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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오류와 중대한 오류

사명에 굴하지 않겠다?

by 김세중

언제부턴가 신문은 선생님이라는 구호를 많이 듣게 되었다. 신문을 열심히 읽으면 배우는 게 많다는 뜻이겠다. 과연 신문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고 세상을 보는 눈도 기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신문이 선생님이려면 기사에 사용되는 말이 반듯하고 모범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문 기사에 의아함이 느껴지는 표현이 자주 보이니 안타깝다.


엊그제는 9.11 테러 22년을 맞는 날이었다. 한 신문에 관련 기사가 실렸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9·11 테러는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인 2001년 일어난 비극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항공기 네 대를 납치하고 그중 세 대가 세계무역센터 두 건물과 펜타곤(국방부 청사)에 충돌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항공기 네 대, 세 대라 했다. 예전에 학생 때가 생각난다. 국어 선생님은 자동차는 '석 대, 넉 대' 해야지 '세 대, 네 대' 하면 못 쓴다 하셨다. 종이도 '석 장, 넉 장' 해야지 '세 장, 네 장' 하지 말라 하셨다. 그 땐 왜 선생님이 저러시나 좀 의아했다. 굳이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싶었다. 더 커 가면서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이왕이면 '', ''로 단순하게 통일하기보다는 '대(臺)'나 '장()' 따위에는 '', ''이란 말을 쓰고 ''에는 '', ''라는 말을 쓰는 게 더 말맛이 산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층에게 '네 대', '세 대' 하지 말고 '넉 대', '석 대' 하라고 하면 아마 왜 그래야 하냐면서 순순히 동의할 것 같지 않다. 꼰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말은 변하니까 '네 대, 세 대'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다음 예는 확실히 달라 보인다.


신원 확인 작업을 이끄는 뉴욕시 검시관 제이슨 그레이엄은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법의학 조사이지만 신원 확인을 계속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이행하고 우리의 사명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의 사명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뜨악하다. '굴하다'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굴하다'는 '굽히고 꺽이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우리의 사명에 굽히고 꺾이지 않겠다는 건가? 말이 안 된다. '우리의 사명을 잊지 않겠다'고 하든지 '우리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해야 할 것을 말을 잘못 했다. 기자들이 젊어지면서 말도 그들 감각에 맞는 말이 쓰이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틀린 말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문이 선생님이려면 최소한 중대한 오류는 없어야 한다. '항공기 '는 사소한 오류거나 오류가 아닐 수 있어도 '사명에 굴하지 않겠다'는 중대한 오류다. 도대체 영어가 어땠길래 그렇게 번역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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