. '연속여부'와 달리 '소비대차', '사용대차', '지명채권'과 같은 말들은 전문용어로서 모두 한 단어이다. 따라서 붙여쓰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 단어가 아닌 '연속여부'를 붙여써서는 안 된다. 한 단어 아닌 '명사+여부'를 붙여쓴 사례는 '연속여부' 외에도 다음에 보이는 것처럼 꽤 많이 있다.
'추인여부', '승낙여부', '향수여부', '해제권행사여부', '매매완결여부', '승낙여부'의 '여부'는 앞에 오는 말과 띄어써야 하는데 붙여썼다.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민법에는 '여부'를 앞말과 띄어쓴 예도 있어 혼란스럽다. 다음과 같은 예다.
즉 제854조의2와 제855조의2에서는 '허가'와 '여부'를 띄어썼다. 제854조의2와 제855조의2는 모두 신설된 조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신설된 조항에서는 띄어쓰기를 바로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민법 안에서 어떤 조항에서는 바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다른 조항에서는 잘못되어 있으니 일관성이 없다. 띄어쓰기가 바르게 되지 않은 경우로 '여부' 외에 '당시'라는 말이 연결된 예가 있다.
'사망'이 한 단어이고 '당시'가 한 단어이다. 그러나 '사망당시'는 한 단어가 아니다. 단어와 단어가 이어졌을 뿐 한 단어가 되지 못한다. 당연히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이런 말을 법 조문에서 붙여썼는데 잘못임은 물론이다. 더욱이 아래의 제1085조에서는 '사망 당시'를 띄어썼으니 제1087조와 제1085조는 같은 말의 띄어쓰기를 서로 다르게 했다. 일관성이 없으면 혼란스러움은 물론이다. 한 단어인 전문용어도 아니면서 두 단어를 마구 붙여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