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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뜨악한 말

독자를 어리둥절케 해서야

by 김세중

9.11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한 신문의 뉴욕특파원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있었던 9.11 추모식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국가적 재난 앞에 여야가 따로 없는 미국 정치인들의 태도를 칭송했다. 그런데 기사를 읽으면서 마지막 단락의 한 구절에 눈길이 미치면서 뜨악했다. '몇 시간 동안 구두를 신고 묵묵히 서 있다가'라고 했다. 미국 부통령,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몇 시간 동안 구두를 신고 묵묵히 서 있다가 자리를 떴다고 했다.


여기서 '구두를 신고'가 왜 나오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미국에선 보통 집에 들어가서도 구두를 벗지 않는 줄 안다. 자기 위해 침대에 오를 때나 벗는다 들었다. 그러니 야외에서 행해진 추모식에서 구두를 신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혹시 샌달로 갈아 신어야 하나?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구두를 신고'라 했을까.


아마 한국 같으면 그런 행사장에는 당연히 높은 분들을 위해 좌석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고 그들은 행사 내

내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 한국의 풍경과 대조할 의도였다면 '구두를 신고'가 아니라 '앉지 않고'라 해야 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마저도 없이 그냥 '묵묵히 서 있다가'라 하든지... 아무리 생각해도 '구두를 신고'가 왜 나왔나 모르겠다.


몇 시간 아니라 한 시간이라도 행사에서 높은 양반들이 서서 있었다면 한국인 눈에는 신기하게 비칠 것이다. 거기 주목할 요량이었다면 정직하게 '앉지 않고 묵묵히 서 있다가'였어야지 '구두를 신고 묵묵히 서 있다가'는 의아하기만 하다. 하긴 아마 앉고 싶어도 앉을 자리가 없었을지 모른다. 기사는 솔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c.png 마지막 단락의 '구두를 신고'가 뜬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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