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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기령

비행기 사고를 보고

by 김세중

비행기 사고가 잦다. 무안공항에서 대형 참사가 빚어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또 사고가 났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려던 비행기에서 불이 나 탑승한 176명이 비상탈출했다. 큰 인명 피해가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지만 탈출한 탑승자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놀란 가슴이 진정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비행기 탈 마음이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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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을 보고 '기령 17년'이란 구절에 눈길이 갔다. 무슨 말인지 안다. 비행기의 나이가 17년이란 뜻이다. 나만 알겠나. 웬만한 독자들은 다 알리라. '17년'이라는 말이 이어서 나오니 '기령'의 ''이 나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연령'의 '' 아니겠는가. 그런데 필자는 혹시 국어사전에는 '기령'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국어사전에 '기령'이란 말은 없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우리말샘에도, 다음한국어사전에도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뜻의 말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예컨대 선령(船齡)은 표준, 우리말샘, 다음에 다 있었다. 이에 반해 차령(車齡)은 표준에는 없고 우리말샘, 다음에는 있었다. 들쭉날쭉이다. 선령은 모든 사전에 다 있는데 기령은 모든 사전에 다 없다. 차령은 일부 사전에만 있다. 왜 이래야 할까. 뭐가 문제일까.


모든 사전에 다 없는 기령은 이미 일제강점기의 신문에도 쓰였음을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서 알 수 있었다. 1934년 5월 25일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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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png '기령'은 무려 90년 전에도 쓰였다.


'기령'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없다고 언중이 '기령'이란 말을 안 쓰는 게 아니다. 사전에 그런 말이 있건 말건 그 말이 있고 필요하면 쓴다. 사전을 보고 언어생활을 하지 않고 사전과 무관하게 언어생활을 한다. 그럼 사전은 뭔가. 충실하게 언어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사전이 그렇지 못하다. 언어 사실을 충실하게 담지 못하고 있다. 사전 편찬자의 부주의나 태만 탓이 아닐까.


흔히 규범사전이란 말을 한다. 사전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폐가 있다. 사전을 따라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잘 주워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전을 참조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문인이나 기자, 출판사 편집자 등이야 사전을 끼고 살 수밖에 없지만 나머지 대부분 사람들은 사전을 보고 언어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전은 군림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게 언어 사실을 정직하게 기록해야 한다. 게으름은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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