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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7. 2024

제헌절을 맞아

고수(固守)가 다가 아니다

제헌절이다. 1948년 7월 17일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으니 어언 76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헌법은 아홉 번 개정되었고 현행 헌법은 열 번째다. 벌써 36년째 같은 헌법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 우원식 국회의장은 2026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자고 했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그걸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것이다. 여야가 개헌안에 합의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필자는 국회의장의 이 제안을 들으면서 만일 헌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지난 열 번의 헌법에서 요지부동 자리잡고 있는 비문이 고쳐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우리 헌법에는 '효력을 발생한다'(제53조), '금액을 증가하거나'(제57조)와 같은 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지금껏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비문이라 한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헌법은 틀린 표현도 그대로 둬야 하나. 아니다.


'효력을 발생한다', '금액을 증가하거나'는 논란의 여지없는 어법 오류지만 내용에도 의아한 대목이 없지 않다. 비록 필자는 헌법학자는 아니지만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 조가 있어 늘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다. 제67조 제2항이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제67조 제2항은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인데 제1항의 선거란 무슨 선거인가. 대통령 선거이다. 그리고 직접선거이다. 투표권을 가진 온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다. 그런 선거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나. 참고로 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 수는 4,420만 명이었다. 그때 투표율은 77.1%였고 투표자는 34,067,853명이었다. 3,400만 명이 투표하는데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일 수가 있나. 없으란 법은 없지만 그게 가당한 가정인가.


도대체 왜 이런 조항이 있나 추적해 보니 제헌헌법에 답이 있었다. 1948년 제헌헌법이 공포될 때는 아직 대통령을 뽑기 전이었다. 헌법에는 대통령을 뽑는 절차가 들어 있었다. 제헌헌법 제53조는 다음과 같았다. 


제53조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써 각각 선거한다.

전항의 선거는 재적의원 3분지 2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지 2이상의 찬성투표로써 당선을 결정한다. 단, 3분지 2이상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2차투표를 행한다. 2차투표에도 3분지 2이상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최고득표자 2인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행하여 다수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무총리 또는 국회의원을 겸하지 못한다.


그때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간접선거였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야 200명이었다. 대통령 선거권자가 200명뿐이니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경우를 충분히 상정할 만했다. 그것도 물론 가능성이 높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4년 뒤인 1952년 최초의 개헌에서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선출로 바뀌었다. 당시 인구 2천만 명 중 유권자가 8백20만 명이었고 88.09%인 7백20만 명이 참여해서 이승만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한다. 요컨대 국회의원에 의한 간접선거에서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로 대통령 선거 방법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이 남았고 지금까지 그렇다.


선거권자가 수백 명일 때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수천만 명일 때에는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은 우스꽝스러운 규정이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한다. 최고의 법인 헌법이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다. 다음 헌법 개정 때는 상식에 맞지 않는 규정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력을 발생한다'(제53조), '금액을 증가하거나'(제57조) 같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문법에 맞게 고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수(固守)'가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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