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구별
말은 변한다. 변함없는 진리다. 세상이 변하니 따라서 말도 변하기도 하고 세상과 관계없이 말 자체도 변한다. 어렸을 적 '개재미있다', '개놀랐다' 같은 말은 전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어린 학생들 말에서는 접두사 '개'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비록 국어사전에만 오르지 않았을 뿐...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엄마를 할머니, 아빠의 엄마를 친할머니라 한다. 이에 반해 나는 어렸을 적 엄마의 어머니는 외할머니, 아버지의 어머니는 할머니라 불렀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엄마보다 엄마의 엄마와 같이한 시간이 많다 보니 엄마의 엄마가 무표적(unmarked), 아버지의 엄마가 유표적(marked)이 되었다. 이해한다.
오늘 신문에서 헤이그 특사 이위종의 손녀가 러시아에서 별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헤이그에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사람이 갔다. 셋 중 이위종은 당시 겨우 스무 살의 막내였다. 그러나 그는 부친이 이범진 초대 러시아 공사로서 아버지를 따라 유럽에서 오래 살아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한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 열사는 순국했다.
이위종의 손녀가 러시아에서 별세했대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위종에게 세 딸이 있었는데 둘째 딸의 딸이 이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딸의 딸이니 외손녀다. 그런데 신문기사의 제목은 손녀였다. 친손녀도 손녀, 외손녀도 손녀라 하기로 했나. 아니면 딸의 딸은 그냥 손녀고 아들의 딸은 친손녀가 된 건가. 손녀(=친손녀)-외손녀든 손녀(=외손녀)-친손녀든 어느 한쪽이 무표적이고 다른 쪽은 유표적이다. 한쪽을 무표적, 다른 쪽을 유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 봐서 그냥 구별 자체를 않고 모두 손녀라 하는 걸까.
고교 동창들과 어울리는 밴드에서 외손녀를 손녀라고 한 기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터뜨렸더니 한 친구가 나더러 꼰대라 했다. 아들의 딸과 딸의 딸을 차별하는 것은 나도 반대한다. 동등하게 대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구별은 했으면 좋겠다. 구별 자체를 않으면 누구 딸인지가 궁금해진다. 아들의 딸인지, 딸의 딸인지 말이다. 구별한다면 어떻게 구별하느냐가 문제다. 전통적으로 손녀-외손녀로 구분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결국 구별하지 않고 그냥 손녀로 통칭해야 하나. 대략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