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에게까지 '언'을 강요해선 안 된다
민법 제230조에 좀체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가 둘 있다. '수류지'와 '언'이다. 요즘 법전이 기본적으로 한글로 법조문을 제공하고 있지만 민법은 공식적으로 한자로 씌어 있다. 1958년에 민법이 제정될 때 한자로 작성되었고 지금까지 이를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제230조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법전은 이렇게 한글로 제공된다.
'수류지'는 뭐고 '언'은 뭔가.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수류지', '언'은 없다. 실제로 언어생활에 쓰이지도 않고 사전에도 없는 '수류지', '언'이 왜 민법 조문에 들어 있을까. 이유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민법이 일본 민법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 제230조는 조사, 어미만 국어로 바꾸었을 뿐 일본 민법 제222조와 같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우리 민법을 제정할 때에 일본 민법에 철저히 의존했다. '수류지(水流地)', '언(堰)'이 국어에 없는 말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무시하고 일본 민법에 水流地, 堰이라 되어 있으니 그대로 가져왔다. 그게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부끄럽지 않은가.
'수류지(水流地)'는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땅'이다. '언(堰)'은 '둑'이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양쪽 가로 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는다. 그 둑이 '언'이다. 그렇다면 그냥 '둑'이라 하면 안 되나. 무엇이, 어떤 힘이 '언'을 '둑'으로 바꾸는 것을 막고 있나. 아직도 일본 지배 시기에 향수를 느끼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계층, 세력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안 바꾸고 그대로 두고 있나.
젊었을 때부터 '水流地', '偃'에 젖은 기성 법조인에겐 익숙하고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수류지', '언'은 당혹스러운 말이다. 이런 낡은 유물을 새로운 세대에게까지 물려주고 쓰라고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