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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장인어른이 됐다

혼례를 치르고

by 김세중

어제는 딸아이 혼사를 치렀다. 같은 학교 동문끼리의 결혼이라 그 학교 동문회관에서 했다. 많은 하객이 왔다. 널리 알리지 않았음에도 찾아와 축하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한번에 사진을 다 찍지 못했다. 어쨌든 성황리에 잘 치렀다.


화촉을 밝히고 신랑신부가 맞절을 한 후 둘이서 같이 신혼서약을 했다. 그 다음이 신부 아버지인 내 차례였다. 덕담과 함께 성혼선언을 하게 됐다. 준비한 짧은 스피치를 해나갔다. 요약하면 이랬다.


"먼저 푼수같단 소리를 들을 소릴 들을 각오하고 제 딸 자랑을 하겠습니다. 제 딸은 아기 때부터 어찌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웠던지 절 늘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아이가 댓살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딸이 제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아빤 내가 그렇게 좋아?" 이렇게 저를 늘 즐겁게 했던 딸이 어른이 돼서까지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어느 날 결혼할 남친을 데리고 나타났는데 스마트하고 근사한 청년이었습니다. 제가 제 사위를 높이 사는 것은 전문성과 실력이 높아서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 더해서 늘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은데 제 사윗감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아드님을 길러내신 사돈어른 내외분께 감사드리고 존경을 바칩니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신부는 방금 두 사람이 서약한 대로 늘 서로 아끼고 사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부부 못지않은 아름다운 부부가 될 것이고 두 사람이 이루는 가정이 세상 어느 가정 못지않은 단단하고 견고한 가정이 되리라 믿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어디선가 먼저 박수가 나오니 곧 박수소리가 퍼저나갔다. 그런 대로 성공이었다. 이어서 신랑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고 친구의 축사도 있은 뒤 국악인인 신랑친구의 축가가 울려 퍼졌다. 사진 촬영을 끝으로 예식은 끝났다. 연회장으로 내려와 식사 중인 하객들에게 두루 인사하고 나서 혼주와 신랑신부들을 위한 별도의 작은 방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마주 앉은 사돈이 "00(울 딸)가 그렇게 매사에 잘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며느리가 마음에 너무너무 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 상견례 때도 그러더니 결혼식 당일날 또 그랬다. 그저 인사치레로 그런 말을 했겠는가. 우리 딸이 언제 저렇게도 그집 식구가 돼 버렸는지 참 신통한 노릇이었다. 섭섭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딸은 아기 때부터 부모로부터 사랑 받을 짓만 골라하더니 결혼을 해서도 시댁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복을 타고났다. 사돈은 아들 형제만 두었는데 큰며느리가 좀 무뚝뚝한 편이어서 은근히 아쉬웠던 모양인데 새로 본 작은며느리가 사근사근하니 여간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애들 앞에선 말 못했지만 결혼했으니 이쁜 아가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뭘 더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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