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Sep 16. 2019

쉼표

문장부호는 '글에서 문장의 구조를 잘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를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쓰는 여러 가지 부호'라 국어사전에 뜻풀이되어 있다. 말을 할 때는 없지만 글을 쓸 때는 있어야 하는 게 문장부호다. 물론 말을 할 때도 문장부호 기능을 하는 게 있다. 쉼표 대신 말을 잠시 끊었다 하고 문장 끝 억양을 높여서 의문을 나타내는 게 그런 예다. 어떻든 글을 쓸 때는 문장부호를 적재적소에 써야 문장 구조가 잘 드러난다. 문장 구조가 잘 드러나야 읽는 사람이 문장의 뜻과 글쓴이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장부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문장부호가 없거나 문장부호가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문장부호가 쓰이면 독자는 혼란을 느낀다. 가장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할 법률 조문에서 문장부호가 제대로 쓰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민법 제77조를 보자.


제77조(해산사유) ①법인은 존립기간의 만료,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파산 또는 설립허가의 취소로 해산한다.


제77조는 법인이 해산하는 사유를 나열해서 제시하고 있다. 맨 처음의 '존립기간의 만료', 뒤에 나오는 '파산', '설립허가의 취소' 등이 법인의 해산 사유인 것은 쉽게 파악이 되지만 가운데 들어 있는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이 문제다. 특히 '불능'과 '기타'가 아무런 부호 없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불능'과 '기타'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만일 '불능' 다음에 쉼표(,)가 있었다면, 즉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이라고 되어 있었다면 법인의 해산 사유로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이 있고 그리고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이 따로 해산 사유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있어야 할 쉼표가 없으므로 독자는 무슨 뜻일까 생각하다 '불능' 다음에 쉼표를 넣고 해석하거나 아니면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포기할 것이다. 전자는 입법 의도에 맞게 해석했으니 다행이지만 후자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위 조문은 쉼표가 문장구조를 드러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쉼표가 필요한 자리에는 다음과 같이 쉼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제77조(해산사유) ①법인은 존립기간의 만료,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파산 또는 설립허가의 취소로 해산한다.


아래에 예로 드는 민법 제146조는 법제처가 제공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위에서 본 제77조보다 쉼표의 중요성이 훨씬 더 큰 데도 불구하고 쉼표가 없다. 


제146조(취소권의 소멸)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내에 행사하여야 한다.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 그리고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내에' 행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와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내에' 사이에는 쉼표(,)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도 쉼표가 없다. 만일 공포된 법령에는 쉼표가 들어 있는데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데서 빠져 있다면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단순한 실수일 뿐이므로 잘못을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아예 공포된 법령에서 빠져 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빠진 쉼표를 보충해서 입법의도를 이해하기는 하겠지만 완벽해야 할 법령이 불완전한 것이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146조(취소권의 소멸)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내에 행사하여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