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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순서가 잘못됐다

남북 통합에 앞서 우리 것부터 바로 세우길

by 김세중

대법원이 통일에 대비해서 남북 민법 통합을 위한 연구에 나선다는 기사를 접했다. 눈이 번쩍 떠졌다.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살펴보니 북한의 민사 관련 법률을 분석해서 장차 남북한 민법전 통합에 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미리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더구나 법원은 입법기관도 아니고 만들어진 법을 적용하고 사건에 대해 심판하는 기관인데 그런 일을 하겠다는 것이니 전향적인 태도여서 환영한다. 연구가 축적되면 될수록 향후 통일이 닥쳤을 때 대비하기 쉬움은 물론이겠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우리 민법전의 상태는 어떻다고 보고 통합에 대비한 연구를 하나? 필자는 2022년 <민법의 비문>이라는 책을 써서 우리 민법이 1950년대에 일본 민법을 참고해서 제정되다 보니 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법적인 문장투성이고 오자까지 있음을 지적했다. 심지어 일본 민법 그대로 띄어쓰기도 안 하고 마침표도 안 찍은 게 우리 민법 조문이다. 그런데 띄어쓰기와 마침표는 법 개정 없이도 스리슬쩍 띄어쓰기를 하고 마침표를 찍어서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눈속임이나 다름없다. 속은 병 들어 있는데 겉으로 가리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국가 기본법에 비문, 즉 비문법적인 문장이 숱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를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런데 대법원이 그런 현실은 외면하고 남북 통일에 대비해 북한 민법 연구를 하겠단다.


일의 순서가 아주 잘못됐다. 우리 민법전에 들어 있는 왜색 요소부터 걷어내야 한다. 도대체 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와 의무의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가 말이나 되는 문장인가. 일본 민법 "権利の行使及び義務の履行は、信義に従い誠実に行わなければならない。"을 엉터리로 번역한 결과다. 이런 것부터 "권리와 의무의 행사는 신의에 따라 성실히 하여야 한다." 또는 "권리와 의무의 행사는 신의를 지켜 성실히 하여야 한다. "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게 그리 어렵나. 1958년에 제정된 게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대법원이 미래를 내다보고 이런 저런 일을 미리 해두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민법전의 누더기 같은 실상에도 눈을 돌리기 바란다. 현재 우리 민법의 엉망인 상태는 나 몰라라 하면서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남북 민법 통합에 대비하겠다니 나로서는 도무지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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