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주어가 있는 게 좋다

by 김세중

주어가 있는 게 좋다


문화계에 이어 교육계에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장기간 총장 공석 사태를 빚은 국공립대에서 청와대의 일방적 ‘임용 거부’ 전횡 때문이라는 증언과 폭로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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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번째 문장이 문법적이지 않지만 문맥으로 미루어 뜻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즉 문법적이지 않아서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문법적으로 반듯한 문장이었다면 더 좋았겠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횡 때문이라는 증언과 폭로'가 나오는데 무엇이 전횡 때문이라는 것인지가 보이지 않는다. 즉 '때문이다'의 주어가 빠져 있다. 주어를 넣어 줄 때 문장이 반듯해지면서 뜻이 선명해진다. 굳이 의미 파악에 문맥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전횡 때문이라는'을 그대로 두고 주어를 '장기간의 국공립대 총장 공석 사태가'로 만들어 줄 수도 있겠고, 아예 '전횡 때문이라는'을 '전횡이 있었다는'으로 바꿀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주어는 '전횡이'이고 서술어는 '있었다'이다.


장기간의 국공립대 총장 공석 사태가 청와대의 일방적 ‘임용 거부’ 전횡 때문이라는 증언과 폭로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장기간 총장 공석 사태를 빚은 국공립대에서 청와대의 일방적 ‘임용 거부’ 전횡이 있었다는 증언과 폭로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논설문에서 논리적 비약은 금물


[제목] 덴마크서 체포된 정유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열쇠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1일 덴마크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으로 우리 사회의 반칙과 불공정의 상징이 돼버린 정 씨가 국내에 들어오면 국정 문건이 담긴 태블릿PC의 소유 및 사용자, 삼성의 승마 지원 등 수사가 탄력을 받게 된다. 특히 최순실을 압박해 입을 열게 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 씨는 ‘돈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페이스북 글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촛불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1일 기자들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일방적이고 자기방어에 급급한 해명으로 국민을 또 실망시켰다.

 박 대통령은 최 씨에 의한 국정 농단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복지나 안보외교 경제 정책 이런 모든 것이 (참모들과) 의논을 해서 하는 것이지만 저 나름대로 좋은 생각도 나고, 또 좋은 아이디어도 얻게 되면서 외교 부분, 안보 부분 모든 것을 발전시켜 왔다”고 말했다. 비선으로부터 외교안보 관련 아이디어도 얻어 왔음을 시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최 씨를 ‘키친 캐비닛’으로 알고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지만 대통령의 직무를 민간인에게 맡긴 것은 대통령을 선출해 국정을 맡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기업들이 공감을 해서 동참을 해준 것인데 압수수색까지 받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 기업인들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이 자발적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청문회에 출석한 기업 총수들의 증언과도 배치된다. 기업 총수들은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며 한결같이 압박감을 느꼈고, 다만 대가성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기자들을 불러 일방적 해명을 쏟아낸 것부터가 적절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압박이자 동정 여론을 확산시켜 지지자를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행보다. 대통령과 최순실이 모든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만큼 특검은 하루빨리 정 씨를 귀국시켜 이화여대 입학 특혜를 비롯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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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논설은 다섯 문단으로 되어 있다. 제목은 '덴마크서 체포된 정유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열쇠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에서 핵심은 '정유라'다. 그러나 정유라에 대해 제대로 다룬 문단은 다섯 문단 중에서 첫 문단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문단과 마지막인 다섯째 문단에서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있었다.


둘째 문단은 단 두 문장뿐이다. 두 문장은 부사 '그런데도'로 연결되어 있다. 첫 문장에서는 정 씨가 페이스북에 '돈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글을 써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가져왔다고 했다. 둘째 문장은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기자들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일방적인 해명으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는 내용이다. 정 씨의 행위와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 간담회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논리적으로 양자는 무관하다. '그런데도'가 쓰일 자리가 도저히 아니다.


셋째, 넷째 문단은 정유라와는 무관한, 박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내용에 대한 비판이다. 제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인 다섯째 문단에서도 비약이 있었다. 마지막 문장에서 '특검은 하루빨리 정 씨를 귀국시켜 이화여대 입학 특혜를 비롯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정 씨를 귀국시켜 이화여대 입학 특혜의 전모를 밝혀내야 하는 건 맞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은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제목 자체가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정유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열쇠다'라고 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정유라 씨가 관여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해도 정유라 씨와 무관한 부분도 또한 상당할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정유라 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아주 일부분에만 관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제목이 타당한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에서 논리적 비약이 있었느냐이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로부터 외교안보 관련 아이디어를 얻어 왔는지,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는지 여부 등은 정유라 씨와 관련 짓기 어려워 보인다. 주장에는 근거가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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