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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갔다

표준어란 있나

by 김세중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외국인 예약 20% 날라갔다고 했다. 잘나가던 K성형이 비틀거리고 있단다. 여기서 날라갔다가 흥미를 자극했다. 날라가다라는 동사가 있어야 날라갔다라는 활용형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날라가다라는 동사가 있나? 국어사전에 날라가다를 찾아보지만 날라가다는 없다. 있다면 '날아가다의 방언'이라 돼 있을 뿐이다. 그럼 왜 날아갔다라 하지 않고 날라갔다라 했을까. 단순한 오타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날라갔다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하기 때문이다. 오타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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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들은 일제히 '날라가다'를 비표준어라 처리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도 이에 따라 '날라가다'가 표준어가 아니라 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에 물어보았다.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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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가다를 비표준어라 규정하고 표준어 규정에 따라 날아가다로 써야 한다고 했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표준어 규정에 따라'였다. 표준어 규정 어디에 '날라가다'는 비표준어이고 '날아가다'가 표준어라 돼 있을까. 아무리 봐도 표준어 규정에 '날라가다'가 비표준어이고 '날아가다'가 표준어라는 말은 없다.


예전에는 '맛있다'의 표준 발음이 [마딛따]만이었다. 그런데 하도 [마싣따]라고 하니 [마싣따]도 표준 발음이라고 인정했다. 국어학적으로 그리고 이치상 '맛있다'의 발음이 [마싣따]가 될 수 없다. [마딛따]라야 한다. 그러나 대중의 발음이 한결같이 [마싣따]이니 어쩌겠는가. 결국 [마싣따]를 표준 발음으로 인정했다.


'날라가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날아가다'여야지 '날라가다'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중이 '날라가다'를 즐겨 쓰는 걸 어쩌랴. 결국 신문 기사의 제목에까지 '날라갔다'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 마당에 '날라가다'는 비표준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억지다 싶다. 대중이 왜 '날라가다'를 즐겨 쓰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필자가 보기엔 '날아가다'와 미묘한 어감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날라가다'에는 '사라지다', '증발하다'의 뜻이 있어 보인다. 미묘한 뜻의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날라가다'를 쓰려고 하지 않겠는가.


하긴 '날라다니다'는 그야말로 '날다'의 뜻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보이는데도 '날아다니다' 대신 즐겨 쓰이는 걸 보면 꼭 의미 차이가 있어서 새로운 형태가 쓰이는 것 같지 않다. 말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다. 꿈틀거린다. 말은 변한다. 그 변화를 억지로 틀어막을 수 없다. 표준어니 비표준어니 하며 표준어를 쓰라고 강제하는 것은 많은 경우 부질없는 일이다. 표준어가 하늘에서 떨어지나. 아니다. 표준어라는 건 애시당초 없는지도 모른다. 말은 꾸준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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