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민법 제221조의 제목에 승수(承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 들어 있는데 민법 제223조에도 낯선 말이 있다. '저수, 배수, 인수'의 '인수'가 그것이다. 먼저 민법 제223조를 보자.
어떤 사람이 자신의 토지에 저수, 배수, 인수를 위해 공작물을 설치했는데 그 공작물이 파손되거나 막혀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입힐 염려가 있을 때 이웃은 그 공작물의 보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저수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저수지, 저수 시설 등에 있기에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물을 모아 두는 것이다. 배수도 배수 시설, 배수 작업 등에 쓰이는데 물을 빼서 내보낸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인수이다. 민법이 제정될 때 제223조는 한자로 적혔고 다음과 같았다. 즉 '인수'는 引水였다.
이 引水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국어에서 쓰이지도 않고 국어사전에도 없는데 어디서 왔을까. 예상되는 것처럼 引水는 일본 민법에 있는 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 제223조는 일본 민법 제216조와 내용이 대체로 같다. 사용된 단어도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많다. 引水도 그러하다. 인수(引水)라는 국어 단어는 없지만 그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안 법무부에서는 2019년 민법을 전면 새로이 고쳐 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 제223조는 다음과 같았다.
'저수, 배수 또는 인수하기 위하여'는 '물을 저장하거나 빼거나 끌어오기 위하여'로 바뀌었다. 얼마나 알기 쉬운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회는 이 민법 개정안을 심의하지 않았다.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도 민법 제223조는 '저수, 배수 또는 인수하기 위하여'이다. 저수, 배수는 꽤 쓰이는 말이니 그냥 둔다 하더라도 인수를 그대로 두고 있다니 부끄럽다. 아무도 모르는 일본어 단어를 법에 버젓이 쓰고 있다니 말이 되나. '인수'라는 국어 단어는 없다. 민법을 하루바삐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