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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2. 2024

외래어 표기법을 생각한다

디올 vs 디오르

Christian Dior(1905~1957)은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였다. 결혼도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1946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웠고 기업은 여성 패션을 이끄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건 그 회사, 그 브랜드가 아니다. 그걸 한국말로 일컫는 표기 방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받은 것에 대해 세상은 시끄럽다. 검찰이 소환 조사도 했다. 그런데 도하 신문들은 대부분 '디올백'이라 하지 '디오르백'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Christian Dior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떻게 올려놓고 있나. 다음과 같다.



'디올'이 아니라 '디오르'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도하 신문들은 온통 '디올'이고 '디오르'가 아닌가. 외래어를 어떻게 표기할지에 대해 규정한 것이 외래어 표기법이다. 지금 외래어 표기법은 1986년에 고시되었으니 38년 되었다. 이 표기법에 따르면 프랑스어 Dior은 '디오르'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은 위와 같이 표제어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세상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디올'이라 발음하고 '디올'이라 적는다. 어인 일인가.


여기에 외래어 표기법의 한계가 있다. 외래어 표기법이 없다면 이 세상의 그 수많은 지명과 인명을 어떻게 적겠는가. 그나마 표기법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적으니까 표기가 대체로 통일될 수 있다. 만일 표기법이 없다면 수많은 지명과 인명이 중구난방으로 적히고 발음될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있으니까 그나마 표기가 고정되고 안정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어떤 외래어들은 언중이 표기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표기법에 따르면 A인데 A를 한사코 거부하고 B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 Dior도 그런 예다. 표기법에 따르면 '디오르'지만 '디오르'를 마다하고 '디올'을 좋아한다. '디오르'를 권장해 봐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미 대중에게는 '디올'이 확고하게 굳어졌다. 그런 예로 독일어 Volkswagen도 있다. 표기법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이지만 대중은 '폭스바겐'을 훨씬 더 선호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분명히 필요하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 입에 자주 오르는 외래어 중에는 표기법을 거부하고 부르기 편한 발음을 선호하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Dior가 그렇고 Volkswagen도 그렇다. 어디 그뿐이랴. 수없이 많은 예들이 있다. 그렇게 표기법과 다르게 굳어진 외래어가 많다면 아예 외래어 표기법이 없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세계의 지명, 인명을 적어야 하고 그 많은 지명, 인명을 일정한 원칙, 기준 없이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은 필요하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상표명들은 어떡할 것이냐.


이에 대해 외래어 표기법은 이미 그럴듯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의 제5항은 다음과 같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관용을 인정할 근거를 이렇게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굳어진'이라고 했는데 '이미'가 애매모호하다. 외래어가 들어오면서 바로 관용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도 '이미 굳어진 외래어'인가. 따라서 이 표현은 적절치 않다. '표기법과 다르게 굳어진 외래어'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표기법과 다르게 굳어진 외래어는 차고 넘쳤다. '라디오', '카메라'는 그 수많은 관용 외래어 중 몇 예다. 표기법에 따르면 '레이디오', '캐머러'가 아닌가. 그러나 '라디오', '카메라'로 굳어졌기 때문에 '라디오', '카메라'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올'로 굳어졌기에 '디올'로 적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 제5항에 맞다. 관용이 규칙에 우선한다. 언어 자체가 관용 아닌가!


그런 점에서 국어사전의 '디오르'는 '디올'로 고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1905년에 태어나고 1957년에 죽은 자연인은 '디오르', 그 디오르가 만든 브랜드는 '디올'이 될 말인가. 왜 그렇게 복잡해야 하나.


필자는 그런 점에서 국어사전에 'ROTC'가 다음과 같이 돼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래어 표기법 제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인정한다고 했으면 '알오티씨'를 관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누가 '아르오티시'라 하는가. 그러나 국어사전은 '아르오티시'다. 이거 문제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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