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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3. 2024

자연유수의 승수의무?

'승수'라니!

민법 제221조의 제목은 자연유수의 승수의무와 권리이다. 민법은 제정될 때 한자로 적혔으므로 自然流水의 承水義務와 權利였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한자인데 편의상 한글 표기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민법 제221조는 다음과 같다.


민법

제221조(자연유수의 승수의무와 권리) 

①토지소유자는 이웃 토지로부터 자연히 흘러오는 물을 막지 못한다.

②고지소유자는 이웃 저지에 자연히 흘러 내리는 이웃 저지에서 필요한 물을 자기의 정당한 사용범위를 넘어서 이를 막지 못한다.


여기서 승수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자로 표기된 법전 원문을 보고서야 그것이 承水임을 알기는 할텐데 문제는 承水가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승수(承水)라는 말은 과연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말인가. 한국어에 있는 말인가. 1950년대에 민법을 제정할 때 한자에 푹 젖은 법률가들이 별 생각 없이 법에 넣은 말이다. 언어생활에서 쓰이지도 않고 국어사전에도 없다.


제221조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먼저 제1항은 "토지소유자는 이웃 토지로부터 자연히 흘러오는 물을 막지 못한다."인데 무슨 뜻일까. 어렵지 않다. 자기 땅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내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으면 물은 역류할 것이다. 그럼 물을 흘려보낸 내 이웃의 땅은 침수가 되고 그래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내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당연하다.


제2항은 그 반대로 내 땅에서 이웃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웃으로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그 물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제1항과 제2항은 물은 흘러가도록 해야지 흐르는 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1항과 제2항을 아울러 '승수의무'라고 했다. '승수'의 ''은 으로 '이을 승'이다. 한자를 알면 '승수'의 뜻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을 잇는다' 또는 '물을 이어지게 한다'라는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글로 '승수의무'라고 할 때 뜻을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제20대 국회 때인 2019년 법무부는 국회에 민법개정안을 제출했다. 민법을 통째로 알기 쉽게 새로 쓴 법안이었다. 거기서 제220조의 제목은 '자연유수(自然)에 관한 의무와 권리'였다. '승수'를 과감히 뺐다. 그래서 알기 쉬워졌다. 빼도 뜻을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법안은 국회에서 심의되지 않고 폐기됐다. 그래서 지금도 민법 제221조의 제목은 '자연유수의 승수의무와 권리'이다. 난해하고 불필요한 '승수'는 덜어내야 마땅하다. 왜 국회는 움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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