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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말은 변한다지만

난감하다

by 김세중

신문 기사에서 '김흥국, 故김새론 염두했나...'라는 제목을 보고 놀랐다. '염두했나'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도 물론 '염두하다'라는 말은 없었다.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기사 제목이 그랬을까. 요즘 일종의 유행처럼 '00하다'가 번지는 것으로 보인다.


명사 다음에 접미사 하다는 연결되는 경우도 있고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망, 평가, 열망 따위에는 하다가 붙을 수 있어 소망하다, 평가하다, 열망하다는 훌륭히 성립된다. 그러나 문화, 사회, 국방 따위에는 하다가 붙을 수 없기에 문화하다, 사회하다, 국방하다 같은 말은 없다.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다가 붙을 수 없는 말에 하다가 붙기 시작했다. 일테면 욕망하다, 욕구하다 같은 말이 그렇다. 이들 말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국어사전에도 욕망하다, 욕구하다가 올라 있다. 최근에는 애정하다라는 말이 부쩍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애정하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 세대와 그걸 무척 어색하게 느끼는 세대가 공존하는 거 같다. 필자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애정하다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그런데 애정하다 말고 염두하다가 눈에 띄었다. 지금 신문 제작을 주로 담당하는 세대가 30, 40대가 아닐까 싶다. 필자는 60대다. 벌써 세대차가 느껴진다. 염두하다는 당연히 국어사전에 없다. 염두하다에 불평을 토로한다면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 같다. 말은 변한다. 염두하다가 국어에 없는 걸 불편하게 느껴서 만들어 쓰는 것 아니겠는가. 꼰대 소리는 듣기 싫고 그렇다고 낯선 것에 적응하는 건 내키지 않고 대략 난감하다.


g_5b3Ud018svc1r75sdgd2pvfz_hgt0e.jpg 신문 기사에 '염두했나'가 쓰였다


c.png 한 인공지능에 '애정하다'와 '염두하다'에 대해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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