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남의 마음을 내가 말할 수 없다

by 김세중

시제는 일치해야


브린씨는 "대규모 집회가 계속됐는데도 폭력과 불상사가 거의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개선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중집회가 '소통'의 수단이지 법 제도를 지배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 것은 정부나 입법·사법기관이 대중 정서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실제 최근 헌재의 탄핵 심리나 특검 수사만이 아니라 한·일 관계 등 외교 문제에까지 정부 기관들이 대중 정서에 떠밀려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0117 ㅈ일보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부나 입법·사법기관이 대중 정서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에서 '우려하는'은 현재 시제이고 '점이었다'는 과거 시제이다. 시제가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시켜야 마땅하다. '우려하는'을 쓰려면 '점이다'라고 해야 하고 '점이었다'를 쓰려면 '우려한'이라고 해야 한다. '우려하는'은 지금 그렇다는 것이고 '우려한'은 이미 그랬다는 것이다. 어떻게 써도 상관없어 보이지만 바로 앞 문장이 '했다'로 끝난 만큼 '우려한 것은 ... 점이었다'라고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부나 입법·사법기관이 대중 정서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정부나 입법·사법기관이 대중 정서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불필요한 인용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리 법치는 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 출발은 권력자들의 법 농단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0117 ㅈ일보


'된다는'은 '된다고 하는'이 줄어든 말이다. 남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에 반해 '되는'은 남의 말을 인용한 게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한 것이다. 위 예는 남의 말을 전하려는 게 아니다.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중이다. 따라서 '된다는'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간명하게 '되는'이라고 하면 된다.


그 출발은 권력자들의 법 농단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비문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국정 농단의 실체가 박 대통령 등이 기업의 약점을 잡아 ‘자발적 출연’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돈을 뜯어냈음을 보여준다.

0117 ㅈ일보


이 문장에서 '국정 농단의 실체가'와 호응하는 서술어는 무엇인가? '기업의 약점을 잡아'의 주어는 '박 대통령 등이'이다. ''자발적 출연'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의 주어도 '박 대통령 등이'일 수밖에 없다. '돈을 뜯어냈음을'의 주어도 역시 '박 대통령 등이'이다. '보여준다'의 주어는 문장 첫머리의 '이는'이다. '국정 농단의 실체가'는 완전히 붕 떴다. '국정 농단의 실체가'는 빠져야 맞다. 비문을 써서는 안 된다.


이는 박 대통령 등이 기업의 약점을 잡아 ‘자발적 출연’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돈을 뜯어냈음을 보여준다.



뜻은 알겠으나...


과연 특검이 이 부회장의 뇌물 증거를 얼마나 제시할지가 관건이다. 또 특검이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을 이 부회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는가도 관심이다.

0117 ㅈ일보


위 두 문장은 각각 '제시할지가 관건이다'와 '확보했는가도 관심이다'로 끝났다. 앞 문장의 '제시할지가 관건이다'는 문제가 없으나 뒤 문장의 '확보했는가도 관심이다'는 정상적이지 않다. '관건'과 '관심'은 의미가 다르고 이에 따라 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검이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을 이 부회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는가도'는 주어로 사용되었고 그렇다면 주어에 어울리는 서술어가 따라야 한다. 그것은 '관심이다'가 아니라 '관심을 끈다', '관심을 모은다' 등이다. '주목된다', '주목을 끈다' 등이 와도 좋을 것이다. 예문의 문장은 무슨 뜻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바른 표현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또 특검이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을 이 부회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는가도 관심을 끈다.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이런 마당에 국내 정치권은 방어용 미사일인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두고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0117 ㅈ일보


'국내 정치권은 사드 배치를 두고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무슨 뜻을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기에 그냥 넘어갈만도 한 문장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락가락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국내 정치권' 자체가 너무나 다양한 정파와 정치인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일하지 않다. 따라서 단일한 입장을 가질 수가 없다. '오락가락하고 있다'를 쓰려면 주어가 단일한 주체여야 마땅하다. '국내 정치권은'이라는 주어에 어울리는 서술어는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가 아니라 '입장이 구구각색이다', '입장이 구구하다', '입장이 제각각이다', '입장이 대립돼 있다',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 '입장이 제각기 다르다', '입장이 엇갈려 있다' 등과 같은 말들이다. 가장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마당에 국내 정치권은 방어용 미사일인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두고 입장이 구구각색이다.



남의 마음을 내가 말할 수 없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도 억울한데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0117 ㄷ일보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이 억울하다.'는 바른 문장일까? 형용사 중에는 주어가 1인칭이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고맙다, 미안하다, 아프다, 슬프다, 괴롭다' 같은 말들이 그것들이다. '고마워.', '미안해.', '슬퍼요.' 등은 당연히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남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남의 심리 상태를 내가 말할 수 없고 오로지 내 심리 상태만 말할 수 있기에 1인칭 이외의 주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을 뿐인데 그래서 '고마워하다', '미안해하다', '아파하다', '슬퍼하다', '괴로워하다' 등을 써서 표현한다. 위 예문은 신문 사설에 나오는 것으로 주어가 3인칭인 '많은 기업이'인데 '억울한데'를 써서 기업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썼다.


사설이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표현은 가려서 쓸 필요가 있다. '억울한데'는 단정적 표현으로서 남의 마음을 단정할 수는 없기에 적절하지 않다. '억울할텐데'라고 하면 추정이니 그나마 낫다. 논설문은 어느 한 편에 치우쳤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게 좋다. 객관적인 태도로 논리적으로 주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여러 대안들이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도 모자라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냈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내야 했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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