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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의 비문이 고쳐진다고?

신문기사의 낚시성 제목을 개탄한다

by 김세중

한 친구가 밴드에다 내가 관심있어 할 법한 신문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은 민법상 비문을 고친다는 것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기사를 찾아 읽어보고 나는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혀를 끌끌 찼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기사 제목은 60년 묵은 민법상 비문 고친다이다. 이 제목을 보고 민법의 비문이 이제 고쳐지는구나 하고 여기지 않을 독자가 있겠나.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면 한글날에 권칠승 의원이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게 전부다. 민법상 비문이 고쳐지라면 그 법률개정안이 앞으로 법사위에서 심의, 통과되어야 하고 본회의도 통과되어야 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공포해야 한다. 거쳐야 할 절차가 참으로 많다. 당장 법사위에서 심의될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그냥 발의했을 뿐이다. 그러니 제목의 60년 묵은 민법상 비문 고친다는 과장이요 오버다.


기사 첫 문장인 국회가 국어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민법 용어를 정비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한다도 과장이긴 매한가지다. 주어가 국회다. 국회가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몇 줄 뒤에 나오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 579돌 한글날인 9일 이러한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가 팩트이다. 권칠승 의원이 곧 국회인가.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상임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상정해서 심의할지는 알 수 없다. 두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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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유가 있다. 이미 2023년에도 권 의원은 비슷한 내용의 민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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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권 의원이 발의한 민법개정안은 법률로 결실 맺지 못했다. 발의에 그쳤다. 일반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는지 잘 모를지 모른다. 인공지능에 한번 물어보았다.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원안 그대로 가결된 법안은 제출된 법안의 11~13%에 지나지 않고 개정 내용이 법률안에 반영된 경우까지 확장해도 35~36%에 그친다. 나머지 64~65%는 국회에 제출만 되었지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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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의원이 민법에 들어 있는 숱한 언어적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그런 의식마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법안을 낸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거둘 수 없다. 통과가 되지 않더라도 법안 제출 실적은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칠승 의원뿐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이 반듯한 민법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투성이 민법으로 이제까지도 잘 살아왔는데 굳이 민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나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가 민법을 접하고 숱한 일본어에다 황당한 문법적 오류가 들어 있는 법조문에 당황해할 것 아닌가. 기성세대가 각성해야 하고 무엇보다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이 눈을 떠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의 정쟁에 함몰돼 좀체 눈을 뜰 것 같지 않다. 처음 법의 세계에 들어서는 신진 법학도들과 어쩌다 법조문을 들여다보는 국민만 힘들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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