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귀함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이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새삼 깊게 와닿는 것은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가 있다. 그를 안 지가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다. 중학생 때 처음 알았으니까. 그는 나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내 친척과 절친이어서 알게 됐다. 그런 그를 재수할 때 학원에서 만났고 재수 끝에 같은 대학에 들어갔다. 비록 단과대학은 달랐지만 대학 동문이 되고 친구가 됐다. 긴 인연이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고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는 말도 있다. 이런 속담에 동의함은 물론이다. 교류한 지 50년이 훌쩍 넘은 그 친구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그는 진정 나를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런 그가 때로는 형제보다 낫다는 느낌마저 든다. 친구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내게 이런 친구가 있음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억만금을 준들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내게는 소중한 친구지만 한편으로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 내가 요즘 겪는 어려움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말하기를 참 좋아했다. 성격이 밝고 쾌활했다. 그리고 독서량이 많았다. 아는 게 너무나 많았다. 그 많은 자기가 아는 것을 즐겨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일종의 습관인데 그 습관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요즘은 자주 만나는 대신에 전화를 하게 되는데 한번 전화를 하면 기본이 30분이다. 길 때는 한 시간을 넘긴다. 문제는 언제나 그가 대화의 90% 이상을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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