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안착(安着)

딸은 잘 살고 있어 보인다

by 김세중

벌써 1년 반 전이다. 딸은 그때 결혼했다. 결혼식에서 신부 아버지인 나에게는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역할이 주어졌는데 형식적인 성혼선언만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건 좀 아니다 싶어 선언문 낭독에 앞서 넋두리를 제법 늘어놓았다. 잘난체하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먼저 제가 욕 들을 각오하고 제 딸 자랑을 좀 할까 합니다." 하고 말이다. 청중들의 눈이 똥그래졌을 것이다. 그 후 이어지는 내 말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딸아이는 아기 때부터 늘 애비를 기쁘게 했다. 워낙 영리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자라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커서 어느 날 제 신랑감을 애비에게 소개했는데 만나 이야기해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젊은이여서 나는 더없이 흡족했다. 딸은 어릴 땐 물론 어른이 되어서까지 애비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런 멋진 청년을 낳고 길러내신 사돈 내외분께 마음으로부터 존경을 바치며 깊이 감사해 마지 않는다'라는 얘기였다. 청중들로부터 조용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덧 딸은 2년차 새댁이다. 어제는 추석이었고 오후에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산에 막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부산은 딸의 외가요 내 처가다. 간단히 뭐 하냐는 인사를 나눴고 곧 딸은 사위를 바꾸어 주었다. "장인어른!" 하고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위의 고향은 울산인데 그곳에 부모님이 사신다. 나의 사돈 내외분 말이다. "그래, 부모님께는 언제 가나?" 하고 물으니 사위는 "벌써 갔다 왔어요. 두 밤 자고서 부산 오는 길이에요."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사위와 딸 내외는 이미 부모님 댁에서 이틀을 보내고 왔단다. 그러면서 이어서 하는 말이 "오늘 부산에서 자고 다시 울산으로 가서 부모님과 전라도 여행을 가요." 하는 게 아닌가. 사돈이 여행을 좋아하는 줄은 아는데 이렇게도 좋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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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편리하고 쉬운 한국어를 꿈꿉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 '민법의 비문'(2022), '품격 있는 글쓰기'(2017)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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