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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사전만 보면

우울해진다

by 김세중

언어학을 전공했고 명퇴할 때까지 국어정책기관에서만 근무했던 필자로서는 글을 읽을 때 남다른 데에 시선이 미친다. 기사 내용 못지않게 기사에 사용된 '말'에 관심이 간다. 최근 한 일간신문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 기사가 실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사 중에 '결과값'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필자는 유난히 '00값'에 민감하다. 하도 '휘발윳값', '채솟값' 따위에 하도 데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두드러기가 날 정도인데 국어사전에 '휘발윳값', '채솟값'으로 올라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문 기사의 제목은 늘 그 모양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와 인터뷰한 기사에서 '결과값'이란 단어가 있길래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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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값'이 사전에 올라 있고 뜻풀이까지 해 놓았지만 끝에다 '규범 표기는 '결괏값'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쉽게 말해 ''은 틀린 말이고 ''으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왜 이 신문 기사는 규범 표기를 쓰지 않고 '결과값'이라 기사를 썼을까. 추측컨대 기사를 쓴 기자는 '결괏값'이 규범 표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 같다. 당연히 '결과값'이지 '결괏값'이라니!!!


예전엔 신문에 인터넷판이라는 게 없었고 모든 신문 기사는 종이로 인쇄되어 나왔다. 그 시절 기사는 교열기자의 손을 거쳐서만 독자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널리 쓰이면서 교열기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기사가 많아졌다. 현장에서 취재 기자가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면 바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아직도 교열기자의 손을 거치는 기사도 있지만 말이다.


아마 교열기자의 손을 거쳤다면 '결괏값'으로 기사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교열기자는 어문규범을 준수하는 훈련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교열기자라고 모두가 어문규범을 존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몇 달 전 한 경제신문의 기사심사부장(교열부장인 셈)이 칼럼에서 '무도한 사이시옷' 규정이라며 규범을 비판한 적이 있다. 어문규범을 존중하는 교열기자의 눈에도 사이시옷 규정은 '무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규범 표기는 '결괏값'이라고 국어사전에 돼 있지만 신문 기사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설마 '결괏값'이 규범 표기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는 기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규범'이 문제다. 이상한 규범이 행세하고 있다. 사전만 보면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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