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두렵지 않나
의정 갈등이 심각하다. 끝이 어디인지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급기야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해산까지 고려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 파국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기사 중에 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정부가 민법 제38조를 끌어들이며 의협 해산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의정갈등 안갯속…총선후 '유연 처리→기계적 법집행' 전환할까 | 연합뉴스 (yna.co.kr)
민법 제38조는 '... 설립 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 ... '라고 했단다. 그런데 민법 제38조가 과연 그렇게 돼 있을까. 아니다. 다음과 같다.
민법에는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라고 돼 있다. '설립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가 아니다. 그럼 왜 기자는 민법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을까. 그야 뻔하다. 기자가 보기에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는 한국말이 아니기 때문 아니겠는가. 어떻게 말이 안 되는 표현을 기사에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말이 되게 법조문을 고쳐서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럼 왜 민법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지금껏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나. 불가사의하지 않나. 더구나 법 하는 사람들이 오죽 공부 잘하는 사람들인가. 문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법대 가서 사법고시 붙고 판검사가 되지 않았나.
내가 보긴 법 하는 사람들의 우월의식이 도를 넘는 듯하다. '법은 우리만 알고 우리만 쓰는 거야' 하는 의식이 없고서야 어찌 이런 엉터리 법을 그대로 두고 있겠나. 그런 비뚤어진 의식 때문에 법학의 길에 들어서는 젊은 후배 학도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신음하고 있다. 그 젊은 학도들도 공부할 때만 그럴 뿐 일단 법조인의 대열에 들어서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들 역시 똑같이 되겠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법의 언어가 현실언어와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법조문의 한국어가 따로 있지 않다. 1950년대의 낡은 한국어를 버리고 오늘날에 맞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그 일을 제22대 국회가 하기를 바란다. 정쟁에 함몰되어 이런 문제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과거 국회를 답습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민이 두렵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