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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9. 2024

접속을 바르게 해야

대등한 성분끼리 접속할 때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란 법이 있다. 약칭 남녀고용평등법으로 1987년 12월 제정되었다. 이 법은 제정될 때는 남녀고용평등법이었는데 2007년에 현재의 법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법 제2조의 제2호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중략)

2.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ㆍ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제2호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은 '사업주ㆍ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또는 '사업주ㆍ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앞 부분이다. 앞 부분은 다시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와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이 접속되었다. 그런데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는 '이용하거나'가 동사이기 때문에 동사구다. 그러나 이어지는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의 '성적 언동 등으로'는 명사구다. 동사구와 명사구가 접속된 것이다. 이는 문법에 맞지 않는다.


바르게 접속이 되려면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을 해서'라고 해야 한다. '성적 언동 등을 해서'의 '해서'가 동사기 때문에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을 해서'는 동사구이고 그래서 그 앞의 동사구와 바르게 접속이 이루어진다. 


이 조문뿐 아니라 민법과 같은 국가 기본법에서도 접속이 바르게 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민법 제77조 제2항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가 대표적이다.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행해져야 한다. 문법에 맞게 접속이 되면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지만 문법을 어긴 접속은 뜻이 불투명해지면서 읽는 이를 아리송하게 만든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는 그렇지 않아도 문장이 길어서 잔뜩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야 하는데 문법마저 깨져 있으니 뜻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법조문이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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