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윤리란 무엇인가
필자는 벌써 7년쯤 전에 브런치에 '오자'라는 제목으로 민법 조문에 오류가 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글을 읽고 로스쿨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필자의 글이 감명 깊게 다가왔다며 나중에 법조인이 되면 필자와 국민의 법률 접근성 개선과 관련된 활동을 함께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편지는 필자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일간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2월 마지막 일요일에 청주로 내려가 그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런 지 이제 열흘 가까이 지났나. 그로부터 어제 있었던 로스쿨 법조윤리 과목 첫 시간에 일어난 일을 전해 들었다. 교수님이 신입생에게 각자 소개를 할 기회를 주었는데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필자와 만난 일도 소개하고 국민들의 법률 접근성 개선에 대해서도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들어가는데 담당 교수님이 언급하기를 "문법에 맞지 않는 법조문을 바르게 고치는 일이 중요한 문제기는 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게 익숙해져서 그게 맞는 줄 안다"고 했단다. 그리고 법조문을 바르게 고치는 일이 정말 힘들다며 아마 자기 같은 기성세대가 다 죽고 나서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백 번 공감한다. 만일 내가 법학교수였다 하더라도 이미 수십 년 동안 몸에 익어 버린 법조문은 설령 그게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라 하더라도 틀린 줄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몸에 배어 버렸고 그 법조문의 법리는 다 깨쳐서 이미 훤히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조문을 문법적으로 바르게 고친다면 바르게 고친 문장이 더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예를 들자면 이런 조문들이다.
이런 조문은 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금세 뭔가 이상함을 느낄 문장들이다.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니 소멸시효가 뭘 완성한다는 말인가.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도 자꾸 보고 또 보면 그게 이상한 줄 모르게 될 것이다. 법리는 명백하니까. 채권은 행사하지 않고 10년 지나면 소멸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도 처음 읽는 사람은 누구든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이 있을 법한 말인가. 주어가 없는 문장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자꾸 읽으면 그 법리만 머리에 들어오지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이 말이 안 되는 문장임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전하며 또는'도 마찬가지로 처음 읽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전하며'는 AND이고 '또는'은 OR이다. AND와 OR가 나란히 있으면 모순이다. 이 문장은 AND인가 OR인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속뜻은 AND이다. '또는'이 필요 없는데 들어갔다. 그래서 법조문을 읽는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성 법조인, 법학자들은 이런 조문의 속뜻을 이미 알기에 굳이 법조문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법학 교수님이 '나 같은 세대 다 죽고 나서야' 고쳐질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 말은 그닥 옳지 않다. 나 같은 세대가 다 죽은 뒤에 뒤이은 후속 세대도 마찬가지로 틀린 법조문에 익숙해지면서 역시 똑같이 고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영원히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 법조문은 70년 가까이 고쳐지지 않은 채 지금껏 그대로다. 그렇다면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처음 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혼란을 겪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의문을 느끼지 않는다.
법조문 도처에 있는 괴상한 문장, 틀린 문장은 로스쿨생, 법대생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어쩌다 소송을 하게 되어 법조문을 들여다볼 일이 있는 일반 국민도 의당 위와 같은 조문과 마주치면 '이게 무슨 소리지?' 하게 될 게 뻔하다. 도무지 알듯말듯한 아리송한 말 아닌가. 법리가 뭔지를 따지기 이전에 문장 자체가 국어가 아니다.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다. 단 한 글자라도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될 엄격한 법조문 안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숱하게 들어 있다. 로스쿨생들이 3년 동안 이런 괴상한 법조문과 싸워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들도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시험 합격과 함께 법조인이 되는 순간 괴상한 법조문의 법리도 이해하면서 더는 법조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 당장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업 속에서 허둥대다 보면 그런 걸 염두에 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매년 새로 들어오는 로스쿨생, 법대생들만 공부하면서 죽을 맛이다. 일반 국민의 법률 접근성도 개선해야 하지만 당장 법학 공부를 시작한 로스쿨생, 법대생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왜 그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가. 문법을 어긴 문장에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건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건 아닐까. 문법도 지켜야 하는 법인데 왜 문법을 어겨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나. 법조윤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