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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궁(仁慶宮)

그리고 서촌

by 김세중

조선왕조에 궁궐은 5대궁이 있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다.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고 덕수궁은 경운궁이었다 한다. 왜 궁을 다섯 개나 만들었을까.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섯은 아니었고 경복궁과 창덕궁을 짓고 다른 궁들은 후일에 지어졌다.


그런데 이 다섯 궁궐 외에도 또 다른 궁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경궁, 자수궁, 이현궁 등이다. 자수궁, 이현궁은 규모가 아주 작아 궁궐이라 하기엔 뭣하다 싶지만 인경궁은 아니었단다. 위키백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따르면 인경궁은 경복궁보다 규모가 컸다니 입을 다물 수 없다.


도대체 인경궁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그것이 너무나 궁금해 추적을 거듭해 보았지만 "위치는 사직단 북쪽, 자하문로와 인왕산 사이 지역으로 추정되며 현재 종로구의 옥인동, 필운동, 누하동, 누상동 일대에 해당한다."라는 기록만 보일 뿐이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흔히 서촌으로 불리는 지역이 대부분 인경궁이었다는 얘기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인경궁은 광해군이 건립을 명했고 거의 완공 단계에까지 갔단다. 그 넓은 지역에 궁궐이 들어섰다니 이만저만한 토목 공사가 아니었을 듯하다. 인경궁 궁궐도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광해군의 역점 사업이었던 인경궁 건설은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쫓겨나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인조가 왕위에 올라 제법 인경궁에서 지내기도 했다는데 인경궁은 결국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인경궁을 부수기로 하면서 이미 지어진 인경궁의 상당 부분을 창덕궁과 창경궁 재건에 썼단다. 대표적인 게 창덕궁 선정전(宣政殿)인데 이는 인경궁 광정전 건물을 헐어다 지었다는 것이다. 인경궁의 흔적이 창덕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광해군일기에 인경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니 인경궁은 실존했던 듯하다. 그러나 400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민가로 가득찼고 궁궐은 흔적도 없다. 그 흔한 표석 하나 없다. 하긴 워낙 넓은 지역이었을 테니 어디에 표석을 세울 것인가. 표석을 세운다면 고증을 해야 하는데 기록이 남아 있을까. 흔적을 남길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을 둘러보다가 한 고지도를 보면서 뜨악해졌다. 지금 서촌으로 알려진 지역이 서촌이 아니라 웃대라 표시되어 있었고 서촌은 딴 곳에 있었다. 돈의문, 정동 부근이 서촌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렇다! 옛날 서촌은 지금 정동 부근으로 한양의 서쪽 지역이라서 서촌이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3호선 경복궁역 북서쪽 지역을 서촌이라 부르는 것은 한양이 아니라 경복궁의 서쪽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촌의 의미가 달라졌다.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필운동 일대를 서촌이라 부르게 됐을까. 20세기 후반부터가 아닐까. 지금은 서촌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웃대, 상촌(上村)이라 불렀던 지역에 인경궁이 있었다. 경복궁보다 규모가 컸다는 게 사실일까.


지금 서촌 지역이 '웃대'라 적혀 있다


국가적 사업으로 궁궐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경복궁 복원이 가장 크다. 경복궁 복원은 어느 시절로 복원하는 것인가. 조선 초기 경복궁으로 복원하는 것은 아닐 게다. 기껏 해야 1860년대 흥선대원군이 지었던 경복궁으로 복원하는 것이리라.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은 270년 이상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한다. 인왕산 범이 우글거렸다나. 고종 때 새로 지었고 일제강점기 때 많이 훼손됐을 것이다. 6.25 전란 때도 손실을 입지 않았을까.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경회루 등은 1860년대 중건 당시의 모습이라고 충분히 여길 만하다. 그러나 복원 과정에서 최근에 새로 지은 내소주방, 외소주방 등은 도무지 고궁 느낌이 나지 않는다. 막 새로 지었는데 어찌 고풍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이 필요하다.


경복궁이 차츰 1860년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과 달리 인경궁은 이름조차 아는 이가 별로 없다. 광해군은 왜 그런 엄청난 궁궐 건설을 추진했을까. 비록 사이버로나마 인경궁의 옛 모습을 복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실록과 문집 등 각종 역사 기록을 추적해 보면 윤곽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이 있었다. 말끔히 실물로 복원된 사직단과 달리 인경궁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졌다. 다음에 창덕궁에 가면 선정전을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인경궁 건물이 옮겨진 것이라니까. 조선조 궁궐의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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