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오류와 심각한 오류
필자는 언어학자로서 우리나라 6법의 법조문을 샅샅이 훑어본 바 있다. 오로지 문법의 관점에서 말이다. 방대한 법전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크고 작은 언어적, 문법적 오류를 발견하고 적지 않이 놀랐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오류가 왜 바로잡히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이제 조금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문법은 언어학자에게 중요했지 법률가들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비록 법조문이 문법적으로 바르지 않다 해도 입법자의 의도가 파악되는 이상 그들에게 문법 오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문법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그저 보조적일 뿐 결정적이고 핵심적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 문법의 의의나 중요성이 언어학자와 법률가들에게 서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법은 왜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예를 들면 민법 제478조의 문장은 어떤가.
필자가 볼 때는 '1개의 채무에 수개의 급여를 요할 경우'는 문법을 어겼다. 동사 '요할'의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문장에서 주어는 없어서는 안 되는데 주어가 없으니 비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조문을 읽는 법률가들 중에는 이 조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법률가 아닌 일반인도 마찬가지라 짐작된다. 이 조문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비문법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과 맞닥뜨린다. 하지만 필자는 제478조는 다음과 같이 쓰여야 문법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에는 주어가 있어야 하고 '1개의 채무에'를 '1개의 채무가'라 해야 주어를 갖춘 문법적인 문장이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인데 이에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면 대체 문법이 설 자리는 어딘가. 심각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조문 중에는 간혹 누구나 틀린 문장임을 금세 알아챌 것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306조 제4항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건 누가 봐도 잘못된 문장임을 알지 않을까. 심지어 초등학생도 이 문장이 비문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조사를 잘못 썼다. 물론 이런 문장조차도 입법자의 입법 취지를 짐작하고 그냥 넘어가는 게 보통일 것이다. 비문을 바르게 고쳐서 해석하고 말이다. 그래 왔으니까 70년이 지나도록 고치지 않고 지금도 그대로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6법의 법조문에는 언어적, 문법적으로 사소한 오류는 부지기수로 많고 심각한 오류도 더러 있다. 사소한 오류든 심각한 오류든 입법 의도를 짐작하고는 더는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그래 왔다. 그러나 우리는 '대충'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문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식품이 아니다. 문법을 반듯하게 지킨 문장일수록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만큼은 언어학자뿐 아니라 법률가, 일반인들도 인정하지 않을까. 문법은 분명 존재한다. '대충' 살아온 데서 탈피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