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멀리 내다볼 수는 없을까
일본에 연초부터 궂은 일이 잇따른다. 강력한 지진이 일본 이시카와현을 중심으로 일어나 일본열도 전체가 흔들렸다. 세계적인 공항이라는 하네다공항에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충돌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관제사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조종사의 탓일 가능성이 크단다. 기타큐슈시에서는 먹자골목에서 화재가 났다는데 그쯤은 지진이나 공항 사고에 비하면 뉴스거리도 되기 어렵다.
지진 소식이 가장 놀랍다. 특히 와지마시의 모습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원폭이라도 맞은 듯 시가지가 폐허가 되었다. 서기 8세기 때부터 열렸다는 유서 깊은 시장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간 딱하지 않은데 한 한국의 신문사가 현지 취재를 했다. 특파원이 체육관에 수용된 이재민들 사이에 끼여 같이 밤을 보내며 기사를 보내 왔다. 외신을 전하지 않고 기자가 직접 현지에 뛰어든 것이다.
생생한 기사를 읽을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급하게 써서 그런가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있었다.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니, 전기.통신이 끊기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아마도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라 쓰려고 했다가 마음이 바뀌어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로 쓰려고 했는데 '할 수 없는'을 '할 수 있는'으로 바꾸지 않은 채 끝만 '별로 없다'로 하고 말아서 이런 문장이 나왔을 것이다.
물론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라 돼 있어도 대부분 독자는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로 이해했을 것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된다지만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해서 되겠는가.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있다. 새벽에 배달된 종이신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로 바르게 돼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지났음에도 인터넷판에는 여전히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로 돼 있다. 이건 뭘 뜻하나. 돈 내고 보는 종이신문은 오류가 없도록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공짜로 보는 인터넷판은 틀리거나 말거나 내갈겨 둔다는 거 아닌가. 그게 인지상정 같긴 하지만 좀 더 크게, 멀리 내다볼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